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홍
구룡사 신도
오랜만에 설악에 올랐다.
봉정암 성지순례를 떠나는 집사람을 따라 나선 것이다. 집사람의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오랜만에 쉽게 설악산에 갈 수 있다는 잿밥에만 관심을 싸 들고 간 것이다.
용대리, 남교리, 백담사, 십이선녀탕, 흑선동 계곡, 천불동, 구곡담 등의 단어가 만들어 내는 추억들이 꼬리를 물고 머리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지금은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버스로 쉽게 올라가지만, 내가 처음 설악산을 오를 당시는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가는 길 만해도 상당히 긴 산행길이었다. 백담계곡의 절벽 밑으로 흐르는 계곡 물의 투명함과 시원함이 지금은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지만, 그 당시에는 새록새록 머릿속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마지막 큰 구비를 돌아 오르면 펼쳐지는 백담사 앞의 넓은 계곡, 커다란 바윗돌들이 계곡에 깔려있고 계곡 가득히 넘쳐흐르는 물줄기가 마음을 탁 트이게 해주었다. 아침에 용대리를 출발해서 올라오면 이곳에서 점심을 해서 먹고 물가에서 잠시 쉬던 곳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백담사에 들리지도 않고 산행을 시작했다. 커다란 수목 사이로 나 있는 푹신푹신한 흙길과 나무 사이로 보이는 계곡과 건너편 산들을 보며 오른다. 때로는 맑은 계곡물 바로 위에 난 길을 따라 가며 투명하게 비쳐 보이는 계곡물이나 바위에 부딪치며 흘러내리는 물소리를 벗 삼아 올라간다. 참 좋은 곳이다.
영시암에서 아침 겸 점심 공양을 하고 수렴동 대피소까지 간 후 구곡담 계곡길로 올라섰다.  
백담사에서 영시암을 거쳐 수렴동 대피소에 이르는 길은 거의 평지나 다름없어 편안하게 이른 가을의 정취를 즐기며 걸을 수 있는 곳이다. 옆에 시원하게 펼쳐지는 아름다운 계곡의 맑은 물은 우리 마음의 묵은 때를 말끔히 씻어준다.
가야동 계곡과 구곡담 계곡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수렴동 대피소. 예전에는 계곡 바로 옆에 위치한 아주 조그만 대피소에, 안에는 타고 남은 모닥불 연기 냄새가 가득 찬 곳이었는데, 지금은 반듯한 건물이 들어서고 대피소 밑의 토대도 많이 쌓아 올려 옛날의 흔적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봉정암으로 오르는 순례객들도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 봉정암에 오르던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의 차림새란 그야말로 자연스러웠다. 일상 옷이나 옆 마을 마실가는 차림으로 미역이며 쌀도 되는대로 등에 지든지 머리에 이고 올라갔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이 고무신을 신고 올라가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가죽으로 만든 단단한 등산화에 배낭 속에 이것저것 다 요량해서 집어놓고 올라가는데…. 그 시절이 궁금해서 오르내리는 스님들의 신발을 유심해 보았는데, 고무신을 신고 오르는 스님들을 발견하고는 내심 조금 안도가 되었다.
이제 시간이 지나 내가 할아버지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르내리는 젊은이들이 나를 보고, 내가 옛날에 느꼈던 것과 비슷한 차이점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지금은 아무도 신지 않는 나의 낡은 가죽 등산화와 색이 바랜 바지를 보면서….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그 동안 무엇을 했나?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애들을 가지고, 이제는 그 아이들이 커서 다시 애들을 가질 동안….
따스한 가을볕에 옆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의 물가를 걸으며 문득 솟아오르는 생각…. 왜 옛날 아주머니, 할머니 고무신에서 내가 그 동안 모르게 먹어온 나이 생각이 나는 걸까? 살아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무엇을 살아 왔다고 하는 것인가?
옆에서 같이 걷고 있는 집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옛날에 이곳을 같이 걸었었는데….
사는 것은 무엇인가?
