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의존한다는 것이란 본래 공하다는 것”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본래의 빚으로 광명을 밝히는 내 손안에 놓인 암라 열매와 같이
삼계가 본래 발생이 없음을 알아 오직 멸제로 정진하네.
멸제에 속한 선정임에도 의지하는 바 없는 중생에게 연민을 일으키니
세속 진여의 순백의 날개를 펴는 백조의 무리를 이끄는 왕이여
선한 바람을 타고서 붓다의 공덕인 피안으로 날아오르라.
용수보살의 중론에 담긴 논리는 입중론에 이르러 그 정수를 꽃 피웠습니다. 우리 내면의 집착을 제거하는 도구란 굴리는 염주 알 속에 담긴 것이 아니라 오로지 공성에 따른 지혜뿐입니다. 공성은 원인을 헤아려 무자성을 일깨우도록 하는 논리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여 본래의 진여란 결국 이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찾고 싶나요? 무언가 해답을 얻고 싶다면 가장 먼저 계율을 지켜 지혜를 일으키는 근간이 되는 일상을 가꾸어 보세요. 기본적으로 붓다의 법은 이웃의 종교와 다름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일체의 번뇌는 무지에 의한 부스럼과 같습니다. 상호 의존의 관계를 명확히 알면 알아 갈수록 이 현상계는 단지 소리에 의한 이름으로 명명된 것일 뿐인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지금의 나와 우리를 붙들고 있는 것이 바로 실집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세상이 존재한다고 착각하게 하지요. 과연 무엇이 실제 할까요? 제가 여러분에게 설하는 쫑카파 대사의 법어는 저의 스승이신 티장린포체와 링린포체로부터 배워 체득한 바입니다. 제가 암기한 내용을 링린포체의 임종 직전까지 곁에 머물며 암송했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돌이켜 봄에 수승한 스승님들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고 역대 스승님의 위대한 가르침을 전수 하게 되었음에 예경을 올리며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평소 연기법을 얼마나 보십니까? 생멸을 고찰하십니까? 연기의 진여란 무지의 뿌리에서 기인하는 삼라만상의 번뇌를 심오하게 환멸 시키는 과정입니다. 무명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연기의 진여가 반드시 요구됩니다. 의존에 얽힌 본성을 생각대로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그 대상의 실체를 파헤칩니다. 지혜로운 이는 연기의 진리에 담긴 세상의 이치를 알고 분별과 망상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습니다.
나는 무엇일까요? 중생으로서의 나는 어리석을 뿐입니다. 나 자신을 보고 나의 몸 나의 말 나의 마음이 결국 그 실체가 공함을 알지 못하면 불법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자성으로써 공함 이외에 존재하는 도리는 없습니다. 상호가 의존하여 발생함을 아는 것은 어느 날 우연히 문 듯 깨우쳐지는 마법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꾸준히 자세히 사유하고 습관으로 훈련해야 비로소 깨우치는 도리입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공 하므로 공한 것은 오류입니다. 고정되어 변화하지 않는 실체란 없음이 바로 공입니다. 숨은 실체란 없습니다. 원인과 조건에 의한 것이 전부입니다. 붓다께서 설하신 법의 정수가 바로 그러한 공입니다.
붓다의 가르침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바로 반야심경입니다. 형색과 공성이 다르지 않음을 논하고 있습니다. 방금까지 실체 없는 대상에 집착하여 왜곡된 편견을 일으켰다면 이제는 과연 무엇이 실체인지 알아보는 지혜의 심지에 불을 붙여 보세요. 연기법의 도리로 불꽃이 타오를 것입니다. 그리고 면밀하게 발생 되는 원인과 조건을 알아차려 공함의 실체를 명확히 해보세요.
자상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말에 걸리지 마십시오. 내가 보고 생각하는 무엇에 대한 조건의 작용을 찾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나의 인식이 바라보는 대상과의 관계를 분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로소 알아야 하는 바가 제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 드러남은 자량도에서 가행도로 향합니다.
물론 단순한 예경도 중요합니다만 실천으로 옮겨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로써 진정한 평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지혜의 빛을 밝혀가며 이내 보살행도에 들어가는 것이 그 순서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분별과 망상을 서서히 줄여가 보세요.
의존하지 않고 생겨나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저는 인도에 망명한 이래로 중론과 중론석 그리고 입중론석을 최선을 다하여 수학하였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 가장 먼저 공성의 이치를 떠올려 보리심을 일으킵니다. 어디서 누구를 만나건 보리심과 공성을 함께 일으켜야 할 필요성을 당부합니다. 세상의 행복을 정의할 때면 저는 이렇게 말해 줍니다.
“다른 이들의 행복을 바라는 데서 행복이 시작된다네.
자신의 행복을 바랄 때 고통이 일어난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