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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일상의 재가 수행에서 범망경의 활용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전통적으로 인도에서부터 불교는 ‘출가’라는 제도가 있다. 부모 형제가 모여 사는 마을의 ‘공동체’를 떠나 출자자들이 모여 사는 숲속의 ‘공동체’로 들어가는 것이다. 마을을 세간世間이라 하고, 이런 마을을 떠난다고 하여 출세간出世間이라고 한다. 이렇게 세간을 떠나 출가하여 숲에 사는 공동체를 인도 말로 ‘승가(󰄒 samgha)’라고 하고, 중국에 들어와서는 한자로 번역하여 ‘衆’이라 쓰고, 한국어 발음으로 ‘중’이라 했다. 이런 공동체 속의 한 개개인은 사문沙門이라 부른다.
요즈음은 세속화되어 상대를 낮추어 보는 뜻으로 변질이 되었으니 ‘중’이라는 용어를 쓰는 건 좋은 언어 습관은 아니다. 그런데 분명하게 알아둘 점은 출가자는 공동체를 이루어 모여 살아왔다는 역사이다. 우리가 ‘삼귀의’ 할 때 귀의하는 대상도 이런 공동체이다. 특정한 개인 출가 사문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거룩한 공동체에 귀의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실정으로는 출가 공동체가 사원(절, 사찰, 암자) 단위로 모여 살고 있으니, 그런 절에 모여 수행하는 공동체의 스님들께 귀의하여, 그 공동체에 삶과 이념을 나도 따르고 받들겠다는 불교 의례가 바로 삼귀의이다.


2.
세월이 흘러 대승불교가 출현하면서부터는 그런 수행 공동체의 내용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생긴 공동체가 ‘보살공동체’이다. 보살공동체가 등장하면서, 그 이전의 공동체와 구별하기 위해 부처님 당시의 전통을 이어오는 공동체를 ‘성문공동체’라고 따로 이름 붙여 부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성문승聲聞僧과 보살승菩薩僧이라는 두 공동체가 세상에 양립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이 두 공동체는 자신들이 수지독송하는 경전도 달리했다. 경이 달라지니 그에 따른 논서도 달라졌다. 즉 3장藏 중에서 경장經藏과 논장論藏을 두 공동체가 달리 전승하여 제자들을 기르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율장律藏은 두 공동체가 동일하게 전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까지 전하는 율장은 모두 7종류가 있다. ①남방상좌부에서 수지하여 전승해온 빨리율, ②화지부가 전해온 5분율, ③법장부가 수지하여 전한 4분율, ④대중부가 수지하여 전한 마하승기율, ⑤설일체유부에서 수지하여 전한 10송율, ⑥근본설일체유부에가 수지해 온 유부신율, ⑦근본설일체유부가 전해오던 것을 티베트어로 번역된 율장, 이렇게 일곱 종이다.
각 공동체에 속한 사문들은 자신들 공동체에서 전승해오는 이런 율장을 준칙으로 삼아, 율법 삼아, 공동체 수행 생활을 했다. 그런데 혹시라도 공동체 소속원 중에서 그 율법을 어긴 자가 있으면, 그 공동체의 청정성은 더럽혀지고 만다. 그렇게 되면 청정하고 거룩한 공동체라고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인도 부처님 당시, 이런 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즉 출가 공동체의 청정성 유지를 위해 ‘참회’라는 제도를 제정하였다. 부처님 사후에는 그런 제도를 율장 속에 넣어 각 부파에서 지켜가며 후세에 전승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우리가 새 옷을 입었을 때는 깨끗하다. 그런데 그 옷을 입고 생활하다 보면 더럽혀지게 마련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버리고 다시 새 옷을 사는가? 그렇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빨아서 깨끗하게 해서 다시 입는다. 이렇게 세탁해서 오염물을 제거하는 방법이 율장에 쓰여 있다. 이것이 바로 ‘포살’이다. ‘포살’이라는 참회 제도를 활용하여 출가 공동체는 항상 청정성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니 세상에는 많은 공동체가 있지만, 그런 공동체 중에서 가장 훌륭한 공동체가 승가 공동체였다. “귀의승歸依僧 중중존衆中尊”이라는 말속에서 ‘중중존衆中尊’이란 중衆 가운데[中] 존귀하다는 뜻이다. 우리말로 풀어보면 이 세상에 있는 공동체들 가운데 가장 존귀하다는 뜻이다. 요즈음 말로 하면, 수많은 직업군群 중에서 가장 도덕성이 높고 존경받을 만한 집단이 스님들 공동체라는 셈이다.


