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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을 어떻게 수지독송할까?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1.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화엄경』이 제 아무리 훌륭한 경전이라고 해도, 수행에 이 경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이것이 관건이다. 모든 대승경전에는 해당 경전을 ‘수지독송受持讀誦’ 하면 많은 공덕이 있다고 설하신다. 즉 경전을 받아 지녀 그것을 읽고 외우면 공덕이 있단다. 게다가 그것을 실천하고, 나아가 남에게 전하면 그 공덕은 참으로 위대하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독송의 공덕이 강조되어 『금강경』과 『법화경』이 많이 출판되기도 했다. 해방 이후 남한에서는, 조계종이 선종을 표방하면서 육조혜능 선사와 『금강경』의 관계를 부각시켰고, 또 종헌宗憲에 『금강경』을 표방하면서 『금강경』 독송이 유독 두드러졌다. ‘스스로에게는 실천, 남에게는 전도’라는 대승의 수행정신 보다는, 소위 공덕경功德經으로 역할을 했다.
『화엄경』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우선 분량이 방대해서 지니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읽기는 더욱 어렵다. 한글 『화엄경』이 1966년과 1968년에 운허 스님께서 동국역경원판으로 2책을 발행했지만, 글자가 너무 작고 게다가 세로쓰기여서 읽기가 쉽지 않다. 최근 글자를 좀 키우고 가로 쓰기로 새 판을 냈고, 또 무비 스님께서 글자도 크고 보기도 좋게 했지만, 권수는 더더욱 많아져서 일상에 날로 ‘수지독송’ 하기는 쉽지 않다.


2.
대승의 5대 경전이라 하여 『화엄경』, 『방등경』, 『법화경』, 『열반경』, 『반야경』을 꼽는다. 여기에 소승의 『아함경』을 합치면 모두 6대 경전이 있다. 제일 양이 작은 『법화경』이나 『열반경』을 제외하고는, 소위 ‘수지독송’이 불가능에 가깝다. 남방의 출가 불자들은 『아함경』을 ‘수지독송’한다고 하니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수지독송’에는 선현들의 지혜가 있었다. 『반야경』의 경우를 보면, 이 책은 모두 600권으로 총 390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설법을 위해 모인 횟수는 모두 16회라고 한다. 장소는 4곳이다. 그 중에서 제9회의 모임에서, 장소는 기원정사에서 설하셨다고 하는 『금강경』이 별도로 널리 보급되었다.
이런 역사의 교훈을 살려, 『화엄경』의 ‘수지독송’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모두 7처, 9회, 39품으로 『화엄경』이 이루어졌음은 연재에서 누누이 말했다.
제28품 「십지품」은 『십지경』으로, 제 38품 「이세간품」은 『도세경』으로, 「입법계품」은 「입부사의 해탈경계 보현행원품」으로 각각 독립 유행된 바 있다. 이런 별행경別行經을 ‘수지독송’ 해도 좋다. 총40권으로 된 「입부사의 해탈경계 보현행원품」도 양이 많아, 이 경전의 제40권 째 내용만 따로 뽑은 「보현행원품」 ‘수지독송’도 좋다.
결과적으로 보면, 600권의 『반야경』 중에는 『금강경』 ‘수지독송’이 성행했고, 80권의 『화엄경』 중에는 「보현행원품」 ‘수지독송’이 성행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분량이 짧기 때문에, 둘째는 대경大經의 요점이 들어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소위 ‘수지독송’ 하기만 해도 공덕이 된다는 ‘방편설’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금강경』이나 「보현행원품」만으로도 훌륭하다. 그러나 『반야경』이 되었건 『화엄경』이 되었건, 그 대승경전이 만들어진 당시의 철학이나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전 전체에 대한 이해와 읽기가 필수이다. 이런 수요에 응해서 현대의 이 분야 연구자들이 각종
‘개론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이것도 좋기는 좋은데, 아쉬운 점은 경전 본문을 거의 접할 수 없다는 것이다.


3.
결국은 대경大經을 읽어야 한다는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막상 읽으려니, 위에서 언급한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첫째 『화엄경』 대경大經이 추구하는 ‘철학’의 핵심을 담았다고 하는 소위 ‘현담玄談’을 가능한 쉽게 풀어서 1월호에서 10월호 까지 소개했던 것이고, 둘째 11월호에서는 『화엄경』 대경大經의 ‘본문’의 핵심을 추려 번역한 ‘초역抄譯’을 소개하려는 것이다.
대경의 원문을 추려 번역하는 것을 ‘초역’이라 한다. 『화엄경』의 경우에도 ‘초역’이 많다. 홍정식 교수(동국대), 김지견 교수(정신문화연구원), 법정 스님(송광사), 다들 고인이 되셨지만 지금도 그 분들이 ‘초역’한 『화엄경』이 서점에 돌고 있다. 그밖에도 많이 있다. 그런데 이런 ‘초역’의 특징은 60권본 『화엄경』을 대본으로 했거나, 또는 『화엄경』의 각 품品을 요약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조선 시대 이래 유행한 80권본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화엄교학’과 또 그것에 준한 각종 ‘불교의례’를 감안할 때에, 한편 『화엄경』의 ‘총체적 구조 이해’를 감안할 때에,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그래서 필자의 경우는 평소 월운 스님(봉선사)께서 ‘초역’한 책을 책상머리에 두고 읽는다. 김월운 번역·해설, 『화엄경 초역』(1978, 동국대학교 부설 역경원, 총173쪽)은 문고판이다. 이 책은 80권본 『화엄경』을 대본으로 했고, 또 전통의 ‘총체적 구조 이해’에 입각했다. 결과적으로 조선 이래 화엄교학 전통 이해에도 큰 도움이 되고, 또 경의 본문을 읽기에도 좋다. 이하에 이 책의 구조를 소개하여 『화엄경』 ‘수지독송’의 교과서로 제안하고자 한다.


