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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법계라는 지평선 위에 뜨고 가라앉는 태양 같은 인생살이

(23) 법계라는 지평선 위에 뜨고 가라앉는 태양 같은 인생살이


신규탁(연세대 명예교수, 철학 전공)



1.


󰡔범망경󰡕에서는 대승을 신봉하는 수행자들이 지켜야 도덕 덕목을 크게 네 단계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는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을 성취하겠다고 마음먹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가는 단계, 둘째는 앞에서 먹었던 마음을 유지하면서 실천을 계속해 가는 단계, 셋째는 그것을 더욱 단단히 해 가는 단계, 넷째는 일정한 경지를 체험하면서 끝내는 열반을 성취하는 단계이다. 각 단계마다 이것을 열 가지로 항목을 설정하여 10 발취심, 10 장양심, 10금강심, 10지로 벌려 놓았다.
필자는 지난 9월부터 <10금강심>을 독자님들에게 소개해 가고 있다. 9월호에서는 <10금강심>을 총론적인 측면에서 소개했고, 이어서 10월호에서는 각론으로 들어가 <10금강심>의 첫째에 해당하는 ①믿는 마음인 신심信心을 소개했다. 이번 11월호에서는 ②염원하는 마음인 염심念心을 소개할 차례이다. 이왕 전체의 구조적 소개를 했으니, 나머지 항목도 소개하면, ③은 회향하는 마음인 회향심廻向心이고, ④는 공한 줄을 아는 마음인 달조심達照心이고, ⑤는 정직한 마음인 직심直心이고, ⑥은 물러서지 않는 마음인 불퇴심不退心이고, ⑦은 대승의 마음인 대승심大乘心이고, ⑧은 티 없는 마음인 무상심無相心이고, ⑨는 지혜로운 마음인 혜심慧心이고, 마지막으로 ⑩은 번뇌에 부서지지 않는 불괴심不壞心이다.


2.


우선, ②염원하는 마음인 염심念心에 대해 󰡔범망경󰡕에서는 어떻게 소개하는지 그 내용 전체를 아래에 인용한다.


불자여! ‘염원하는 마음(念心)’이란, ‘여섯 가지 염하는 수행(6念)’이다. 항상 ‘부처님을 염하고’ 나아가서는 ‘항상 보시할 것을 염하는’ 것이니, 이 모두가 제일의제第一義諦이다. 공空・무착無著・무생無生・무주無住・무멸無滅임을 알아야 하며, 또 움직여 출발함도 도착함고 없고,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아닌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여러 업을 받는 주체도 조건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인 줄을 분명히 알아, 끝내는 법계의 지혜로 회향해 간다. 지혜와 지혜가 서로 상승相乘하나 승乘과 승乘이 적멸하며, 불꽃과 불꽃은 무상하며, 광명과 광명마다 모두가 없으며, 생겨나고 또 생겨나지만 그렇게 하는 주체도 없어 공의 이치로 점점 나아간다. 앞에서 변變하고 뒤에서 변轉하여, 변하고 계속 그렇게 되어 점점 화하고, 화하고 점점 변함이 동시에 일어난다. 불꽃과 불꽃이 동일한 모습이며, 생성과 소멸이 동시에 일어난다. 이미 변함・아직 안 변함・현재 변함과, 변화 역시 동일하게 수용하여, 역시 그와 같다.


독자들도 이미 파악했겠지만, 󰡔범망경󰡕 전체에 흐르는 근본은 일체의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와 공空 사상이다. 이는 초기 불교 이래 불교의 근본 사상으로 때로는 모든 존재를 인연들의 집합으로 설명하는 연기緣起 사상이다. 지금처럼 과학 지식이 널리 펴져 있는 사회에서는 인과론적 사유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긴 세월 고대 인류들은 <세상 만들고 움직이는 조물주>가 있다는 생각을 해 왔다. 조물주에 대한 발상은 문화에 따라 그 주체를 부르는 이름은 달랐지만, 개인의 운명이나 부족을 삶, 나아가서는 왕조의 운명조차 결정한다는 생각이 다양한 형태로 당시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이런 발상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암암리에 그런 조물주에 의한 운명론적 사고는 남아 있기도 하다.
이런 고대적 조물주에 의한 운명론적 사고를 전면으로 부정했던 분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셨다. 󰡔범망경󰡕에도 불교의 연기론적 사유 전통이 그대로 이어진다. 본문에 등장하는 공이니 무상이니 하는 용어들이 그런 사유 전통에서 나온 말들이다. 그런데 이곳 󰡔범망경󰡕에서는 기존의 연기설에 입각해서, 그저 공이나 무상이나 무아만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런 ‘사상’에 입각하여 실천의 ‘덕목’을 제시하고 있다. 세상과 인간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이론>을 바탕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실천>을 말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본문에 나오는 <여섯 가지 염하는 수행>이다. 육념六念이다. 첫째는 부처를 생각하고, 둘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셋째는 청정한 수행 공동체인 승단을 생각하고, 넷째는 계율의 조목을 생각하고, 다섯째는 남에게 보시할 것을 생각하고, 여섯째는 좋은 세상에 태어나기를 생각하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생각하고’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 말뜻에는 ‘염원한다’는 뜻도 담겨있다.