3.
이런 인도의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중국에서의 주변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인도의 출가 공동체는 그 전통이 성문승이건 또는 보살승이건, 출가 공동체는 마을로 내려가 탁발하여 의식을 해결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국왕이나 귀족 문벌이나 큰 부호들이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이 소유하던 토지를 스님들께 헌납했다. 절 지을 땅도 내주고, 그 땅 위에 절도 세워주고, 그 절에서 스님들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음식과 의복과 약물 등을 제공했다. 토지와 더불어 그 땅에 농사지을 일꾼까지 함께 보시했다. 이 점이 인도와는 상황이 다르다.
그리고 중국은 나라에서 토지를 백성에서 나누어주는 소위 ‘봉건제도’가 국가 경영의 근본을 이루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세상의 모든 땅과 그 땅 위에 있는 인간은 물론 모든 생명과 식물과 산천과 산물이 다 천天이 내려 준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천天 아래[下]에 있는 모든 존재는 천天의 소유이다. 이런 천天이 장자長子를 세워, 그에게 모든 권한을 주어 천하를 잘 다스리게 했다. 하늘의 장자가 바로 천자天子이다. 이 천자가 땅을 왕과 제후들에게 나누어주고, 왕과 제후는 그렇게 받은 땅을 다시 자신들 밑에 있는 공신들과 백성에게 나누어주었다. 천자에게 이렇게 땅을 배급받은 왕과 제후 및 그 이하의 모든 사람은 땅을 배급받은 대가로 충성을 천자에게 바친다. 천하를 지키기 위해 군軍에 복무할 의무가 있고, 천자가 천하를 다스리는 데에 필요한 비용과 물자를 세금으로 바쳐야 했다.
그러면 세속을 떠나 출가한 스님들은 어떻게 되는가? 역시 스님들에게도 땅을 준다. 그런데 백성의 2/3를 주는데, 그 대신 세금과 군대를 면제해주었다. 그리고 땅을 줄 때는 그 스님 개인에게 주는 게 아니라, 그 스님이 속한 절 공동체에 배급했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스님들에게도 ‘국법國法’을 지키게 한 점이다. 국법은 법의 기준에 따라 율律, 령令, 격格, 식式으로 등급이 매겨져 있다. 율律은 지금으로 말하면 헌법이고 식式은 시행령이다. 스님들에게 적용되는 법률은 <승도격僧道格>이었다. 승도僧道에서의 도道는 도교의 도사道師를 지칭한다.


4.
<승도격>은 불교 전통의 율장보다 상급 법령이었다. 인도와는 전혀 다른 법률적 상황에 불교가 놓이게 된 것이었다. 고대 인도의 전통에서는 출가자는 출가 공동체 자치와 자율을 존중했다. 그런데 봉건제도가 시행되던 중국에서는 출가자도 천자의 국법을 따라야 했다. 이런 법률적 상황에서 <사寺>는 국가 기관이 되었고, 그곳의 인사 및 재정의 관리권은 국가가 국법과 관리를 두어 통제했다. 왕이나 제후, 내지는 권문세가가 세운 <사寺>는 각각 절을 세운 그들이 관리했다.
이런 제도는 우리나라의 삼국 시대나 고려 시대에도 영향을 주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소위 유교적 이념에 의한 국가 운영을 표방했던 관계로, 국가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대신 토지를 주지는 않았다. 물론 병역과 세금을 면제해주지도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왕실의 묘지인 능陵이나 원園을 관리하는 사찰들, 내지는 그들의 극락왕생을 빌어 주던 추선공양追善供養 하는 사찰들은 그에 따른 토지를 받았다. 물론 주지 인사권도 그들이 가지고 있었다. 국가적인 관리가 적어진 부분을, 조선 시대에는 스님들의 자치와 자립으로 절 살림을 꾸려갔다. 이런 점에서는 국가 권력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승가 공동체의 전통을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런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불교 고유의 법률에 따라 승가 공동체가 살아갈 수 있었다.


5.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대승불교의 전통이었으니, 이에 따른 율장을 활용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범망경󰡕의 ‘10중重 대계’와 ‘48경輕 계’이다. 나아가 이제는 왕실은 물론 특정한 권문세가의 시주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승가 내에서 자급자족하는 쪽으로 사원의 경제 구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이 절에 불공을 올리는 기회도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런 재가 불자들에게도 󰡔범망경󰡕을 설하여, 대승의 불자로서 자신의 삶을 단속하고 더 격조 있는 도덕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좌표를 설정하게 했다.
󰡔범망경󰡕이야말로 대승의 정신을 실천하고 널리 전하려는 정신이 담겨 있는 율장이다. 세상에 태어나 어릴 적에는 죄 지을 일이 거의 없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선 크고 작은 죄를 짓는다. 마치 새 옷을 입었지만 생활하면서 때가 묻듯이 말이다. 옷을 세탁하듯이, 우리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제도가 절에 가서 참회하는 기도이다. 절에 가서 해야 할 중요한 두 가지는 첫째 공양이고, 둘째 참회이다. 그리하여 일정한 때에 재가 불자들도 󰡔범망경󰡕에 따른 수계를 해서, 일상에서 독송하면서 지키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속에 살면서도 거룩하고 청정한 부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상에서 재가 불자들이 󰡔범망경󰡕을 활용하는 믿음과 실천의 불교 신행 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