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星雲 스님
대만 불광산사 개산조
불교는 출가자에게 줄곧 ‘몹시 곤궁하게 살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천도를 지키다’, ‘욕심을 적게 하고 만족할 줄 알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지나치게 ‘청빈사상’을 강조했기 때문에 불교신자는 고행에 대해 집착하였습니다. 사실 인생에 있어 지나치게 향락주의만 숭상하고, 지나치게 열기가 끓어오르면 자기 방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지나친 고행을 집착하면 얼음처럼 차갑게 보이며, 자신을 무감각하게도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빈사상’의 참된 의미는 일종의 중도中道의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향락 앞에서는 단순하고 검소한 생각[觀念]이고, 고행할 때는 인간 법희法喜의 성격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 대만 사회는 이미 물욕이 흘러넘치는 형편이 되었고 모두들 돈만을 좇으며 지나치게 낭비하고, 방탕과 사치스런 생활에 빠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미 물질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청빈사상은 바로 우리들에게 자신의 마음이 부유한 데로 되돌아가게 하고, 마음이 대자연과 합치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마음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평생 동안 무엇이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을까요? 삼천대천세계는 모두 내 마음 안에 있고, 우리는 세계를 함유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청빈사상’은 일종의 생각[觀念]의 파종이요, 전 인류를 각성覺醒시키는 것이요, 사회의 어지러운 원인을 전환시키는 좋은 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청빈사상’을 말하자면 석가모니 부처님은 ‘청빈사상’을 실천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왕궁에서 누리던 부귀영화를 버리고 출가하여 3가지 옷과 발우 하나로 운수행각을 하셨습니다. 그분을 보면 마치 아무것도 없는 듯 하나 실제상으로는 우주만유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빈궁을 지닌 것은 나의 최대의 자랑거리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청빈사상’은 반드시 ‘하나도 소유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무無’ 속에서야 말로 ‘유有’가 생길 수 있으며, ‘무’야말로 한량없고 다함이 없습니다.
속담에 ‘만족할 줄 아는 자는 비록 땅바닥에 눕더라도 천당과 같고, 만족할 줄 모르는 자는 천당에 살더라도 지옥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청빈사상’은 바로 만족할 줄 아는 생활이요, 적극적인 생각이요, 자유로운 생활이요, 욕심을 줄이고 마음을 비운 것이요, 태연자작한 인생입니다.
사람이 물질생활상에 있어서 욕심 없고 마음이 깨끗하여[淡.] 만족할 줄 안다면, 형체의 끄달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심성心性 상에도 관직, 부귀, 인정에 대해서는 너무 쏠리지 말고, 몸과 마음을 담박한 속에 안주해야 정신이 승화될 수 있습니다.
현재 세간 상에는 어디에나 빈궁한 부자가 넘쳐흐릅니다. 설령 돈[金錢]이 아주 많은 부자라 할지라도 만족할 수 없으면 정신적으로는 빈궁한 것입니다.
능히 ‘청빈사상’을 통달한 사람은 빈궁이나 만족한 인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청빈사상’은 간단하고 소박한 생활형태이지만 빈궁은 아니며, ‘청빈사상’이야말로 진정한 부유함을 누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