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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를 헤아려 존중하고 대화하라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마음 수행이란 서서히 점점으로 증장하는 것. 한 순간에 단박으로 깨우치는 것은 없다네.”
달라이라마(뗀진갸초, 78)
현대인이 원하는 명료한 법담, 예상치 못한 측면에서 바라본 의문과 달라이라마 그만의 남다른 불교적 관점. 달라이라마 스스로도 역대 달라이라마 가운데 가장 유명세를 치루는 이가 바로 14대 달라이라마 본인일 것이라며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달라이라마의 유명세란 정치적으로 오늘날 처한 티베트의 곤경과 종교적 측면의 영적 선지식이라는 측면 모두로 해석해야할 것이다. 반세기를 남의 나라에 세 들어 살고 있는 21세기의 붓다가 처한 모순적 상황은 우리 인간이 과연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참된 삶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다. 
인도 다람살라의 몬순이 끝난 후 2개월 여간은 아시아 불자들의 권청으로 달라이라마의 법회는 시작된다. 올해에도 한국불자들과의 법회를 시작으로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몽골에서 다람살라를 찾아 달라이라마의 법을 나눴다.
싱가포르 법회의 경우는 올해로 3년째 샨티데바의 <입보리행론>을 주제로 삼으면서 선정품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11월 15일부터 보름간 일본을 방문한 달라이라마는 현대 과학자는 물론 교육학자들과의 대담을 갖는데 이어서 일상생활에서의 불교적 지혜 활용 방법을 일컫는 대중법문을 열었다. 불법을 통한 국경 없는 대화. 세속적 윤리 의식으로 경계의 영역을 통섭하는 달라이라마의 구도는 실제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이 시대의 실천불교이다.
(다음은 싱가포르법회에서 <입보리행론> 선정품 가운데 핵심)
석가모니 붓다의 근본 말씀은 빠알리권과 산스크리트권을 구분하지 않는 하나의 설법입니다. 그 음성을 근거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불자들은 현대과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와의 적극적인 만남을 통해 이치의 순리를 바로 밝혀야 합니다. 연구를 통해 도출해낸 결과만이 진실한 참으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지난 독일에서 교황과의 만남 당시에, “우리와 같은 종교의 지도자들은 매사를 반드시 이치와 타당한 근거로서 행하도록 한다”는 당부를 서로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물질의 본성을 알고 제 3의 시각으로 접근한 것이 현대 과학입니다. 반면 종교는 물질을 사고의 중심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종교의 중심은 인간의 감적 즉, 마음입니다. 우리가 신(조물주)을 말할 때, 그가 창조주라면 왜 그는 지구를 만들었으며 무엇을 원하는 의도를 가졌는가에 대한 동기를 부여해야 합니다. 조물주가 원하는 바는 과연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 보십시오. 진실로 신에 의해 만물이 창조되었다면, 이기심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우선 항목일 것입니다.
한 예로, 우리 가운데 한 이가 부유하고 유명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창조주에게는 복종해야 하며, ‘나’라고 하는 생각을 줄여야 할 것입니다. 신은 무궁한 사랑을 지닌 이입니다. 그러한 사랑으로 세상을 만들었으며, 그러한 신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이기심은 절제되어야 합니다. 저의 한 무슬림 친구가,   “일반의 이슬람 수행자는 알라의 본성인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한 것 역시 같은 의미입니다. 종교의 자세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실천되어야 하는지 되짚어 봐야 할 것입니다. 타인을 이롭게 하고 돕는 것이야 말로 종교의 보편적인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붓다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종종 모순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각각 사람들이 지닌 마음의 성향이 다양하기 때문에 그에 기인한 것입니다. 각각의 다양한 종교를 존중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서로를 보다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철학이 있는 종교 가운데 신의 존재성을 거부하는 불교는 ‘업과業果’로서 사고합니다. 업은 행위를 의미합니다. 어떤 마음을 지닌 자가 그러한 행을 지은 결과로서 다시 원인과 조건을 발생시킨다고 보는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우리가 느끼는 감각입니다. 이를 규명해 보면, 모두 마음의 작용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신중히 살펴 봐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어디서부터 ‘비롯’이 되었는가를 말입니다. 한 가족이 다양한 업과로 맺어져 사회의 공통된 업으로 확대됩니다. 그것이 바로 공업共業입니다.
