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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말해보라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초겨울의 문턱. 칠백여 명의 한국인 불자들이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5세)의 법을 구하고자 인도 다람살라를 찾았다. 수년간 아시아 불자 연합 공동 주최로 진행되어오다 올해 단독으로 재주관되는 법석이다. 법회 주제는 달라이라마의 건강을 최대한 배려하여 오전의 2시간여 법문 할애가 가능한 점을 고려, 대승불교의 정수이자 사부대중에게 익숙한 반야심경과 삼종요도로 선정이 되었다. 지난 11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진행된 법회는 전 세계 60개국에서 동참했다. 법문은 초심자를 위한 불교의 전반적인 개론을 시작으로 공성의 지혜를 헤아렸다.
법회가 시작된 4일 아침에는 티베트를 후원하는 유럽 연합을 포함한 42개국의 의원이 달라이라마와 아침 회동을 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왜곡된 국가 정책으로 인해 오늘의 티베트가 고난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불교문화와 정신을 올곧게 계승한다는 의지에 뜻을 모았다. 나란다 승원의 교학을 논장과 율장으로 체계화 한 티베트 불교학의 가치를 높이 샀다.
지금 여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물질적으로나 지식적으로 큰 진보를 이루었노라고 자명할 수 있습니다. 영성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인간 삶의 방향을 모색하며 궁극의 진리를 구해온 종교다운 본연의 종교를 신앙하는 우리는 과연 종교의 이로운 점이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고자 합니다.
한 예로 불교의 사상과 동기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 이웃의 종교는, 창조주 하느님을 기반으로 나를 둘러싼 인류가 형제자매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근본이념과 상반되게도 힘의 논리에 편승한 권력자들이 신을 등에 업고서 신의 섭리를 피의 역사로 왜곡시켰습니다. 근본적으로 그들이 믿어 의심하지 않고자 하는 신은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인도의 정신 사상을 기반으로 생겨난 상키아 학파, 자이나교 그리고 불교의 경우에서는 앞서 기독교의 사상과 두드러지게 차별이 됩니다. 논의의 근저로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는 바가 그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과 즐거움이 개개인이 지은 행위의 결과라는 인과의 논리를 따릅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내 손에, 바로 내 의지에 달려 있다고 사유합니다. 바로 내가 주체이자 원동력이 됩니다. 이러한 사유는 의식의 연속성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로 말미암아 자아의 존재를 해체 분석하기에 이르면서 대승불교의 인식론으로서 불법의 꽃을 피웠습니다.
우리 인간이 느끼는 육체적인 고통과 즐거움, 정신적인 고뇌와 환희심은 모두 마음의 현현입니다. 불교는 근원적인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려는 방법으로 근본 원인을 찾아 제거하도록 차제로서 일깨우고 있습니다. 그것이 반야심경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 승아제 모지 스바하’로 표현되는 수행의 단계입니다. 마찬가지로 행복의 원인을 깨달았다면, 마음 밭에 그 종자를 심어 열매를 맺을 때까지 물과 비료를 주어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반야 수행의 마음 지도입니다.
석가모니 붓다께서는 법을 구하는 이들에게 항시 당부하셨습니다. 맹목적으로 스승의 지식을 따르지 말라. 의심하고 시험하고 거듭 물어서 정수의 해답만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성적으로 확실히 증명되지 않았다면 받아들이지 말고 거듭 논리적으로 헤아려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한 심오하고 면밀한 마음의 작용에 관한 불교의 논리학이 지난 3천 년간 전승되어 오면서 현대의 불교 학도는 다양한 영역의 과학자는 물론 정신 분석가들과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지금 나의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를 분노하게 하고 내가 애착하도록 조장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종교는 이러한 고통의 해독제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나의 마음을 올곧게 바라보는 힘이 기반 되었을 때 비로소 변화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게 됩니다. 인도의 고대 사상 ‘아힘사’와 ‘카루나’의 그 정신이 그러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비폭력, 사랑, 연민, 동정심이 그것입니다.
붓다께서 이타심을 설하실 때는 자아의 측면에서 독자적으로 자립 된 것은 그 어느 것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의미를 거듭하여 깊이 사유해 봐야 합니다. 나라고 하는 자아가 독립된 개인으로서 차별화되어 상으로써 독자적이게 되면 나로 말미암아 관계된 바에 대한 부정적인 착을 객관적인 방식으로 고수하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를 더욱 불행한 사바세계의 중생심으로 이끌어 갑니다. 용수보살은 중도의 근본송에서 이와같이 설하셨습니다.


‘업과 고통의 감정을 멸한 곳에 해탈이 있네. 공성을 떠올린 순간 그 자리가 무지의 끝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