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한 스님
행복나눔 대중견성공동체 빠리사선원장
나에 대한 가치관이 좋으려면 먼저 나에 대한 수식어가 좋아야 해요. 불행해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나에 대한 그 수식어가 부정적인 경우가 참 많아요. 나를 병들게 하고 내 삶을 좀 먹게 하는 것은 바로 그 부정적인 수식어 때문이에요. 다른 말로 하면 열등감 때문이기도 해요. 그러므로 행복한 삶을 살려면 먼저 나를 장식하는 수식어부터 깨어 있어야 해요. 추남인 나, 추녀인 나, 게으른 나, 형편없는 나, 운세가 꽉 막힌 나, 그 부정적인 수식어의 늪에서 벗어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에요.
‘나’를 한자로 쓰면 ‘나 아我’자예요. 그런데 그 ‘나 我’자가 참 재미있어요. ‘손 수手’자와 ‘창 과戈’자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말하자면 손에 창을 들고 있는 모습이지요. 그런데 손에 창을 들고 있다는 의미가 뭐예요? 적으로부터 나를 방어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내 맘에 안 들면 공격하겠다는 뜻도 담고 있잖아요. 그러므로 ‘나 我’자는 모든 상대를, 심지어는 가족조차도 적으로 상정한 채 대치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나’ ‘나’ ‘나’ 하고 그 ‘나’만을 좋아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에요. 지옥을 파는 놈도 그 ‘나’라는 놈이고 전쟁을 끌어오는 놈도 바로 그 ‘나’란 놈이거든요.
가치관을 바로 한다는 것은 ‘나’라고 하는 자아관, 즉 정체正體를 바르게 한다는 뜻이에요. 나에 대한 정체관을 바로 할 때 가치관은 저절로 바르게 돼요. 나에 대한 정체관을 바람직하게 하고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때 내 삶의 행복지수는 점점 100점에 가까워지게 돼요.
생명은 에너지예요. 그래서 생명 가진 모든 것들은 반드시 뭔가를 향해 가게 되어 있어요. 중요한 것은 갈 때 잘 가야 한다는 거예요. 잘못 가면 낭떠러지로 떨어져 나락으로 가거나 늪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기 십상이거든요. 반대로 잘 가면 어떨까요? 천상으로도 가고 극락으로도 가고 천당으로도 갈 수 있겠지요? 삶이 끝없이 길을 묻는 과정인 것은 그 때문이에요.
궁극적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요? 궁극적으로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는 어디일까요. ‘저스트 두 잇 해피!(Just do it happy!)’ 그래요. 삶의 룰은 단 하나, ‘행복’이에요. 수많은 종교학자와 철학자들이 인생의 목적과 룰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 찾아낸 것은 단 두 글자, ‘행복’이라는 단어뿐이었어요. 이제 인생의 룰을, 삶의 목적을 멀리서 찾지 마세요. 바로 지금 내 안에 들어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 바로 꺼내 쓰기만 하면 되니까요.
행복해지고 싶으신가요? 그럼 지금 바로 행복해져버리세요. 마음속에 무언가 꼬깃꼬깃한 것이 있더라도 “나 지금 행복해져버리겠어.” 하고 딱 결단을 내려버리세요. 지금, 당장, 바로, 딱, 행복해져버리는 방법 하나 알려드릴게요. 우리 얼굴 근육은 미소근육도 되고 우울근육도 된다는 것 잘 아시지요? 정말 그래요. 양 입술꼬리를 위로 살짝 치켜 올려보세요. 그 순간 얼굴에 부처님 미소가 번지며 마음에 잔잔한 행복감이 고일 거예요. 반대로 입술꼬리를 밑으로 내려 보세요. 두레박 가라앉듯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낄 거예요. 이제 지금 바로 당장 행복해져버리는 법 알겠지요?