마음을 지닌 ‘나’라고 하는 존재가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에 대해서 붓다께서는 수행 당시에 ‘나’라는 생각에서 생겨나는 작용 다시 말해, 내 몸이 태어나 성장하고 병들어 늙어감에 따라 마음이 작용한다고 하였습니다. 때문에 육신과 상반된 존재인 윤회의 중심이 업과의 허물을 알아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수행이 바로 행복이라고 본 것입니다.
인간 마음의 탐욕을 완벽히 없애는 것은 힘듭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에 대한 강한 인식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항상 ‘나’를 중심으로 살펴보며 살아온 진한 습기가 있습니다. ‘나’라는 생각에 빗대어 모든 현상을 판단해온 습은 당연히 자신만을 위해 욕심을 채우는 이로 굳어졌습니다.
오온과 구분 되어진 ‘나’는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나’는 왕과 같아서 육신과 마음이라는 신하에게 명령하고 다스릴 수 있다는 착각으로부터 깨어나세요. 상호가 의존하여 연기로서 존재함을 알아야 합니다. <입중론>의 마지막 장에는, ‘나무 수레가 바퀴와 널빤지가 붙어 지어진 이름이듯이 나는 상호 의존하고 작용하는 연기법을 통해 생겨난 색수상행식의 가립’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연기법을 사상으로 삼고 비폭력을 실천으로 삼아 어느 누구도 헤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신을 믿는 이들에게도 예외가 없습니다. 내가 적으로 여기는 이들 또한 아버지인 ‘신’이 만들어낸 이들임을 안다면, 절대 파괴와 학살은 이 지구상에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행복을 원하듯이 모든 생명을 지닌 존재들 또한 그들 나름의 행복을 원합니다. 인과 연기법과 상호 의존하는 연기법을 상기하세요. <입보리행론>에서는, ‘결과가 존재하기에 원인도 존재함을 알아, 원인이라는 본질 그 자체와 결과라는 그 본질 자체가 원인에 의한 것임을 염두에 두라’고 하였습니다.
용수보살은 <보만론>에서, 우리가 원하는 행복을 여섯 가지로 구분하였습니다. 이생의 행복과 내생의 행복, 인간 몸의 행복과 궁극적인 영원의 행복, 업을 끊은 해탈의 행복과 소지장까지 여읜 붓다의 행복이 그것입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몸과 말 그리고 마음의 다스림이 지닌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쫑카파 대사께서도 “내 자신이 불선업을 행하지 않고 반드시 십선업을 닦아 궁극에는 불지에 이르리라” 서원하신 바 있습니다.
마음을 서서히 향상시키는 것. 그 차제를 체계적으로 제시한 것이 <입보리행론>이며 이를 심화한 것이 <보리도등론>입니다. 열 가지 불선업을 행하지 않고 십선계를 수행하여 다음 생에도 인간의 몸을 받으며, 더 나아가 윤회 그 자체도 고통임을 알아서 행복과 풍요의 허물을 보고 염리심을 냅니다. 이어서 나만의 해탈이 아닌 일체 중생을 불지에 이끌겠다는 필사의 실천으로 보살계를 수지하여 ‘보리심’을 일으킵니다. 지관수행으로서 공한 본성을 닦을 때 비로소 금강승의 수행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은 삼매에서 생겨나는 산란심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선한 대상을 마음에 상기하세요. 그 대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면서 안정을 찾습니다. 그렇다고 선한 대상에 무조건 안주하면 혼침과 도거에 빠지게 되니 이를 주의해야 합니다. 적정한 선에서 의식은 총명해야 하며 밝고 또한 명료해야 합니다.
선정을 휴식으로 여겨서도 안 됩니다. 저는 한 때 3년 3일간 무문관 수행을 한 이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수행을 하면서 “마치 머리가 바보가 된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수행당시에 의식을 총명하게 다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정에 입문하는 이들은 호흡을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들여 마심과 내뱉음에 마음을 집중하며 호흡을 살피되 오감을 배제하세요. 서서히 마음의 망상이 일어남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바깥의 대상을 기준으로 하여 하나의 마음으로 머물며, 모든 존재한다고 여겨온 것의 무상함을 확신합니다. 이를 지속적으로 관찰하세요. 그리고 이어서 자비관으로 이어갈 수 있습니다. 자비란 무엇입니까? 책에서 말씀에서 찾아보기 이전에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오늘 법회가 끝나고 사원 밖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숙소로 돌아가 당신이 생각하는 자비를 떠올려 보기를 바랍니다.


인도 다람살라에서 가연숙
omflower@gmail.com / www.gagyo.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