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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치貪瞋痴’를 통한 불교 공부

현재호
후애마이(Who am I)연구소 소장
어떤 문제이든 ‘선행’이라는 처방전이 특효약입니다.(cafe.daum.net/sun-order)


법문을 듣다 보면 언제나 등장하는 ‘탐진치’를 재미있게 한자로 풀어보고자 합니다.
 
탐貪 = 지금 금今 + 조개 패貝
진瞋 = 눈 목目 + 참 진眞
치痴 = 병질 엄疒 + 알 지知


탐진치貪瞋痴, 삼독심이라고 불리는 탐진치는 불자라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이야기다 보니 탐진치라는 말과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한테든 탐진치가 뭐냐고 묻는다면 줄줄줄 설명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탐진치를 보고자 합니다. 한자로 말이죠. 우선 탐진치는 중생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세 가지 ‘독毒’이 있으니 그것은 탐하고, 화내고, 어리석음이라고 해서 삼독심이라 합니다. 왜 그것이 독심인지 한자를 통해서 풀어보시죠.
중국의 선종, 그 중에서도 남선종을 통해서 불교가 전해진 관계로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불교 용어는 한자漢字입니다. 즉, 본래 뜻에 대한 풀이를 한자漢字로 했기에 때로는 불교 용어의 한자 구성을 보면 매우 재미있으면서도 참 뜻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1. 탐貪
남의 것을 탐한다는 ‘탐’.
탐의 구성을 봄으로써 그것이 왜 독毒인지, 분석해 봅니다.
탐貪 = 지금 금今 + 조개 패貝입니다.
여기서 잠시, 지금 금今을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금今 = 합할 합合 + 미칠 급及
즉, 탐貪 = 합할 합合 + 미칠 급及 + 조개 패貝입니다.
지금 금今은 ‘합할 합合’에서 밑에 있는 ‘입 구口’가 생략되었고 (획 줄임) 금今 밑에 있는 ‘ㄱ자’처럼 생긴 것은 ‘미칠 급及’의 변형입니다.
(미칠 급及 = 무엇 무엇에 미치다, 영향을 끼치다, 그렇게 되다)
하나하나 짚어 보면… ‘지금’이라는 것은 과거의 집합체요, 미래의 내 모습을 예견할 수 있는 한 순간입니다. 즉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는 과거 생각의 집합이요, 그러한 생각으로 말미암아 나의 미래가 결정 된다는 것이지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순간은 ‘현재’이지만 이러한 찰라는 매번 사라져 갑니다. 어느 시점만 현재일 뿐 진정한 현재는 과거처럼, 미래처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쏜살같이 과거로 빠져나가는 ‘이 순간’. 그래서 인생에서 ‘이 순간’ 매우 중요한 것이지요.
 
지금의 내 모습은 지난 과거에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모든 것이 뭉치고 뭉쳐서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이라는 의미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한자漢字가 바로 ‘이제 금今’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순간, 돈 만 생각합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돈’이라는 것에 대한 욕심과 허영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만들고 사용할까 하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재물(조개 패貝)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즉, ‘탐’을 낸다… 는 말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십악참회를 읽으면서도 속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남의 것을 탐 한 적이 없어, 나는 정당하게 일을 하고 돈을 벌었다구~”
하지만 탐貪의 진실을 알고 보면 그렇게 말할 것도 아닙니다. 왜? … ‘탐’이라는 한자漢字 자체가 이미 과거부터 지금까지 ‘재물과 돈’에 대하여 얼마나 많이 집착하고 애착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이야기 하는 것이지 남의 것을 탐내고 도둑질을 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즉 탐이란, 나눔 없이 재물에 집착하고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마음은 그 자체가 ‘죄’이며, 삶 전체를 볼 때 ‘독’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탐貪 = 남의 것을 탐하고 도둑질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돈과 재물에 집착하는 생각, 그리고 그 마음으로 돈을 모으는 행위입니다. 설혹 성실히 살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탐’일 뿐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에 독을 키운 것이지요. 그러한 탐을 벗어나는 길은 나눔이요, 베풂이요, 자비요, 보시뿐입니다.


