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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추억으로 산다

이지숙
작가·칼럼니스트·문학심리상담사


부자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기분을 좋게 만든다. 돈이 많은 부자도 좋고, 친구가 많아서 친구 부자라는 호칭을 들어도 매우 흐뭇할 것 같다. 그렇다면 세월에 비례하여 살아온 시간이 긴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짧은 사람보다 추억의 저장 용량이 많을지 궁금증이 생긴다. 감정적 능력인 추억은 인지적 능력인 단순한 기억과는 다른 의미이다. 그러기에 세월에 비례하여 반드시 추억이 많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누군가의 뇌리 속에 그리움이나 애틋함 환희 기쁨 행복 등의 긍정적 감정이 내재해 있다면 그것을 추억의 이름으로 공감할 수 있고, 트라우마를 겪은 기억이나 생각조차 하기 싫은 힘든 시간이 존재한다면 그런 부정적인 감정은 결코 추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늘을 살아가는 큰 힘이 되기도 하는 추억이 가슴 속에 많이 저장되어 있을수록 그들을 부자라고 호칭할 수 있겠다.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어 부자라는 호칭을 듣는 것도 좋겠지만, 즐겁고 행복한 추억이 많아 추억 부자라는 호칭을 듣는 것도 매우 흐뭇하고 의미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좋은 추억이 많은 사람일수록 추억이 적은 사람보다는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여유가 있어 인간관계도 원만하게 잘 이끌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의 추억 중 아무래도 그리운 시간은 부모님과 함께 나누었던 어릴 적 기억들과 나의 소중한 애들이 자라면서 보여준 사랑스런 모습들인 것 같다. 바쁘다는 이유로 애들에게 좀 더 많은 추억을 남겨주지 못한 점이 너무너무 미안하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자식과 여행도 많이 다니고 맛집도 여기저기 많이 다니면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 살면서 우리에게 그리움을 남겨준 부모님, 친구들, 사랑했던 사람들 모두가 너무나도 소중한 추억의 조각들로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자산임에 틀림없다.


우연히 TV 일일 드라마를 보던 중 남자 주인공이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곰곰 생각해 보니 그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닌 바로 추억으로 사는 것이다”라며 추억의 소중함을 힘없는 목소리로 읊조리는 장면을 보았다. 순간 가슴 깊이 와 닿는 공감의 종이 울리는 것을 느끼면서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정작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닌데, 우리는 그것들을 좇다가 너무나도 소중한 추억의 가치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잠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추억 부자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어떤 대기업 재벌보다도 마음이 여유롭고 넉넉한 부자라고 할 수 있다.


“삶의 질을 판단하는 것은 행복지수인데 행복 앞에 ‘기쁨’이 있고 ‘기쁨’ 앞에 ‘만족’이 있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어느 책 글귀가 지금 이 순간 생각나는 이유도 추억이 많은 사람은 행복의 문 앞에 와 있을 확률이 높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 단계로 추억이 많을수록 당연히 행복지수도 높을 것으로 감히 단정할 수 있겠다. 이 풍요로운 계절 가을을 맞이하여 더욱 소중한 추억을 만드는 시간이 가족과 함께 하길 소망한다. 훗날 우리에게 어떤 힘든 일이 다가와도 견딜 수 있는 힘을 제공해 주는 추억이라는 이름을 오늘도 우리 모두가 만나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지금 이 시간도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는 것이기에, 수필 한 편을 쓰듯 그림을 그리듯 예쁘게 서로서로 많이 보듬고 사랑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타인이 정해준 행복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복을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가을을 힘찬 터치로 그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