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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길 없는 길에서 만나다

구룡사 성지순례 참관기-


박경희 도서출판 중도 편집실장


가을은 늘 그렇게 어딘가에 숨어서 가슴 한편의 그리움을 꺼내들고 어디론가 향하게 한다. 구룡사에서 남해 보리암, 여수 향일암, 순천 송광사로 윤달 삼사순례를 떠난다고 해서 살짝 나를 얹어놓았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힐링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참 오랜만인 듯싶다. 새벽의 어둠을 가르고 늦지 않으려고 일찍 출발해서인지 차도 막힘없이 내 갈 길을 열어주고 있다. 길가에 나뒹구는 낙엽을 비로 쓰는 분들도 있고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보며 참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가을 속으로 떠난다는 자체가 감사하고 힐링이다. 원래는 두 대의 버스로 출발하기로 되어있던 여정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한 대로만 출발하고 남은 한 대는 다음날 송광사에서 합류하기로 되어 있다고 했다.
인원점검을 마치고 사찰에서 정성스레 준비한 떡과 김밥, 음료를 받아들고 처음 뵙는 노보살님과 짝이 되어 흥분되는 1박2일의 여행을 시작했다.
우선 남해 보리암으로 가는 새벽길은 안개가 많이 끼여 양쪽의 경치를 살필 수 없을 정도였다. 새벽잠을 설친 까닭에 비몽사몽이던 중, 보살님들이 거의 다 왔다는 말씀에 밖을 보니 버스는 이미 보리암 아래 주차장에 멈춰서 있었다. 보리암까지 가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올라가니 자그마한 주자장이 있고 거기서부터 몇 분을 걸으니 보리암 뒷산이 다가온다.
보리암은 금산의 정상 가까이에 있어서 사방을 빙 둘러보니 듣던 대로 과연 절경이 펼쳐져 있다. 앞에 펼쳐져 보이는 상주해수욕장과 뒤편으로 자리한 바위산들의 풍광은 겨울을 준비하려는 듯 비단옷을 갈아입고 찾아온 방문객들의 가슴을 환희법열의 세계로 몰아넣고 있었다.
보리암은 대웅전이 없고 보광전과 예성당이 마주하고 있었다. 삼배를 마치고 보리암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먼저 원음종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경봉 스님의 우주관을 넌지시 새겨 담아 세속의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南海錦山無限景 남해금산무한경
天邊雲外此鐘聲 천변운외차종성
森羅萬象非他物 삼라만상비타물
一念不生猶未明.일념불생유미명
남해 금산에 오르면 끝도 없는 황홀경 눈앞에 펼쳐지네
금산을 둘러 싼 구름 밖 우주 저편까지 울려 퍼지는 종소리
세상 모든 생물과 물질들은 내 마음 같지 않아서.
한 평생 쌓아둔 마음자락 여전히 갈팡질팡 하누나
다음으로 계단을 돌아 내려가면 해수관음보살상이 다소곳이 온 바다와 온 산야를 다스리고 감싸 안으시듯 살피고 계셨다. 그 옆으로는 삼층석탑이 있었는데 그 석탑은 가락국 김수로왕비 허태후가 인도에서 들여온 파사석으로 만들었는데 기이한 현상으로 유명하다. 이 탑 앞에서는 나침반이 제멋대로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이 곳에는 보리암의 풍광과 사방을 빙 둘러 다 조망할 수가 있고 뒤로 대장봉과 곧 떨어지기라도 할 듯 꺾여있는 바위는 대장봉을 향해 절을 하듯 서 있었다.
파란 가을 하늘과 맞닿은 산봉우리들은 마치 바다에 떠있는 섬처럼 들어 앉아있고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서부터 바다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얼마나 그곳에 서 있었을까, 보광전 앞에 와 잠깐 쉬고 있을 때 노보살님 한 분이 저쪽에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기 위해 기도하던 기도처가 있다고 다녀오라고 하셨다. 만불전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양쪽으로 대나무로 만든 대나무 숲 터널 같은 계단이 있었는데 왠지 고향에 온 듯한 향수와 내 몸에 익숙한 바람소리가 들린다.
