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 BBS불교방송 사회문화팀장
취재(取材) 용어가 지나온 길
취재(取材)라는 단어가 이 땅에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 성종 16년, 1485년이라고 한다. 당시 예조에서 주관하는 과거와는 달리 이조와 병조, 그리고 예조에서 실시한 낮은 단계의 시험을 지칭했다. 즉 취재란 인재를 뽑는다는 뜻이었다. 고급관리를 선발하는 과거와는 달리 하급관리를 뽑기 위해 실시하던 임용시험이었다. 재목(材木)이라는 말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재목이란 보통 목조의 건축물 기구 따위를 만드는데 쓰는 나무를 말하지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거나 어떤 직위에 합당한 인물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정한 소질과 능력을 가진 사람을 재목감 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조선시대 취재(取材)는 선발시험뿐 아니라 특정 관직의 후보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주거나 관직을 주는 시험으로 승급이나 기술 연마를 장려하기 위한 것으로도 이용되었다. 그러나 15세기 후반 이후로 관직이 부족하고 인사가 적체되면서 사실상 녹봉 지급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취재시험은 16세 이후 없어졌다. 이처럼 과거시험 말고도 취재(取材)를 비롯해 음직에 의한 문음(門蔭), 이과(吏科), 도시(都試) 등이 있었다.
오늘날 취재라는 용어는 기자와 관련이 있다. 근대적인 신문이 발행되면서 기사에 필요한 재료나 제재(題材)를 조사해 얻는다는 뜻으로 취재를 쓰기 시작했다. 이러한 뜻의 어휘 생성 시기는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인‘한성순보’가 창간된 1883년 10월 31일로 기록되고 있다.
불교 경전에 6성취(成就)가 있는데, 취재기사의 구성요건인 5W1H,
즉 6하 원칙의 정신과 같다고 볼 수 있다.
6성취 가운데 여시아문(如是我聞)이
취재기사의 본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취재 기사는 여시아문(如是我聞)이 본령
기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실과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물론 방송기사는 신속성이 가미되지만 기사의 본질은 진실에 있기 때문에 정확성이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 경전에 6성취(成就)가 있는데, 취재기사의 구성요건인 5W1H, 즉 6하 원칙의 정신과 같다고 볼 수 있다. 6성취 가운데 여시아문(如是我聞)이 취재기사의 본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와 같이 들었다.’부처님의 진리말씀을 자신의 주관을 철저히 배제하고 말씀 하신 그대로 옮기는데, 불교 경전의 생명이 있고 진리성이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취재기사 역시 여시아문의 정신을 살리는 것이 최고봉일 것이다. 논평이나 사설은 언론사마다 나름대로 시각이 반영될수 있겠지만 취재기자의 글은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취재기사야 말로 사실과 사실 관계를 전달하는 유일무이한 글이 되어야 하고, 취재원을 왜곡시켜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 취재원과 취재 기사는 하늘과 땅 사이
같은 말이라도 글로 전달하는 것과 음성이 동반된 말로 전달하는 것이 큰 차이가 있다. 일례로 참여정부 초기 노무현 대통령의‘못해 먹겠다’라는 발언이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다. 대통령의 음성과 발언 당시 좌중 분위기 등이 배제된 채,‘ 못해 먹겠다’라는 말이 신문에 보도됐다. 그것도 큰글씨로 돋보이게 기사화됐다. 이 기사를 본 독자들은 대통령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기가 막힌다는 반응과 함께 취임한지 불과 3개월 남짓된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취임 초기부터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불신감을 사기에도 충분한 기사였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 출입 기자였던 필자 입장에서는 다르다. 두둔하기 위해 이 사례를 꺼 낸 것은 아닌데, 취재원의 발언취지와 분위기 그리고 실제 기사와 여론반응과의 사이에 전혀 상반된 경우에 해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시 노 대통령의 발언은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인사를 초청한 자리에서 나왔다.
당시 청와대 풀(pool) 기사는‘대통령에게 모두 각자의 요구만 들어달라고 요구한다. 이런 식으로는 대통령직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든다’였다. 이 발언은 5.18광주민주화 운동 기념식 참석 저지 소동에 뒤이어 나온 것이다. 말하자면 민주세력 대통령이라고 생각한 자신이 정작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 참석 저지소동을 겪고, 참담한 심경에서 나온 발언으로 해석됐다.
그런데 이 발언이‘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라는 말로 바뀌면서 대국민 불신감을 갖는 발언으로 오해가 된 것이다. 물론 그 당시 발언 분위기와 음성이 그대로 전달됐다 면 이같은 오해를 사는 기사의 파장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까지도 화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취재현장에 있다 보면 취재원의 발언 취지와는 전혀 상반된 기사를 보거나 여론형성이 이뤄지는 일을 가끔 보기도 한다.

▲ 불교, 원불교, 개신교, 천주교 등 종교기자들의 모임체인 한국종교신문 언론인 협의회 회원들이 지난해 제 주도에서 세미나를 열고 있는 모습
영원히 기억에 남을 특종기사 취재기자에게는 누구나 특종(scoop) 욕심이 있다. 매달 한국기자협회보 이달의 기자상 특종기를 보면 마치 고시 합격수기와도 같이 열정과 노력이 숨어 있다. 어떤 경우는 철저한 준비와 팀워크를 통해 특종기사를 만들어 내고, 어떤 이는 공사간의 인맥과 투철한 고발정신을 활용해 특종을 뽑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특종은 우연과 준비의 합작품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1991년 9월 18일 이 날은 분단 이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는 날이었다. 당시 뉴욕 파견생활을 하면서 유엔본부출입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특종기사를 낚았다. 모든 일간지를 비롯해 방송사가 기사를 받아주었고, 정보기관까지 누가 그 기사를 썼는지 파악하는 정도였다. 실제 모든 언론사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연설문을 톱기사로 작성 편집하고 있었는데 필자의 기사로 톱기사를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자랑 같지만 사실 이 기사는 정말이지 우연히 잡은 것이다. 대통령 유엔총회 연설을 듣고 기자실로 옮기려는데 일단의 일본 기자들과 북한의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이 어디론가 집단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순간 일면식 있는 일본 기자도 있고 해서 동행 취재를 하게 되었는데 강 부부장의 입에서 그 기사가 터진 것이다. 그렇다고 우연만은 아니었다. 유엔 체류동안 유엔 주재 북한 외교관 취재에 정성과 공을 무척이나 들였다. 그리고 당시 연형묵 총리, 강석주, 허종 등 북한 인사들을 익히고 관련기사를 준비했다. 지금은 남북정상회담이 정례화 되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세계적인 뉴스였다. 지금 생각해도 뿌듯하고 보람을 갖는 기사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