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星雲)스님
대만 불광산사 개산조
세상에는 때로 공덕(功)이 있는 듯 보이나 실제로 과실(過)이기도 하고, 과실인 듯 보이나 실제로 공덕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종종 생깁니다. 또 어떤 때는 공덕도 과실도 없어 보이고, 과실도 공덕도 있을 때가 존재합니다.
‘공덕’과 ‘과실’의 사이에서 어떠한 것이 공덕(功)은 적고 과실(過)은 많고, 어떠한 것이 공덕이 많고 과실이 적을 수도 있는지 확실하게 결론짓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공덕’과 ‘과실’은 일시적으로 결론지을 수 없으며 한 사람이나 한 부처에서도 결론지을 수 없습니다.
공덕과 과실은 반드시 시간과 공덕 간의 검증을 거쳐야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시간과 공덕 사이의 검증을 받은 것에는 먼저 허물이 있고 나중에 공덕이 있거나 그 시대 복리시책에 능한 것은 먼저 공이 있고 나중에 허물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대부분 공덕과 과실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예컨대, 날카로운 칼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만 채소를 채칠 수도 있습니다. 창과 대포 등의 무기는 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지만, 평화를 유지할 수도 있습니다. 비상이라는 독약은 사람을 해칠 수도 있지만, 의술이 뛰어난 의사 입장에서 보면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주 좋은 영양식품도 많이 먹거나 잘못 먹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법에는 선악이 없으며, 선과 악은 법이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의 평가는 죽은 후에야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허물이 있다 하더라도 감히 들춰내지 못해 포정과 박해 속에 참으며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해 나갑니다.
사회에 공덕(功)이 많은 사람이 있더라도 정치인이 싫어하기 때문에 곁에 있는 사람이 추진하지도 못합니다. 이처럼 좋은 사람은 감히 추천하지 못하고 나쁜 사람은 들춰내지 못하니 공덕과 과실은 참으로 모호합니다.
철도를 발명한 것은 당연히 공덕입니다. 그런데 열차 사고가 일어난다면 무어라 변론할까요?
하루에 수만 km를 운행하는 비행기와 선박은 시간과 인류에게 베푼 공덕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박 항공사고가 들릴 때면 무어라 해야 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공덕(功)과 과실(過)은 종종 결론짓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모두 결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틈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진시황은 백성을 널리 징집하여 만리장성을 크게 쌓아 원망이 극에 달하였고 역사상 전례 없는 폭군으로 낙인찍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만리장성은 이미 온 세상 사람이 경탄하는 위대한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달에서 지구를 바라봤을 때 유일하게 보이는 건축물이 만리장성이라고 합니다.
동중서(董仲舒, B.C. 170? ~ 120?)는 백가百家를 헐뜯고 배척하며 유가儒家의 학술만을 존중해서, 당시 사람들은 모두 예와 효로써 다져진 예의지국의 나라를 건립한 중국문화라고 긍지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만약 당시에 백가를 헐뜯고 배척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중화문화도 혹시 더한층 다양한 사상이 나오는 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또한 사회도 더 발전되고 개장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측천무測天武후는 ‘지아비를 죽이고 아들을 폐한’ 후황제의 자리를 찬탈하였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그 음란함에 침을 뱉었지만 그가 세운 성당盛唐의 치적은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사상의 수많은 임금과 재상, 문인, 선비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했던 공덕과 과실은 오늘날까지도 아직 결론지을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정책결정자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수많은 생명의 안위와 복지에 관계되니 어찌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별 볼일 없는 말단 기자라도 말을 신중하게 하지 않는다면, 그 ‘과실’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자는 오래도록 더욱 더 삼가고 행동을 더욱 신중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