4.
『화엄경』의 ‘총체적 구조 이해’에 천재성을 발휘한 학승은 중국 당나라 청량 징관 스님인데, 스님께서는 <현담>에서, 기왕에 전래되는 『화엄경』 읽기에 사용된 10종의 방법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①본부삼분과本部三分科, ②문답상속과問答相屬科, ③이문종의과以文從義科, ④전후섭첩과前後攝疊科, ⑤전후구쇄과前後鉤鎖科, ⑥수품장분과隨品長分科, ⑦수기본회과隨其本會科, ⑧본말대위과本末大位科, ⑨본말편수과本末.收科, ⑩주반무진과主伴無盡科.
이상은 2020년 9월호 『월간붓다』에서 소개했던 내용이다. 이 중에서 가장 유행한 것이 ②‘문답상속과’인데, 크게 네 부분으로 화엄대경을 분류한다. (1)첫째는 ‘거과권락생신분擧果勸樂生信分’, (2)둘째는 ‘수인계과생해분修因契果生解分’, (3)셋째는 ‘탁법진수성행분托法進修成行分’, (4)넷째는 ‘의인증입성덕분依人證入成德分’이다.
신信-해解-행行-증證, 이렇게 네 부분으로 『화엄경』 읽기를 시도한 것이다. 이런 읽기와 분류의 전통은 인도-중국-조선에 걸친 긴 역사 전통을 가지고 있다. 월운 스님의 ‘초역’은 이런 전통을 살려, (1)믿음의 대상, (2)올바른 견해, (3)수행의 실제, (4)깨달음의 경지, 이렇게 네 단락으로 추려서 번역했다.
(1)에서는 부처님의 본체, 부처님의 모습, 부처님의 서원과 수행, 무수한 무리들의 찬탄, 끝없는 세계, 이렇게 다섯의 작은 제목을 달아 각각 「세주묘엄품」, 「십신상해품」, 「입불부사의법품」, 「여래현상품」과 「수미상정게찬품」, 「세계성취품」의 중요한 대목을 추려서 번역했다. 이 대목을 읽노라면 우리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세계를 알게 되어 ‘믿음’을 내게 된다.
(2)에서는 믿음의 본질, 발심의 공덕, 물러나지 않는 믿음, 이렇게 셋의 작은 제목을 달아 각각 「현수품」, 「초발심공덕품」, 「십주품」의 중요한 대목을 추려서 번역했다. 이 대목을 읽노라면 우리는 불교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갖출 수 있게 된다. 믿음의 본질이란 결국 일진법계一塵法界를 믿는 것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3)에서는 수행의 실제로서 보살의 행동강령, 수행의 완성, 이렇게 둘의 작은 제목을 달아 각각 「십회향품」, 「십지품」의 중요한 대목을 추려서 번역했다. 이 대목을 읽노라면 우리는 어떻게 ‘수행’할지를 알게 될 것이다.
(4)에서는 깨달음의 경지라는 큰 제목 밑에 묘각에 들어감, 보현보살의 행원, 이렇게 둘의 작은 제목을 달아 「입법계품」, 「보현행원품」의 중요한 대목을 추려서 번역했다. 이 대목을 읽노라면 우리는 부처님의 경지를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5.
월운 스님의 『화엄경 초역』(1978)에는 이렇게 전통적인 『화엄경』 구조 분석이 활용되어있다. 또 이 ‘초역’을 통해 후학들은 월운 강백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신 대목이 대경의 어느 대목인지를 알 수 있다. 게다가 대목마다 간단한 [해설]을 적어주셔서 전통 강사의 ‘경안經眼’을 배울 수 있다.
필자는 강백께서 ‘초역’하신 책의 윗부분 여백에, 운허 스님의 ‘한글대장경’본 『화엄경』(2책)의 권수와 페이지를 연필로 적어두었다. 그리고 한문 원문의 해당 부분도 메모해두었다. 이와 함께 묵암 최눌 스님의 「화엄품목」 과도科圖를 겸하면서, 수시로 『화엄경』을 ‘수지독송’한다. 시절인연을 보아, ‘초역’과 ‘해당 부분의 원문’을 동일한 페이지에 ‘한글-한문’ 대조본을 출판하여 경학經學의 도반들과 수희공덕할 예정이다. 그 일환으로 금년 동안거 기간 동안 파주 보광사에서 ‘한글-한문’ 대조본(편집본 초안)을 교재로, 재가 불자를 대상으로, 매주 일요일 10시부터 ‘강경법회講經法會’를 시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