3.


대승불교가 추구하는 가치를 잘 담아내고 있다. 그것도 화엄의 법성사상에 입각한 실천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대승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교리들이 무수히 많은 데, 그 교리들을 지식 생성이라는 관점에서 정리하면 크게 셋으로 묶을 수 있다. 있다. 첫째는 지식이란 인식 활동에 근거한다는 <유식법상계통>이 있고, 둘째는 지식을 비롯하여 모든 것은 공하고 무상함을 드러내어 그 반사의 결과로 반야의 지혜를 간접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반야중관 계통>이 있고, 셋째는 지식은 인간 본래의 본성에 근거한다는 <화엄법성 계통>이 있다. 󰡔범망경󰡕은 이상의 세 계통 중에서 셋째의 <화엄법성 계통>의 대승불교 경전이다.
인용된 본문에 나오는 “끝내는 법계의 지혜로 회향해 간다”라는 구절에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일체가 무상하고 무아이고 공하여 모든 것이 연연의 조화라고 세상일과 자신의 삶을 이해하되, 그런 것은 결국 법계의 지혜로 회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법계’라는 용어가 경전 속에서는 많이 나오지만, 그 뜻을 지금의 사람들이 비전문가도 알 수 있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간 필자가 이 방면을 연구한 경험에서 요약하면 이렇다. ‘법계’란 각자의 사람들에게 ‘놓여 있는’ 세상이다. 누가 그렇게 놓아둔 것도 아니라는 뜻을 담으려고 ‘놓여’라는 피동사를 만들었다. 그것이 인간이 만든 문명 세계가 되었든 또는 자연 세계가 되었던, 내 앞에 놓여 있다. 그것들은 내가 만들어낸 게 아니고, 물론 조물주가 만든 것은 더욱 아니다.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생명체들이 만들어낸 업業의 결과라고나 할까?
우리가 돌아가는 것은 결국은 그런 업의 결과물로 주어져 있는 법계이다. 그런데 그런 법계가 화엄의 법성교학에서는 중생들의 <청정한 본마음> 위에서 펼쳐진다고 해석한다. 법계法界는 모든 중생의 몸과 마음의 본바탕(本體)이다. 그것은 본래부터 신령스럽게 밝아 확연히 사무치고, 광대하게 텅 비어 고요하여 오직 하나의 참된 경계일 뿐이다. 형체나 모양이 없으면서 대천세계大千世界에 가득하고, 가장자리가 없으면서 모든 존재를 품고 있다. 물로 그 법계는 마음에 환하게 드러나지만, 그 모양은 볼 수 없으며, 수많은 물질세계 속에서 빛나지만, 그 이치는 쪼개지지 않는다. 진리를 뚫어보는 지혜로운 눈과 망념을 여읜 밝은 지혜가 아니고서는 제 마음속에 이렇게 신령하게 감응하여 소통하는 작용을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을 󰡔화엄경󰡕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세존께서 정각을 처음 이루시고 탄식하면서 말씀하시기를, “기이하구나! 내가 지금 여러 중생을 두루 보건대 여래의 지혜와 덕상德相을 모두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다만 망상과 집착 때문에 그것을 증득하지 못하는구나!” 이에, 법계의 성품에 걸맞게 󰡔화엄경󰡕을 설하시어, 모든 중생에게 자기 자신 속에 있는 여래의 광대한 지혜를 보고서 법계를 깨칠 수 있게 하셨다. 그러므로 이 󰡔화엄경󰡕은 여러 부처님의 신통하고 오묘한 지혜의 작용을 끝까지 다하였고, 모든 법法의 성性과 상相 그리고 이理와 사事를 끝까지 드러냈고, 수행상에서 생기는 ‘심리 상태와 그 항목들을 모두 설했다고 할 수 있다.
󰡔범망경󰡕의 작가는 말하고 있다. 일체가 무상하고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그런데 그것들은 결국은 법계 위에서 펼쳐지는 것으로, 법계 위에서 일어났다 소멸했다 그러기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어떤 조물주가 있어서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니고 제가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그러니 이런 줄을 잘 알고, 여섯 가지의 염원을 가지고 인생살이를 하라고 말이다. 인생이란 법계라는 큰 지평선 위에 뜨고 가라앉는 태양처럼 말이다. 떴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졌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