철없는 시간이 지나가고, 학교를 마치면 직장에 가야 되고, 그리고 결혼을 해야 되고, 결혼을 하면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이 다시 나처럼 커서 결혼을 하고 다시 아이를 낳고….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인생살이의 마디마디를 쉴 새 없이 건너 뛰어 다니는 것은 아닌지!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시간의 굴레 속에서 쳇바퀴를 돌면서….
오며 가며 마주 치는 사람들을 보니, 산행을 하는 사람보다는 우리처럼 봉정암 불공을 위해 사찰에서 단체로 온 사람들이 월등히 많다. 가슴에 단 절 이름만 봐도 전국 각지를 망라하는 것 같다.
수렴동 대피소에서 용소폭포, 쌍폭을 지나 봉정암에 이르는 길은 이제까지 온 길과는 다르다. 산세가 가파르고 계속 오르막길로 이어지는 길이다. 쌍폭의 왼쪽 계곡을 끼고 오르는 길에는 태풍이 몰고 온 비 덕분에 계곡물이 매끄럽게 닳아버린 암반 사이로 힘차게 넘치며 흘러내린다. 왼쪽 옆에 보이는 용아장성의 절벽이 만들어낸 계곡을 따라 힘들게 오르는 길이다.
계곡길의 마지막 이정표에서 눈을 왼편으로 돌리자마자 절벽처럼 솟아오른 깔딱고개가 눈앞을 꽉 가로 막는다. 봉정암 입산 시험이라도 보는 듯하다. 마지막 힘을 다 써서 능선 턱에 오르니 봉정암 건물들의 지붕이 보인다. 이제 다 왔구나.
백담사에서 여섯 시간 정도를 올라온 셈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곳에 암자를 지을 생각을 했을까?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봉황을 따라 오른 곳에 암자를 지었다니, 대단한 심력을 가진 분에는 틀림이 없다.
방을 잡고 땀에 젖은 몸을 씻은 뒤 조금 쉬다가 저녁공양을 했다. 미역국에 밥을 말고 그 위에 노란 무와 오이를 양념에 버무린 것 몇 조각이 전부다. 좁은 경내에는 공양을 기다리는 사람들, 주어진 공간이면 아무 곳에서나 그릇 하나에 담긴 공양으로 요기를 하는 사람들, 설거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저녁 예불을 위해 집사람을 따라 적멸보궁에 들어갔다. 보통 불상이 놓여 있을 자리에 훤한 유리창문 밖으로 우거진 나무들이 보인다. 창문이 연결되는 통로에 부처님 사리를 모신 사리탑이 있다.
법당을 가득 메운 불자들 사이에 자리하고 앉아서 옆의 사람들이 하는 대로 했다. 남자라고는 정말로 몇 명이 전부였다. 예불은 정해진 순서대로 진행되고 있었고 간간이 사람들 사이로 보이는 불경 위에는 아이들의 사진이 놓여 있고 그 사진을 동그란 묵주로 감싸놓았다. 젊은 아줌마의 대부분은 자녀들의 학업 정진 기도를 하러 온 것 같다. 
부처님은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도 버리라고 가르치시는데, 우리는 부처님 앞에서 나를 찾게 해달라고, 내가 잘 되고 내 자식들이 잘 되게 해 달라고 치성을 드리고 있다.
무상無常이 무엇인가? 풀이하면 세상에 변치 않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더 큰 의미는 나 자신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너 자신을 버려라.”고 가르치시는데 우리는 부처님께 우리를 찾아 달라고 치성을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요즘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뇌과학이니 인지과학에서는 의식, 마음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어쩌면 최후의 결론은 동양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비유로 귀결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신이 하늘에 정처 없이 흘러 다니는 구름처럼 허상이라는 것을.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내 가슴에, 아니면 내 머리 속에, 아니면 내 의식 속에. 그러면 내 의식은 무엇인가? 그 속에 내가 있나?
오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설악산 봉정암. 하루 만에 올라와 치성을 드리고 그 날 다시 내려가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위치에 세워진 암자이기에 불자들이 올라와 하루는 꼭 이 암자에서 묵어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암자보다는 불자들의 숙소로 쓰는 건물이 훨씬 더 큰 곳이다. 남자들은 처사동이라는 건물에서 자는데, 내가 오른 날은 여유가 있어 편안하게 잘 수가 있었다. 그러나 바쁜 시절의 숙소 비좁기는 상상을 초월 한다고 한다.
