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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도로를 건너다가 갑자기 작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해보자. 신호 앞에서 제대로 브레이크 제동이 걸리지 않은 차가 달려와 손가락을 스쳐 상처가 났을 경우. 이와 같은 사고를 10명이 똑같이 당했다면, 어떨까. 모든 사람이 이 사고를 똑같이 생각하고 경험할까. 어떤 사람은 “이게 웬 일이야!”라고 화를 터트린 반면, “큰일 날 뻔 했는데, 휴! 살았다”고 다행스러워하는 사람은 없을까. 같은 상황인데도 이들에게 각인되고, 나타난 것은 ‘같은 것’이 아닌 셈이다.
이것이 마음이고, 유식이다. 유식을 모르면 불교의 진수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유식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 나왔다. <마음의 비밀>(민족사 펴냄)이라는 책이다. 일본 도쿄대 불교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릿교우대학 명예교수로 있는 요코야마 코이츠가 쓰고, 유식사상을 전공한 이명우 동아대 교수가 번역했다.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비밀 창고에 해당하는 ‘아뢰야식의 발견’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표층의 마음부터 심층의 마음까지 설명하고 있다.
과연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일까. 진짜 사물일까, 아니면 우리의 마음일까. 만약 창문 밖의 장미를 본다고 해보자. ‘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다.
장미꽃은 사물이다. 보는 눈도 사물이다. 이 두 개의 사물이 마주보아 인식관계를 가진 순간 장미꽃을 보는 시각, 즉 마음이 생기하는 것이다. 시각이 생기하는 것은 눈이라는 기관뿐만 아니라 뇌도 관여하고 있다. 즉 눈의 망막에 비친 영상을 뇌가 훌륭하게 처리해 장미꽃이라는 영상을 생기시키기 때문이다. 이 뇌도 140억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역시 눈의 기관과 동일한 사물이다. 이처럼 사물과 사물이 만남으로써 마음이 생기하는 것이다.
장미의 형체나 색도 시각으로 파악한 것이고 시각 중에 있는 것이다. 즉 시각이라는 마음의 일부다. 그러므로 장미의 형체나 색도 마음속에 있는 셈이다. 보이는 대상인 장미도 마음 속에 있고, 보는 시각도 마음이기 때문에 사실 보는 것은 ‘마음이 마음을 본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식에서 설하는 마음의 기본 구조다.
유식의 용어로 설명하면 ‘보이는 마음’을 ‘상분相分’, ‘보는 마음’을 ‘견분見分’이라고 한다. 내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뜬다. 그러면 나의 의지와 상관 없이 장미를 볼 수 밖에 없다. 즉 마음은 장미와 시각의 둘로 나눌 수 밖에 없다. 이 둘로 나누기 이전의 마음을 ‘자체분自體分’이라고 한다.
유식이란 단지 마음만이 존재한다는 불교사상이다. 소설 <서유기>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7세기 중국 승려 현장이 17년간의 긴 시간에 걸쳐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인도로부터 중국에 가져온 사상이다. 이 유식사상은 21세기를 맞아 갑자기 각광을 받고 있다. 물질문명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지금까지 등한시 해온 마음의 중요함을 알아차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불가사의하다고 할 수 있는 마음을 심층으로부터 관찰하고 분석하여 멋지게 그 비밀을 해명한 것이 유식사상이다.
유식사상은 ‘자신(나) 등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식(마음), 즉 마음만이 존재하며, 마음 바깥의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극도의 비상식적인 견해를 전제로 하고 있다.
유식에서 우선 인정해야 할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건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마음 속의 영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예를 들면 붉은 사과를 볼 때 ‘사과’를 보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보는 건 사과가 아니라 내 마음이 찍은 ‘사과 영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주라도 같은 우주가 아니다. 세 사람이 있다면 3개의 우주가 있다. 유쾌한 기분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우주는 밝은 우주가 되며, 괴로운 기분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우주는 어두운 우주가 된다. 그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살고 있는 우주는 극락도, 지옥도 되는 것이다.
