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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피에 감사하는 기도를

공종원 / 언론인


어느덧 2009년 기축년도 저물어가는 시점이다.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르면 늘 아쉬움과 미흡함에 회한에 잠기곤 한다.
한해가 가는 것은 우주적으로 보면 대단할 것도 없는 지구상의 한 순환 과정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보면 조금씩 늙어가고 조금씩 죽음에 더 가까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죽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고 생로병사(生老病死), 영고성쇠(榮枯盛衰)는 자연 순환의 원리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자연 순환의 원리로 한해가 저무는 현실을 맞으며 모든 이들이 똑같은 느낌과 생각을 갖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그 사실에 별로 생각조차 없겠고 반대로 어떤 이는 너무도 심각하게 생주이멸(生住異滅)의 현실을 뼛속깊이 절감하기도 한다. 몸이 병들어 죽음이 눈앞에 있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한해가 저무는 것은 죽음의 사자를 눈앞에 맞는 것처럼 괴로운 일일 터이다.
불교적으로 보면 이런 괴로운 현실은 깨달음을 통해 극복되어야하는 대상이다. 나고 죽는 현실을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이고 달관하여 생사일여(生死一如)로 보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불자들의 목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달관의 경지를 얻기 위해 부단한 사색과 수행이 필요하다는 것은 물론이다. 돈오돈수니 돈오점수니 하는 수행 방법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중생이 부처가 되는 상황에 대해 이런 저런 논의가 따라붙는 것도 당연할 것 같다.
하지만 평범한 생활인에게 있어서도 불교가 지향하는 깨달음의 경지로 나아가는 노력들이 없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마조가 말하는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라고 하는 말이나 조주 스님이 말하는 ‘차나 마시라(喫茶去)’고 하는 말이 소중한 것은 그래서 일 것이다. 평소의 생활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탐욕과 화냄을 진정시키며 어리석음을 떨쳐버리는 노력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조스님이 ‘기왓장을 간다고 거울이 되느냐’고 하는 말은 수행을 한다고 특별한 장소와 시간과 형식만을 추구하지 말고 더 중요한 것은 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마음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자기를 돌아보고 늘 자기의 참 마음을 찾아 맑히는 노력이 새삼 강조될 밖에 없다. ‘자신의 마음을 거울처럼 깨끗하게 닦는 것’은 혜능스님에게 있어서는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이의 유치한 수준을 반영하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끊임없이 마음을 닦는 노력은 토끼에게 뒤지는 거북이처럼 우둔해 보일지는 몰라도 범부중생의 정직하고 성실한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면에서 그런 태도야말로 이 사바세계를 아름답게 만들고 순수하게 만들어 오탁악세를 불국토로 만드는 원천이 된다고 할 것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마침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을 위해 수많은 불자들이 절에 몰려와 기도하는 것을 보게 된다. 산꼭대기에 있는 불상을 둘러싸고 개미떼처럼 모여있는 기도 인파를 텔레비전 화면이 비쳐주는 것도 보았다. 부처님 앞에서 수없이 절을 하며 염주를 돌리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며 무한히 감동하게도 된다. 어느 해에나 있는 장면이기는 하지만 요즘 와서 새로 느껴지는 것은 자식들을 위해 전심하는 어머니들의 그런 기원들이 너무도 소중하고 너무도 정직한 마음의 소산이라는 점이다. 어찌 보면 그런 기도는 너무도 이기적이고 기복적인 신앙행태로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자식을 위한 어머니들의 기도가 그 성과여부에 관계없이 너무도 진지하고 아름다운 마음 집중의 한 순간을 이루고 있는 사실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절실히 기도하고 이렇게 절실히 마음을 집중해 부처님께 애원하는 순간에만은 적어도 악한 마음, 더러운 마음이 자리잡을 여지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도 든다. 그리고 그런 순간에 기도하는 이들이 남의 자식을 떨어뜨리고 자기 자식은 합격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기도한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자식의 합격과 성공만을 기원하는 순수한 마음과 절절한 소원만이 있을 뿐이겠다.

물론 이런 기원과 마음집중이 개인적 욕망과 이기심을 넘어 모든 중생을 위한 보편성의 수준에까지 확대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말할 나위없는 일이다. 모든 이들이 요익중생(饒益衆生)의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자신의 행동을 회향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우리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를 권하고 싶다. 유가에서도 일일삼성(一日三省)이라 해서 하루에 세 번은 자기를 돌아보고 반성하라고 가르치고 있고 어떤 철인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를 정리하고 반성하는 습성을 기르라는 충고를 하고 있다. 하루의 생활을 하고 집에 돌아와 하루를 반성하면서 자기를 무사하도록 지켜주고 있는 그 어떤 존재에게 감사하는 것을 생활화하는 이들도 있다. 그이에겐 그 대상이 하느님이 되건 부처님이 되건 문제가 아니라지만 불자들은 하루를 보내며 혹은 한해를 보내며 늘 자기와 가족과 이웃을 지켜주신 부처님의 가피에 감사하는 기도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과정이 어떤 이에게는 유치하고 못난 것처럼 비쳐질지 모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범부 중생에서 부처님으로 나아가는 분명한 한 발짝이 될 것이라고 믿어진다.


<발문>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를 권하고 싶다. 특히 불자들은 하루를 보내며 혹은 한해를 보내며 늘 자기와 가족과 이웃을 지켜주신 부처님의 가피에 감사하는 기도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과정이 어떤 이에게는 유치하고 못난 것처럼 비쳐질지 모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범부 중생에서 부처님으로 나아가는 분명한 한 발짝이 될 것이라고 믿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