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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울 것 비우고 정리할 것 정리해야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벌써 한 해를 돌아볼 시간이다.
한 해 동안 나는 무엇을 했던가? 이룬 것은 무엇인가? 잘못한 것은 무엇이고 잘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반성에는 늘 즐거움 보다는 아픔이 많기 마련이지만, 그 아픔도 이제는 또 올해에 남기고 다음 해를 향해 나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로 훌훌 털어야 한다. 잘못에 대한 후회도 새로운 출발을 하는데 발목을 잡는 정도로 심해서는 안될 일이기에..... 나날이 새로운 날이라 하지 않았던가? 새로운 날을 새롭게 맞듯이 새로운 해를 새롭게 맞기 위해서는 비워야 할 것들을 비우고 정리해야 할것들을 정리해야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 우리가 시작과 끝을 정해보는 것도 어떠한 매듭이 있어야만 정리하고 비우며, 새로운 출발을 하는 기점을 잡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회향이 아닐까? 모든 공덕을 중생에게 되돌린다, 모든 공덕을 깨달음을 지향하는 데로 돌린다는 등 회향의 의미와 종류도 여러 가지이지만, 결국은 자신이 이룬 것이 자신을 속박하는 굴레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어찌 죄업만이 우리를 얽매는 것이랴! 선업과 공덕들도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욕망과 아집이 바탕에 있다면 똑같이 우리를 얽매고 부자유스럽게 하여, 결국은 윤회의 업보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나의 것을 잃는 회향이 아니라,
나의 것이라고 착각하고 집착했던
미망을 벗어는 회향, 본래의 실상에 되돌리는 회향을 해 보자!
진정 자유롭고 행복한 존재에로의 출발이 여기에 있지 않은가!

단순히 관념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그러한 사람을 무수히 본다. 훌륭한 일을 하고도 그것을 자기의 공으로 소유하고 자랑하는 마음이 생김고, 그것이 어떤 행동으로 표출되고..... 그렇게 굴러가다 보면 결국 오욕을 뒤집어쓰는 많은 군상들이 있다. 선업과 공덕이 온전한 선업과 공덕으로 남기 위해서라도 그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지 않고 중생들과 깨달음으로 되돌려야 하는 것이다.

애초부터 선업과 공덕을 이루기 위하여는 그 바탕에 올바른 서원이 있어야 한다. 욕망과 아집이 바탕이 되어서는 선업과 공덕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어찌 소 뒷걸음치다 쥐잡는 격으로 좋은 일을 할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선업과 공덕에 해당되지 않는다. 올바른 의도가 깃든 행위만이 도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선업과 공덕의 시작에는 반드시 올바른 서원이 있다.

서원이라 하여 욕망과는 구별되는 어떤 다른 근원적인 힘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올바른 지혜의 눈을 떠 연기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보게 되면, 자연 나를 중심으로 하여 모든 것을 내 것으로 소유하려는 그악스런 욕망에서 나오는 행위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결국 무한한 연기의 그물망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면, 나와 나의 부모형제, 그리고 자식들에게 까지만 작용하던 사랑이 차츰 확대되어 나간다.

그리하여 아집과 욕망을 원동력으로 하여 설계되고 추진되던 행위들이 나와 이웃, 국가와 사회, 나아가 모든 중생들의 행복을 함께 도모하는 건강한 목표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추진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서원이다. 진정한 불자가 된다는 것은 아집을 중심으로하여 일으키는 욕망에 의해서가 아니라 올바른 서원이 원동력이 되어 움직이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욕망을 바탕으로 한 행위에는 언제나 그 행위의 결과를 자신의 소유로 하려는 욕망이 뒤따른다. 서원을 바탕으로 한 행위는 자연 그 결과를 뭇 중생과 함께하려는 회향이 따르게 된다. 회향이란 언제나 서원과 함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룬 뒤에 애써 회향하려 하기보다는 올바른 서원에 의한 행위를 하려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깨달음에 대한 지향과 뿌리깊은 중생심이 언제나 갈등하는 존재! 온전히 욕망을 넘어선 서원을 세우는 것 또한 불가능한 존재이다. 아상의 크고 작음에 따라, 지혜의 깊고 낮음에 따라, 우리들이 세우는 서원에는 아집에 바탕한 욕망이 자리할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또 그만큼 행위의 결과를 내 것으로 소유
하려는 마음 또한 없을 수 없다. 한 해의 농사를 추수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올해를 돌아보게 되는 이맘때면 자연 올해 지은 업의 결실들을 갈무리하려는 마음도 들게 마련이다. 자연 한해의 성취에 대한 자부심도 일어나고 소유욕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것을 진정 내 것으로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소유라는 것이 좀 장애가 되더라도 갖고 싶기도 할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내것으로 하려 해도 내 것이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내 것 이라는 생각은 본디부터 착각일 뿐이다. 모든 존재들이 공동의 몫이요, 또 모든 존재들 어느 것도 자기 것으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과 어긋나는 착각으로서의 소유이기에, 진정 자기 것으로 하지도 못하고, 또 사실과 어그러진 집착을 일으킨 것이기에 수많은 장애와 고통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회양할 것도 없도 회향하는 자도 회향하는 곳도 없다”는 말은 어떤 심오한 경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드러내는 말이다. 우리가 일으키고 있는 착각, 그 착각에 뒤따르는 집착을 부수기 위해 연기와 공의 실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회향이란 특별한 어떤 일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본디 내것이 아
닌 것에 대한 착각과 집착을 쉬고 실상에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내가 지은 것들데 대한 착각과 집착이 나를 구속하고 장애하는 것을 막아, 진정 자유로운 존재로 출발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지은 것들이 나를 구속하게 하지 않고, 본디의 진실 그대로 모든 존재들의 것이 되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자유로운 새 세상이 열릴까? 업이란 것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것은 그것이 갖는 구속성과 장애성 때문이다. 그것이 나를 구속하지 않게 되면 나는 진정 자유로운 존개가 되는 것이요, 내가 지은 업은 모든
존재, 모든 중생들의 행복에로 돌려지는 불가사의한 업이 되는 것이다. 불세계를 건설하고 장엄하는 오묘한 업이 되는 것이다.

한해를 마감하는 이즈음에 이러한 회향을 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통을 산출하는 업을 짓는 존재가 아니라 불세계를 건설하고 장엄하는 존재로 새로운 출발을 하는 전기가 바로 이 회향에 있지 않은가?
나의 것을 잃는 회향이 아니라, 나의 것이라고 착각하고 집착했던 미망을 벗어는 회향, 본래의 실상에 되돌리는 회향을 해 보자! 진정 자유롭고 행복한 존재에로의 출발이 여기에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