사물을 보는 방식, 사고방식, 느끼는 방식도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르다. 각자의 우주는 결코 타인이 들어올 수가 없다. 그 우주에는 자신만이 있고 자신만이 그 우주를 짊어지고 가야한다. 인간이란, 자신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식이라는 말은 ‘모든 것은 마음속의 영상이다’라는 사실을 언어로 표현한 것뿐이다. ‘모든’이란 자기 자신·타인·자기 주변의 사물·나무나 산과 같은 자연·지구·태양·별 그리고 광대한 우주 등의 모든 것을 포함한다. 물론 태양은 내 마음을 떠나서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실제로 보고 있는 이글거리는 태양, 따뜻하게 느끼는 태양은 틀림없이 내 마음속에 있는 영상으로서의 태양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라는 일인일우주(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의 마음 세계로부터 밖으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벗어나서 태양 그 자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마음엔 8가지 작용이 있다고 한다.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이 다섯 가지 식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에 해당하는 다섯 가지 감각이다. 이 5식은 언어 없이 대상을 직접 파악한다. 오식은 각각 고유 대상을 가진다. 즉 안식은 색, 이식은 소리, 비식은 향기, 설식은 맛, 신식은 촉을 각각 대상으로 삼는다.
6번째(6식)는 의식이다. 의식은 사고다. 오늘날 의식이라면 마음의 경험 내용 총체를 의미하지만, 유식에서 의식이란 이것과는 달리 ‘독자적인 작용을 가진 마음’을 의미한다. 의식의 특징은 오식과 함께 작용해 감각을 선명하게 한다. 또 오식 뒤에서 언어를 사용해 사고한다. 여기까지가 표층심이다.
7식은 말나식, 자아집착심이다. 언제나 아뢰야식을 대상으로 삼아 자신(나)이라고 집착한다. 표층심이 에고로 더렵혀지는 원인은 말나식 때문이다.
8식은 근본심인 아뢰야식이다. 7,8식이 심층심이다. 야뢰야식은 신체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생리적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또한 자연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언제나 계속해서 인식하고 있다.
7식 말라식은 심층에서 언제나 ‘나, 나’라고 계속해서 집착하는 마음이다. ‘자신에 집착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표층에서 행위는 언제나 자기중심적이 된다. 이 자신에 대한 집착을 ‘아집我執’이라고 한다. 이 아집이야말로 우리들이 ‘있는 그대로 있는 것’을 볼 수 없게 만드는 첫 번째 벽이다. 언제나 우리는 자신을 설정하고, 그 자신을 중심으로 사물을 보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라는 생각이 지나치게 강하게 되면 자신과 타인을 구별해 대립이나 싸움이 일어난다. 때로는 전쟁마저 일으킨다. 깨달은 자가 되면 이 말나식을 변혁해 모든 것을 평등하게 보는 지혜를 획득할 수 있다. 즉 평등성지平等性地를 획득해 커다란 자비의 마음을 가져 모든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게 된다.
에도시대 일본 임제종의 중흥조인 하쿠인 에카쿠 선사(白隱 慧鶴, 1685~1768)의 시를 소개한다.
“젊은이들이여! 죽는 것이 싫다면 지금 죽어라. 한번 죽으면 다시는 죽지 않으리.”
불교에서 유위의 생사세계는 고의 세계, 무위의 열반세계는 낙의 세계다. 유위의 세계에서 무위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수행의 목적이다. 여기서 저자는 일본 ‘이로하(以呂波)의 노래’를 소개한다.
향기로운 꽃도 언젠가는 져버리거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누군들 영원하리오.
덧없는 인생(유위)의 깊은 산을 오늘도 넘어가노니,
헛된 꿈도 꾸지 않으리, (유위의 세계에) 취하지도 않으리.
이 노래는 <열반경>의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이란 게송을 풀이한 것이다. ‘모든 것은 무상하니, 이것이 생멸의 법이다. 살고 죽는 것을 떠나버리면, 적멸이 줄거움이 된다’는 내용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