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상 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고전은 읽는 이로 하여금 사유의 폭이 저절로 넓어지게 하고 깊이도 깊어지고 높이 날아오르게 해준다. 대책 없이 뜨는 것이 아니라 침잠의 세계도 아울러 함께 알려준다.
장자의 추수편을 읽어본다. 추수秋水는 여름날 중국 전역에 내린 장맛비가 온갖 내천을 흘러 가을이 되어서야 황하강에 흘러들어 세차게 흐르는 가운데 흘러넘치는 황하강물이다.
秋水時至 百川灌河 추수시지 백천관하
涇流之大 兩.渚崖之間不辯牛馬 경류지대 량사저애지간불변우마
於是焉河伯欣然自喜 어시언하백흔연자희
以天下之美爲盡在己 이천하지미위진재기
가을물이 때맞추어 흘러들어오니
온갖 개천의 물들이 황하로 흘러든다
그 물줄기가 엄청나게 장대하여
양쪽 강가에서 저쪽 강가에 있는 것이
소인지 말인지를 분별할 수 없다
이에 황하의 물귀신인 하백이 흔쾌하게 여겨
자기 스스로 기뻐하면서
천하의 아름다움이 다 내게 있다고 여겼다.
하백은 황하의 물귀신이고 뒤에 나오는 북해약北海若은 바다의 물귀신이다. 추수편은 이 두 물귀신이 극적으로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시작을 한다. 이쪽 강가에서 저쪽 강가에 있는 동물이 움직이긴 움직이는데 소인지 말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다. 어지간히 넓은 강폭이다. 강의 물귀신이 자부심에 넘칠 만하다.
順流而東行 至於北海 순류이동행 지어북해
東面而視 不見水端 동면이시 불견수단
於是焉河伯始旋其面目 어시언하백시선기면목
望洋向若而歎曰 망양향약이탄왈
물결을 따라 동쪽으로 흘러가다가 북해바다에 이르러
동쪽을 바라보니 수평선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하백이 비로소 얼굴을 돌려 바다를 바라보면서
북해약에게 탄식하면서 말한다.
거센 물결을 따라 자부심에 넘쳐 흘러갈 때는 기분이 어지간히 좋았을 것이다. 세상에 이보다 큰 물줄기가 어디 있으랴 하는 자만심에 가까운 물놀이를 즐기다가 우리나라의 서해바다에 이르게 된다. 중국에서 보면 동쪽이다. 그만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닷물에 황하강의 물귀신의 넋을 잃게 된다. 망양지탄은 여기서 나온 말이다.
소동파는 전적벽부에서 조조의 대군이 적벽으로 쳐들어갈 때의 모습을 이 장면에 등장시키고 순류이동順流而東이라는 말을 빌려 의기양양하게 밀고 들어가는 모습을 표현하기도 했다.
황하의 물귀신이 꼬리를 살짝 내리고 바다의 물귀신에게 말한다.
野語有之曰 야어유지왈
聞道百以爲莫己若者 문도백이위막기약자
我之謂也 아지위야
吾非至於子之門則胎矣 오비지어자지문문즉태의
속담에서 말하기를
“백가지 도에 대한 가르침을 듣고는
자기만한 이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는데 저를 두고 한 말이군요.
그대의 문에 이르지 않았더라면
위태롭게 되었을 것이니
제가 길이길이 대방가들에게 웃음꺼리가
될 뻔 했습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각각의 전문분야는 그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헤아릴 수 없다. 추수편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모든 고전을 다시금 생각을 가다듬고 심도 있게 읽고 또 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황하의 물귀신처럼 자만에 빠지지 않는다 해도 고전의 깊은 바다 속은 더 더욱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고수들이 즐비하게 있음을 알아야 고수가 된다고 들었다.
바다의 물귀신이 황하의 물귀신에게 담담하게 말한다.
井.不可以語於海者 정와불가이어어해자
拘於虛也 구어허야
夏蟲不可以語於氷者 하충불가이어어빙자
篤於時也 독어시야
曲士不可以語於道者 곡사불가이어어도자
束於敎也 속어교야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 바다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것은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이고,
여름 벌레에게 얼음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것은
시간에 갇혀 있기 때문이고,
일곡지사에게 도를 이야기 해줄 수 없는 것은
가르침에 묶여있기 때문이오.
등골에 오싹 소름이 돋아 오르는 구절이다. 시간과 공간과 자신의 생각 속에 갇혀있는 줄도 모르고 갇혀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전에 이 글을 읽을 때는 재미있는 글로만 읽었었는데 지금 새삼 읽어보니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뜨끔뜨끔하다.
今爾出於崖. 금이출어애사
觀於大海 관어대해
乃知爾醜 내지이추
爾將可與語大理矣 이장가여어대리의
이제 그대가 물가에서 벗어나와
대해를 보고 그대의 추함을 알았으니
이제 그대와 더불어 큰 이치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 수 있겠소이다.
황하의 물귀신이 후유 하고 긴 숨을 내쉰다. 그러나 추수편의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 되지 않는다. <인터스텔라>라는 외국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우주 허공의 이야기이다. 바다의 물귀신인 북해약은 황하의 물귀신인 하백에게 이제 우주 허공의 스케일 큰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다도 사실은 큰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計四海之在天地之間也 계사해지재천지지간야
不似.空之在大澤乎 불사뢰공지재대택호
지구의 사해바다가 우주 허공과 지구의
땅 사이에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소라구멍이 큰 바다에 조그맣게 떠있는
것과 비슷하지 않겠소?
소라구멍 속에 우주 허공을 몽땅 담아 넣고
넓은 바다를 접시물로 삼아서 설거지를 하는 것을 우리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