계단을 내려가서 다시 올라가보면 작은 선은전이 있는데 이성계가 조선을 열기 위해 기도했던 기도처라고 하는데, 아마도 백일기도를 올리는 동안 눈앞에 펼쳐진 절경을 감상하면서 심신의 힐링과 함께 주변의 환경들이 기도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곳에서 다시 내려오다 보면 곳곳에 작은 돌들로 탑을 쌓아 놓은 곳이 있는데, 아마도 이곳을 방문한 순례객들이 간절한 발원 하나씩을 담아 한층한층 쌓았으리라 짐작하고 나도 작은 소원 하나쯤은 남겨두고 가야할 것 같아 옆에 있던 작고 예쁜 돌을 얹으며 ‘바람에도 걸림없이 봄 여름 가을 겨울 1년 내내 바람의 향내, 산새들의 속삭임, 대나무의 바람소리, 산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움, 바위가 들려주는 세상얘기들을 들으며 잘 지내다가 다음에 또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할 때까지 거친 비바람에도 눈보라에도 잘 지내기를 바란다’고 내 마음 한편을 나눠주고 떠나왔다.
만불전에서 정성이 담긴 공양을 하고 주차장에서 모여 다시 여수 향일암을 향했다. 향일암은  ‘해를 품은 암자’라는 뜻으로 암자가 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는 조그마한 암자인데 일출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얼마를 달렸을까 여수의 바다내음을 맡을 즈음 길가에 흐드러지게 늘어서서 수줍게 우리를 맞아주는 애기동백이라 불리는 산다화의 빠알간 군락들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했다. 옆자리의 보살님은 눈앞에 펼쳐진 경치들을 보시며 ‘예쁘다, 멋지다, 아름답다’를 연발하셨다. 삶의 뒤안길에 서서 바라보는 모든 것들은 다 아름답게 보이는가보다.
구불구불한 길을 돌고 돌아 드디어 향일암 주차장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가야하는데 향일암에 오르는 길은 계단을 이용한 길과 평지로 돌아가는 길이 있다. 스님은 계단으로 오르자고 하셨지만 나는 보살님과 함께여서 평지길을 택해 올라갔는데, 그 길도 만만치는 않았다. 노보살님들이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게 안 사실이지만 계단으로 올라가야 일주문을 통과해서 들어가는데 덕분에 일주문은 보지를 못했다.
등산을 하듯 향일암 입구에 들어서면 돌로 만든 해탈문이 나오는데, 고개를 숙이고 나를 버리고 하심의 마음으로 지나가라는 뜻인 듯싶다. 그 바윗돌 하나하나는 고개 숙인 이들의 등을 두드리며 고단한 삶의 무게를 덜어내듯 잘 왔다는 듯이 그렇게 부드럽게 속삭인다.
‘아!’, 감탄사로 밖에는 표현이 안 되는 비경이다. 바닷가라 어둠이 더 빨라서인지 잔잔한 바다 끝으로 붉게 물든 노을의 잔상과 돛단배의 잔상은 바다와 하늘이 만들어낸 걸작품이다.
우리는 대중방을, 노보살님들은 화장실이 붙어있는 이층방에서 주무시기로 했고 대중방은 조금 후에 도착하실 장안사 신도분들과 같이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공양을 마친 후 저녁 예불을 하고 9시에는 관음전 곁에 서있는 수월관음보살상 앞에 자리를 잡고 관음기도를 한다고 했다.
공양을 마치고 대웅전으로 올라올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계단을 오르고 올라 대웅전에 자리를 잡고 예불에 임했다.
전국에서 가장 기도발이 좋다는 암자 중에 하나인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소원하는 기도 중 하나는 꼭 들어주신다는 말씀에 귀가 솔깃해졌다. 올해는 수능을 앞둔 아이도 없다. 나와 인연있는 이들의 건강을 발원하고 있는데,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아련함은 무엇이었을까.
작년에 수능을 치른 아이의 수능을 앞두고 여러 가지 이유를 핑계로 100일 기도는커녕 삼일기도도 제대로 못해주고 수능일에만 가까운 절을 찾아 절과 기도를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나서 그때 이렇게 좋은 시절인연을 만나 이렇게 좋은 기도도량에서 내 아이를 위해 발원해 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내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왔다. 마음뿐이고 늘 일상에 쫓기다보니 핑계뿐이었던 예전들이 떠올랐고 이런 인연을 맺게 해 주신 누군가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수월관음상은 보리암의 수월관음상과 위치적으로 마주하고 있다고 어떤 보살님이 귀뜸해주셨는데, 두 분의 보살님이 교감하여 바다를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사고와 안녕을 책임져주고 계신 건 아닐까 생각했다.