2. 진瞋
화내고 분노함을 의미하는 ‘진’.
‘진’의 구성을 봄으로써 그것이 왜 독毒인지, 분석해 봅니다.
진瞋 = 눈 목目 + 참 진眞(자연 및 진리와 도리를 못 미더운지 다시 돌아보는 것, 눈을 부릅뜨고 보는 것)
한문漢文을 구성할 때, 진眞은 단어의 앞에 놓여, 뒤 단어의 옳음을 강조하는데 사용하기도 합니다. 진眞이 개별 단어의 개념으로 사용할 때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옳다, 맞다, 도리, 진리, 자연, 천연 등이 그것입니다. 도리와 진리, 특히나 자연과 천연을 의미하는 ‘진眞’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눈을 부릅뜨고 본다면…
즉 진실을 진실로 여기지 않는 마음, 진리를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하는 행위.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행위,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그러한 마음…
사람이 그러한 행위를 할 때는 보통, 이성을 잃은 상태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성적이지 못한 것이지요. 옳은 것을 옳게 못보고, 그른 것을 그르게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화내는 것… 불교에서는 막연하게… 무조건 화내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불교의 정신이 그러하다면 어찌 ‘절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습니까? 더욱이 사찰에 가보면 일주문을 지나 금강역사를 만나게 됩니다. 금강역사는 ‘아’금강역사와 ‘흠’금강역사로 나뉘지요. ‘아’금강역사는 입을 벌리고 칼을 높이 쳐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흠’금강역사는 입을 굳게 다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늘 묵언과 인내로써 사건에 일관하는 것이 옳지만 사건에 따라서 화를 내는 것이 옳다면 화를 내서 사건의 절복을 받으라는 것이 ‘아’금강역사인 것입니다. 막연히 무조건 참기만 하는 것이 불교 정신이라면 오랜 역사 속의 전쟁터에서 ‘승병’이라는 용어는 없었을 것입니다.
즉 진瞋이란, 의미 없이 분개하고 성내는 모습을 말합니다. (의미 없이 말이죠) 더불어 마음의 부정적인 변화, 마음의 물듦(정情)으로 인한 감정의 변화, 의미 없는 그릇된 변화들, 자기 자신만을 위한 성냄, 자기 것을 지키려고 성내는 것, 의미 없는 감정 변화들 이런 모든 것이 ‘진’입니다.
 
진瞋 = 명분 없이 성내는 것,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의 동요, 옳고 그름을 자기 기준으로 결정하는 것, 분노할만한 일이 아닌데 분개하고 화내는 것. (운전하다가 자기 앞에 끼어 들어온 차량에 성 내듯… 본인도 길을 모를 때 그럴 수 있으면서도… 본인은 떳떳하고… 남이 하면 다 잘못되었다는 사고방식)


이리저리 봐도 진瞋은 독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망치는 독이 확실합니다.


3.  치痴
어리석음을 의미하는 ‘치’.
‘치’의 구성을 봄으로써 그것이 왜 독毒인지, 분석해 봅니다.
치痴 = 병질 엄疒 + 알 지知
아프고 ‘병’들다 할 때 사용하는 한자에는 대부분 병질 엄.을 사용합니다. 즉 병질 엄.이 들어있다는 것은 병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치痴’도 병이라는 의미겠네요.
인간이 밝혀낸 이론들은 실제 존재하는 사실에 약 4%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이라는 것은, 실제 존재하는 지식의 4%라는 의미입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아는 것은 자기 업무에 관한 부분일 뿐입니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직업이 20,0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단순하게 4%를 20,000으로 나누면, 0.0002% 그나마도 다 모릅니다. (자기 직업에 관한 지식을 100%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대강 20% 안다고 치면, 결국 많이 안다고 해도 0.00004%입니다.
%라고 표현할 수도 없는 빈약한 숫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지식(0.00004%)을 바탕으로 뭔가를 결정합니다. 생각 또 생각. 그런 빈곤한 지식으로 뭔가를 곰곰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불안불안한, 위태위태한 사실 같습니다. 그 말 그대로 궁리일 뿐입니다. 게다가 자기가 아는 범주 내에서는 큰소리도 칩니다. (자기가 맞는다고~)
 
 
치痴 = 자신의 지식을 과신하는 행위, 얄팍한 지식을 기반으로 권위를 지키려는 무모함, 0.00004%도 안 되는 먼지 같은 지식을 바탕으로 꾀를 내려고 하는 미련함…. ‘병’입니다. ‘안다’ 병. 자기가 많이 안다고 착각하는 몹쓸 병 말입니다.그래서 어리석을 ‘치’라고 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살면서 많은 허물을 만듭니다. 그래서 늘 기도로써 참회하라고 합니다. 진리를 어긴 참회(이참理懺)와 대경對境의 삶을 통해 미래를 어지럽힌 참회(사참事懺)가 그것이지요. 그러한 삶 속에서 더욱 우리를 어지럽히는 것이 바로 삼독심입니다. 재물에 대하여 집착할 때가 있습니다. 또한 나의 이익을 위하여 분노하고 화를 낼 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내가 아는 것이 전부 인양 의기양양 논쟁을 벌이기도 하는 미련함이 바로 삼독심이지요. 탐진치貪瞋痴 한자漢字의 구성을 볼 때, 나는 탐진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탐진치를 이해하여 맑은 수행과 더불어 기도와 참회로서 하루하루를 설계한다면 필경 가내 두루두루 자비광명과 가피가 맴돌 것입니다.


Hyun-jaeh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