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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보살의 모습 그려내

- 마당을 나온 암탉 -

조 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최근 세상을 떠난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힌 것은 옛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탈피해 달리 생각하고, 달리 실행하는 선구자인 때문이었다.  생각의 윤회를 벗어난 해탈의 모습을 보여준 때문이었다.
올 여름 개봉돼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그런 해탈자들을 그리고 있다. 양계장의 닭들은 말할 것도 없이 몸을 움직일 여지조차 없는 공간에서 기계처럼 계란을 낳고, 수명이 다하면 고기가 될 뿐이다. 생명으로서 아무런 존엄성을 찾아볼 길이 없지만, 양계장의 닭들은 그런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그러나 잎싹이는 아니다. 수천년간 지속해온 계급 카스트를 당연하게 받아들인 인도사회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외친 붓다처럼, 그는 양계장 닭들에게 씌어진 굴레를 벗어던질 꿈을 꾸기 시작했다. 우선 그의 일차적인 꿈은 양계장 문틈으로 보이는 넓디넓은 마당으로 나가는 것. 잎싹은 단식을 감행해 스스로 비실비실한 닭이 되고, 주검을 가장해 양계장을 나오는데 성공한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양계장을 나왔지만, 세상은 그리 녹녹치 않다. 마당엔 마당의 기득권자들이 양계장에서 온 ‘촌 것’을 환영하기는커녕 차별하고 내쫓는다.
그가 동경하던 마당식구의 일원이 될 수 없던 잎싹이는 그로 인해 마당까지 나와 더 큰 세상으로 내동이쳐진다. 세상 물정 모르는 잎싹이는 세상이 눈뜨고도 코 베가는 곳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치 못한 채 감옥같은 양계장을 나온 것만을 즐긴다. 그러다 드디어 세상의 뜨거운 맛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는 쪽제비에게 쫓기는 몸이 된 것이다. 그를 구한 것은 청둥오리 나그네다. 자신을 구해준 나그네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나그네에겐 이미 사랑하는 짝이 있고, 그 짝은 자신들의 2세가 될 알을 낳는다.
그런데 나그네에게도 비극이 찾아든다. 짝을 쪽제비의 먹잇감으로 빼앗겨버린 것이다. 잎싹이는 홀로 남겨진 알을 자신이 품는다. 알에서 새로운 생명이 부화되려는 순간 나그네들은 잎싹이와 알을 쪽제비로부터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다. 결국 알이 깨어나는 날 나그네는 쪽제비와 사투를 벌이다 목숨을 잃는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날, 초록이가 알에서 깨어나 잎싹이에게 아장아장 걸어온다. 잎싹이는 초록이의 엄마가 되어 험진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잎싹이는 나그네의 유언에 따라 저수지로 이사를 가게 된다. 닭은 마른 땅에서 자라야 하지만, 오리는 물이 없는 곳엔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핏줄은 아니지만, 마음으로 낳아 모자가 된 초록이를 위해 습한 저수지로 옮긴 뒤 잎싹이는 시름시름 앓는다. 대신 초록이는 물 만난 고기처럼 저수지에서 헤엄을 치면서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 그러면서 물에서 헤엄도 못치는 엄마를 보며 엄마와 자기는 너무도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사춘기 소년의 방황이 시작되고 점차 비뚤어지고 반항아가 되어간다. 그러나 초록이에 대한 잎싹이의 사랑은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다. 그래서 초록이는 다시 엄마의 품으로 돌아온다.
그 때 철따라 이동하는 청둥오리들떼들이 날아든다. 수많은 동류들의 모습이 초록이의 디엔에이 속에 내장된 청둥오리 본색이 발동하게 된다. 하지만 그 청둥오리떼마저도 자신들과 다른 엄마 아래서 자라서 뭔가가 이상한 초록이를 받아주지않는다. 하지만 초록이는 청둥오리들이 파수꾼을 뽑는 대회에 참석하게 되어, 무서운 속도로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다른 이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꿈을 현실화하는 초록이의 모습은 리처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주인공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을 연상시킨다.