다음날 새벽 혼자 손전등을 들고 봉정암을 출발해서 대청봉으로 향했다.
조금 올라가서 뒤를 돌아다보니 나무들 사이로 적막하고 칠흑 같은 새벽어둠 속에서 조명을 받은 사리탑과 경배단이 그림처럼 눈앞으로 다가온다. 사리탑에서 두 팔로 큰 원을 그리며 절하기 위해 몸을 부복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환영 속에서 춤을 추는 무희들처럼 보인다. 잠시 꿈속에 머무르는 듯한 착각을 자아낸다.
위를 올려보니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이렇게 많은 별들을 보기는 정말로 오래간만이다. 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보석들처럼 크고 작은 광채를 내 뿜고 있다.
능선을 오르니 차가운 바람과 습기를 가득 품은 새벽안개가 옷 속으로 스며든다.
설악산의 동쪽이 열리며 마을과 도시들의 불빛이 눈 아래로 길게 펼쳐진다. 해가 오른 후에 올랐으면 마을과 도시의 불빛 대신에 동해의 푸른 바다가 눈앞에 들어왔겠지….
소청산장은 새로 짓고 있다. 길 오른쪽에 있던 옛날 산장 자리는 공터로 변해 있고 왼쪽에 더 크고 멋있게 짓고 있다.
올라가며 내려오며 몇 팀을 만났는데 대청봉 일출을 보러 간다고 한다. 나는 내려오는 시간을 집사람과 약속을 했기에 일출은 안중에도 없고 대청봉 정상 표지석에 눈도장 찍고 내려오는 것이 전부다.
꼭두새벽에 대청에 오르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가끔 뒤돌아보면 나를 따라오던 전지 불빛이 중청 산장에서 다 없어진다. 전부들 중청 산장에서 기다리다 해 뜨는 시간에 맞춰서 오를 모양이다. 오늘 일출 시간이 여섯 시 십 몇 분이라고 했으니.
아직도 어두워 전지로 길을 찾아가며 5시 경에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는 길도 공사 중. 철제 프레임은 거의 다 되고 그 위에 목제판만 시공하면 될 것 같다.
어둠이 걷히고 서서히 여명이 비치기 시작하면서 하늘과 산의 경계선이 희미하게 윤곽을 그려내고, 소청 부근에 왔을 때는 거대한 운해가 내 아래로 보이는 봉우리들을 감싸고 있었다.
내려오니 아침 공양은 이미 다 끝나 경내가 한산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하산을 한 모양이다. 간단히 아침 정리를 하고 어제 저녁과 똑 같은 음식으로 아침 공양을 하고 주먹밥 몇 개를 배낭에 담아 어제 오르던 길로 내려 왔다. 내가 대청에 갔다 오느라 같이 온 일행 중 가장 늦게 출발한 셈이 되었다. 
하산 길에 옛날 길의 흔적을 찾아보려 했지만, 잘 정돈되고 튼튼한 철제 계곡다리하며 절벽에 기대어 단단하게 고정된 계단길로 인해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옛날 길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렸나? 그 때는 어떻게 올라왔을까? 지금보다 더 지루하고 훨씬 어려운 산행이었음은 분명하다. 위험하고 어려운 길은 모두 나무 계단으로 편하게 오르도록 만들어 놓았으니, 이게 좋아진 세월의 힘인가?
그러나 내려오는 길도 멋있다. 우거진 나무에 맑고 고운 계곡에 시원스레 들려오는 물소리도. 중간에 잠시 쉬면서 먹었던 주먹밥도 꿀맛이다. 영시암에서 먹었던 삶은 감자도 따뜻한 온기도 기억에 남는다.
내려와 버스를 타기 전에 백담사를 참배했다. 봉정암은 백담사에 딸린 암자인데, 불자들이 보내는 치성의 양으로 보면 절과 암자의 위상이 바뀌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내에 가득한 사람들은 치성이나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힘든 산행에 잠시 쉬어가는 곳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그 중의 하나이고.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백담계곡의 물길에 눈길을 맞추며 내려왔다.
다음엔 언제쯤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