기도는 구룡사 원주스님과 분당 장안사 성재 스님께서 함께 동참해 주셨는데 어둠 속에서 수능합격 발원 촛불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고 뒤로는 달님이 잔잔한 바닷길을 따라 우리들을 비추고 우리의 소원을 담고 계신 듯 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달님이 수월관음상과 일직선으로 비춰 바닷길을 만들어 주던 그 저녁의 달님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스님의 예불 음성은 그 저녁을 그렇게 애절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를 잡아먹고 새벽예불이 3시 30분부터 대웅전에서 있다는 안내를 받고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일찍 출발한 탓인지 수다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낯선 잠자리에 곤한 잠을 이루진 못했다. 우리를 안내하는 젊은 보살님들은 늦은 시간에도 자리를 잡지 못한 듯 수고스러웠다.
새벽녘에는 더운 기운이 돌아서 잠에서 깨었고 다들 부처님께 잘 보이고 싶으셨는지 그 이른 새벽에도 투덜거림도 없이 나름대로의 예불 준비로 단장을 하시고 대웅전 안과 밖에 자리를 잡고 좌복 위에 다소곳이 좌정을 했다.
향일암 스님께서 먼저 도량석을 하셨고, 이어 새벽예불이 시작되었다. 간드러진 스님의 목소리는 바닷바람의 차가운 기운을 감싸고 돌 듯 추운 새벽의 찬 기운을 이겨낼 수 있게 해 주었다. 다라니경을 독송할 때쯤에는 무념무상의 경지에 빠져드는 듯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무념으로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던 소원들이 되살아나 내 입을 통해 그 안에 자리잡고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불보살님을 향해 발원하고 또 발원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기도를 마치고 어둑어둑할 때 우리는 짐을 챙겨 일출을 보러 일출광장으로 향했다. 향일암 마당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더 장관이라는데 시간상 무리였다. 아직 일출까지는 시간의 여유가 조금 있었는데, 일출을 기다리는 그 시간이 마치 반가운 임을 기다리는 시간 같았다. 구름에 가린 듯 해님이 서서히 그 얼굴을 내보이고 바닷물에 비친 여명과 하나가 된 일출은 내가 보았던 일출 중에서 최고의 장관이었다.
일출의 감동을 가슴속에 안고 이제 순천 송광사로 떠날 시간이다. 회주 정우스님께서 송광사 금강산림법회에서 설하시는 법문을 듣기 위해서다. 초파일을 제외하고는 게으름의 소치로 직접 법문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 안타까웠는데, 그래서였는지 가슴이 더 설레었다.
스님 법문을 듣기 위해 법당 안에 자리를 잡았다. 스님의 소중한 법문은 너무도 빠르게 지나갔고 따사로운 기운으로 파고들었다.
내 나이 60에 70 먹은 이 만나면 세상 떠날 날 멀지 않았다고 어른 대접 해줬는데
내 나이 80즈음에 70 먹은 이 만나면 어리다 버르장머리 없이 어리다.
-신흥사 조실 오현 스님 글 중에서-
스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설하셨다. 세월이 갈수록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듯 오늘 하루도 거울 속의 나를 칭찬하고 꾸짖고 상담도 해보면서 진정한 내가 무엇인지를 흔들리는 바람을 좇아 한번쯤 순례의 길을 떠나보는 것도 참으로 의미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올라오는 길에는 정읍 내장사에 들렀다. 평일인데도 넘치는 인파에 놀랐다. 내장산은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탓에 전국 방방곡곡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관광을 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내장산의 단풍은 유난히 빨갛고 예쁘다. 내장사를 향해 가다보면 커다란 감나무에 올망졸망 매달린 감들도 볼 수 있고 양쪽으로 펼쳐진 단풍의 퍼레이드는 우리의 눈과 감성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이젠 삶을 다해 낙엽으로 뒹굴고 있는 이파리도 이유가 있는 아름다움이다. 가을은 늘 그렇게 잠든 우리들을 깨우고 무심하라고 말한다. 버리라고 말한다. 올 가을은 참으로 고마운 인연복으로 올곧이 나만의 시간 속에서 가을을 만나고 가을을 마중하고 돌아왔다.
다음에 다시 찾을 때는 또 다른 사연을 가지고 가을은 나를 맞아주기 위해 더 열심히 치열하게 낙엽이 되어서 거름으로 사그라들고 다시 새 이파리를 틔우고 그 자리에서 기다려줄 것이라고 속삭인다.
오늘의 여정은 인연있는 이들을 위한 기도로 시작되지만 늘 내 안에 채워지는 힐링의 에너지로 충만해지는 것은 우리 자신들이다. 한번쯤은 길 없는 길 위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 삶을 들춰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을 갖고 사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가을 속에서 만나 소중한 인연을 짓게 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