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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야로 읽는 금강경

사기순
민족사 주간


어떻게 하면 나라다운 나라,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 수 있을까?


“이게 나라냐?”라는 한마디에 모든 국민이 공감한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일(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이 벌어졌다. 이 나라에 태어나 그런 통치자를 만나고,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것이 인연으로 이루어졌을진대, 우리는 어떤 공업共業을 지었기에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일을 만나게 되었을까?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모든 번뇌의 근원은 탐진치 삼독심에 있다고 하셨다. 크든 작든, 개인이든 집단이든 이 세상의 모든 번뇌는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세 가지 독한 마음과 행동에서 만들어진다.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이 탐진치 삼독심을 휘둘렀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최고통치자는 높은 도덕성과 인격을 지녀야 한다. 특히 지혜로워야 한다.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사람을 권좌에 앉히게 된 것도 국민의 업보다.
이러한 일을 겪을 때마다 이 나라의 종교는 그저 장식품인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특히 불자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 널리 전하지 못했음을 속상해 한다. 물론 태양이 빛나도 장님이 보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려주었다면 최소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과대망상인 줄 알면서 상상해 본다. 교육으로 이루어진 마음과 행동의 힘이 크지 않은가? 마음과 행동의 쌓임이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만 알아도 그토록 큰 악업을 짓지는 않았을 텐데...아니 그들은 악업인 줄 몰랐을 줄도 있겠다. 당연한 권리인 줄 알았을 수도 있겠다. 그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는 것도 불자의 몫이 아닐까 싶다.


금강경은 우리에게 부처님의 일상에서 부처님의 이런 뜻을 보라고 수보리 존자의 입을 빌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맨발인 것은, 신발을 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함이다. 일곱 집을 차례로 들리시는 것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삶을 살피시기 위함이다. 돌아와서 식사를 마치고 명상 속에서 생각하시는 것은 어떻게 하면 중생들이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이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시는 가르침은 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 본문 39쪽 중에서


나는 이 책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을 만들 때 부처님의 가르침이 가슴에 스며들어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여러 차례였다. 이 감동을 독자들과 나누고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고 싶다. 내 개인적인 고통이야 스스로 감내하면 되는 법, 솔직히 불타는 듯한 세상, 세상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기를 기원하면서 이 책을 만들었다.
 
니까야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금강경을 명쾌하게 해설한 최초의 책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민족사 간)은 ‘아함경’과 ‘니까야(근본불교의 교의를 담은 빨리어 대장경)’를 통해 본격적인 근본불교 연구를 하고, 니까야를 정선하여 번역 출간해 온 이중표 교수(전남대 철학과)가 얼마 전 심혈을 기울여 저술한 책이다.
이 책은 일찍이 <아함의 중도체계>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근본불교와 아울러 대승불교를 천착해 온 이중표 교수가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이 근본불교경전인 니까야와 아함경에 근거함을 밝히고, 한 구절 한 구절 니까야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금강경을 명쾌하게 해설한 최초의 책이다.
이 책은 2016년 1월, 3주에 걸쳐 각 주마다 5일씩 서울, 광주, 구례에서 이루어진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이라는 이름으로 강의한 강의안을 보충하여 정리한 책으로 출간 전부터 문의가 쇄도할 정도로 독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 강의가 수강생들의 열띤 호응 속에 이루어졌고, 그들의 요청으로 책이 출간되었기에 금강경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편집된 것도 이 책의 특징 중 하나이다.  


제1장 금강경의 취지
제2장 보살의 길
제3장 평상심에 길이 있다
제4장 업보는 있으나 작자는 없다
제5장 지금, 여기에서 현재의 법을 통찰하는 행복한 삶


이중표 교수는 이 책을 위와 같이 크게 5장으로 나눈 뒤 각각의 장마다 구마라집 한역본漢譯本에 적용되어 있는 양나라 소명 태자가 32분으로 분장한 체제를 반영하여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또한 금강경 산스크리트어본과 구마라집 한역본을 대조할 수 있도록 병기하였으며, 한글 번역은 산스크리트본으로 했다. 한편 번역에 있어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존대를 하는 점도 매우 특별해 보인다. 


금강경을 니까야로 읽어야 하는 까닭


대승불교가 진정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초기대승경전인 금강경을 니까야를 통해 해석함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금강경은 현재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소의경전이다. 따라서 금강경의 정통성이 확인된다면 조계종의 정통성도 확보될 것이다. 그리고 금강경의 바른 이해를 통해서 조계종의 종지도 바르게 실현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머리말 중에서