<갈매기의 꿈>이 출간됐을 때 기독교 성직자들은 이 책이 인간의 한계를 딛고 무한한 능력에 도전하는 것처럼 소개되자 “신(神)의 영역에 도전한 오만의 죄로 가득한 작품”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하지만 누구나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 같은 것은 아니다.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대부분의 갈매기들도 더 잘 날기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왜 지금처럼 날아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으니까.
그러나 조나단은 먹는 것보다 ‘나는 것’ 자체가 소중했다. 그래서 날마다 남몰래 피눈물 나는 날기 연습을 한다. 그리고 고공낙하 비행을 감행한다. 시속 220㎞로 1500미터 상공에서. 맹렬한 속도로 급강하하다가 날개를 접고 회전하지 못하면 몸이 산산조각날 수 있는데도. 그렇게 속도에 광적으로 몰입해 드디어 시속 340㎞로 날며 2400미터 상공에서 급강하할 수 있게 된다. 점점 ‘하늘엔 한계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창공을 비상하는 조나단의 모습에서 많은 독자들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 위해 목을 맨다.
<갈매기의 꿈>에서 “뭐 하러 그렇게 힘들게 사냐?”는 동료 갈매기들의 질시와 조소에 아랑곳 없이 그렇게 높이 멀리 비상하는 조나단은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편 에서 “뭐 하러 그렇게 멀리까지 높이까지 힘들게 나느냐?”는 매미와 비둘기의 조소에도 아랑곳 없이 9만 리 창천을 나르는 대붕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초록이도 불가능한 꿈에 도전해 갈매기떼 사이에서 가장 잘 나는 빨강머리를 제치고 갈매기떼들을 지키는 파수꾼이 된다. 갈매기떼들의 파수꾼이 되었으니 철이 바뀌어 철새들이 돌아갈 때 초록이도 고향을 떠나야 한다. 엄마 잎싹이와 헤어져야 하는 것이다. 습한 저수지에 살면서 약해질대로 약해진 잎싹이는 이제 초록이의 돌봄을 받을 차례지만, 초록이를 위해 이별을 택한다. 그리고 잎싹이에게 가서 너의 세상을 펼치도록 독려한다. 청둥오리떼를 이끌고 앞서 가는 초록이를 바라보면서 잎싹이가 한 말이 예사롭지않다.
“나는 왜 날 생각을 못해봤을까?”
닭들도 어느 새와 다름없이 날개를 가졌지만, 날 생각을 하지 않고,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인간이 주는 먹이에만 길들여지면서 점차 날지 못하는 새가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잎싹이가 꿈을 품고, 양계장을 나오고, 마당을 나왔듯이, 나는 꿈을 꾸게 되고, 그의 생각이 많은 닭들의 꿈이 된다면 그 꿈이 현실이 될 날이 머지않게 되는 것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윤회를 벗는 해탈자의 모습만이 아니라 대승 보살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떠나기 전 엄마를 보러왔다가 쪽제비에게 먹힐 뻔한 초록이를 살리기 위해 쪽제비의 새끼들을 들고 위협했던 잎싹이는 정작 초록이가 안전하게 떠나자 자신을 쪽제비의 먹잇감으로 내놓는다. 자신을 먹어서 동굴 속에서 배고픔에 허덕이는 쪽제비 새끼들을 살리도록 한 것이다.
불경 가운데 <최승왕경>엔 붓다의 전생담이 담겨 있는데, 살타왕자가 산고에 지쳐 녹초가 되어 당장 죽을 것만 같은 호랑이 어미와 호랑이 새끼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먹이로 보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 전생담과 다름없이 잎싹이는 줄곧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했던 제비와 그 새끼들을 위해 몸을 보시하는 대승보살의 경지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