행복은 좋은 느낌이에요. 느낌 좋은 것이 행복이고 느낌 좋지 않은 것이 불행이에요. 달리 말하면 느낌 좋다는 건 호감정을 말해요. 가슴 좋은 걸 말해요. 기분 좋은 걸 말해요. 영어로 말하면 good feeling이에요. 지금 내 가슴은 얼마나 good feeling 한지요? 행복은 먼 데 있지 않아요. 바로 자기 가슴에 있어요..
인생이란 별거 아니에요. 기분 좋자는 것이 인생이에요. 하루하루 기분 좋게 살 때 행복한 인생이 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선 조금은 노력해야 해요. 싹이 돋고 잎이 나고 꽃이 피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아무런 노력도 없이 거저 행복을 얻을 순 없어요. 아무런 노력도 없이 거저 행복해지겠다는 건 도둑 심보나 다름없어요. 혹시 내 마음속에 그런 심보자기가 들어있는 건 아니겠지요?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요, 행복은 호감정이요, 좋은 느낌이라고 했어요. 그럼 행복의 주체는 누구일까요? 당연히 ‘나’라는 대답이 먼저 나올 거예요. 그러나 나만 행복하다고 해서 진짜로 행복할까요? 단연코 아니에요. 내 삶이 진짜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내 가족이 먼저 행복해져야 돼요. 그 다음에 내 이웃이 행복해지고 내 국가가 행복해지고 세계가 행복해지고 지구가 행복해지고 우주도 함께 행복해져야 비로소 진정한 내 행복도 존재할 수 있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내 가족이, 내 이웃이, 내 국가가, 지구가, 우주가 불행한데 어떻게 나 혼자서만 편안히 행복할 수 있겠어요? 그럼, 이제 답은 명확해졌네요. 행복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우리 모두라는 것을 말이에요. 인생의 목적도 당연히 우리 모두의 행복이라는 것을 말이에요.
 
‘우리 모두’의 행복 할 때 ‘우리 모두’의 범주는 넓을수록 좋아요. ‘우리 모두’의 범주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그 사람은 성자聖者의 삶을 살게 돼요. 무한우주에 존재하는 유정무정 유형무형 모든 존재에게까지 ‘우리’의 범주가 넓어질 때 나의 행복 또한 무한우주로 확장되게 되어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살려면 우선 나부터 행복해져야 해요. 기본적으로 내가 먼저 행복해지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살 수가 없어요. 그러기 위해선 먼저 수심을 해야 돼요. 마음을 잘 닦아서 내 마음부터 천국을 만들어야 해요. 내 마음이 지옥인데 남을 행복하게 해줄 순 없잖아요.
우리 모두의 행복한 삶을 위해선 다른 사람과의 화합도 참 중요해요. 아무리 수심을 잘해 마음천국을 이루고 살아도 다른 사람들과 화합을 잘해 관계천국을 맺지 못하면 그건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없거든요.
작선(착한 일, 좋은 일) 역시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매우 중요한 덕목이에요.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일터에서 내가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 해야 하는 것은 물론, 나와 내 가족과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서도 봉사하고 헌신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해요. 그렇게 해서 세상천국을 만드는 것, 어쩌면 진정한 행복은 거기에 있는지도 몰라요.
행복은 권리이자 의무예요. 내가 행복해질 권리도 있지만 내 가족을, 내 이웃을, 우리 국가를 행복하게 해줄 의무도 있어요. 권리만 넘치고 의무는 없는 세상이라면 너무나 이기적이고 막가는 세상이 되지 않겠어요? 막가는 세상에선 자연히 내 행복도 막가버릴 테고요.
행복은 감동에서 시작돼요. 그래서 전염성이 강해요. 갓난아이가 활짝 행복하게 웃으면 부모는 어때요? 웃지 말라고 해도 아주 행복하게 활짝 웃지요. 반대로 부모가 행복하게 활짝 웃으면 어때요? 영문도 모른 채 아이들도 덩달아 활짝 웃어요.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친구 간에도, 이웃 간에도, 아니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도 행복 바이러스는 강하게 퍼져요. 텔레비전의 개그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