불교경전은 방대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교경전의 숲에서 헤매기 십상이다. 이중표 교수 역시 이러한 점을 안타까이 여기면서 대장경을 두루 공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대승경전이야말로 진정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계승한, 다시 말해 니까야의 내용이 확대된 것이 대승경전임을 알았단다. 특히 초기대승경전인 금강경은 모든 불교의 뿌리가 된, 근본불교경전인 니까야로 읽어야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이중표 교수는 이 책을 집필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자살률이 세계 1위일 정도로 우리나라는 가장 고통스러운 땅이 되었다. 그 원인은 가난이 아니라 개인적인 욕망의 추구와 끝없이 재물을 소유하고자 하는 탐욕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발전이 아니라 불교다. 그런데 불교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한국불교의 핵심종단인 조계종이 적극적으로 사회 고통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종단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이 바르게 이해될 필요가 있다.”
금강경은 지극히 이론적이고 개인적이고 사변적인 아비달마 불교의 반성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부처님의 생생한 음성이 담긴 니까야를 바탕으로 새불교운동을 펼치기 위해 새롭게 편집한 경전이기에 니까야로 읽을 때 그 참뜻을 확연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금강경의 서두에 부처님이 맨발로 다니시며 일곱 집 탁발을 하고 발을 씻고 자리에 앉아 공양을 드신 내용을 담아놓고, 그 평범한 일상을 보고 수보리는 희유하고도 희유한 일이라며 부처님을 찬탄한 것 또한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고통 받는 민중과 함께한 삶을 살았고, 그 길을 지향하셨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맨발로 걸식을 했으며 일곱 집을 다니시며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살피시면서 고통을 해결시켜 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던 것이다.


금강경, 우리 사회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


금강경은 무쟁無諍의 길을 가는 수보리 존자를 내세워 (중략) 부처님께서 진정으로 마음에 두신 것은 개인적인 열반을 추구하는 아비달마 불교가 아니라 중생 구제의 큰 원을 세워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의 길을 가려고 하는 보살마하살이며, 부처님께서 후세에 가르침을 펴도록 당부하신 사람들은 아비달마 불교인들이 아니라 보살마하살들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 43-44쪽 중에서


이중표 교수는 이 책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툼이 없는 무쟁 법문임을 밝히면서 금강경의 공사상空思想이 갈등과 논쟁을 해소하는 무쟁無諍의 핵심으로 작용하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금강경은 개인적인 열반을 강조하는 경전이 아니라 중생 구제의 큰 서원을 세우고 부처님처럼 살아가겠다고 서원하며 깨달음을 향해서 함께 가는 보살행에 대해 설하는 경전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니까야로 금강경을 읽으면 부처님의 뜻을 알게 되고, 보살행,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극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금강경의 본뜻인 보살행의 실천이야말로 고통스러운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이라고 역설한다.   
이중표 교수는 “불교야말로 고통 소멸을 위한 근본 해결책을 갖고 있고, 금강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공부하고 실천하면 모든 논쟁들이 종식되고 사회적 갈등과 고통이 해소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이 책을 해설했다고 밝히고 있다.
 
업보만 있을 뿐 작자는 없다


부처님은 잡아함경에서 “업보業報는 있으나 작자作者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연등불로부터 성불의 기별을 받은 것은 꽃을 공양한 작자로서의 선혜가 아니라 선혜의 행동이다. 그 자리에서 누구나 그렇게 행동했다면, 아니 지금이라도 누구나 그렇게 행동한다면, 누구나 성불의 기별을 받은 보살이 아니겠는가? 금강경은 이것을 이야기하고 있다.(중략)
대승의 보살은 작자로서의 자기 존재를 부정하고 업보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보살은 명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사로서 살아간다.
-본문 192쪽 중에서 


불교의 근본 가르침은 연기, 무아, 공과 업보 사상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업보설을 윤회설로 오해하곤 한다. 무아無我와 윤회輪廻에 대한 상치되는 개념으로 인한 논쟁이 분분한 까닭이기도 하다. 이중표 교수는 부처님께서 분명히 업보業報는 있지만 작자作者는 없다는 것을 잡아함경 구절을 통해 확실히 밝히면서 업보를 공과 무아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부처와 중생의 차이는 업의 차이라는 것, 부처 노릇을 하면 부처이고, 중생 노릇을 하면 중생이라고 하면서 연기, 무아, 공, 업보가 다 연결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듯 평소 헷갈리기 쉬운 내용을 확실하게 짚어주면서 시종일관 근본불교에 입각한 이중표 교수의 명쾌한 해설이 돋보인다. 한편 잡아함경, 화엄경, 육도집경, 혜능의 육조단경, 용수의 중론, 승찬 선사의 신심명, 박노해 시인의 시, 휠러, 하이젠베르크 등등 동서양의 안목이 열린 이들의 말을 인용하여 종횡무진 해설, 흥미진진한 금강경의 세계로 이끌어 준다.
불교는 고통에서 출발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일깨워주는 종교이다. 금강경은 불교의 진수를 담아낸 조계종의 소의경전이다. 온 국민이 상처 받고 우울해진 마음을 촛불 밝혀 한 가닥 희망이라도 잡으려는 우리 시대, ‘왜 지금 불교를 배우고 초기불교경전인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을 배워야 하는가?’를 일깨워 주는 책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 더 나아가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는 법을 열어주는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