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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

 


김명환
불광출판사 제작부장



나와 세상에 속지 않고 사는 법
선방 수좌의 13년 공부 기록!
2006년 출가하여 2011년부터 틈틈이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수행기를 올리며 신선한 반향과 공감을 일으켜 온 선방 수좌, 원제 스님의 글 모음이다. 저자는 종교학을 전공하던 대학 시절, 세상이 가짜 같아 삶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자해를 할 만큼 극심하게 방황하다 불교 수행자의 길을 택했다. 엄격한 자기 절제와 치열한 선원 생활은 수없이 많은 물음을 열어젖히는 과정이었다. 그 질문의 끝에서 저자는 어떤 답을 구했을까. 삶은 자기가 아는 만큼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아는 것을 끝없이 넓히려 애쓴다. 그러나 그 아는 것이 오히려 삶을 가로막는다. 삶에 대한 모든 의문을 꿰뚫는 본질적인 것에 대한 앎, 이 책은 그 앎에 대한 저자의 공부 기록이다. 수행 과정에서 겪은 갈등과 성찰, 그리고 깨달음의 순간을 통해 독자는 이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이해와 온전한 받아들임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문제들 앞에서, 우리를 위로하는 따듯한 힐링의 말과 소소한 지혜를 ‘치트키(cheat key)’에 비교한다면, 저자의 말과 글은 무사의 정공법을 닮았다. 이를테면 덮어두지 말고 똑바로 바라보라, 삶의 공포 속으로 들어가라, 지금 내가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눈앞의 그것, 지금까지 믿고 의지해 온 모든 것을 몽땅 의심하라고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속는 것보다 우리 자신에게 더 잘 속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불행과 문제에 대한 원인을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학대받은 탓으로 돌리기를 반복하는 이에게 저자는 ‘자기 상처를 현실을 피하는 도구로 삼지 말라’고 직언한다. 자신을 주연으로 한 드라마틱한 삶과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지나친 추구가 오히려 자유로운 삶을 구속한다며, ‘당장 내가 쓰는 이야기에서 벗어나라’고도 한다. 아픈 충고다.
그래서 저자의 말과 글은 종종 ‘힐링(healing) 법문이 아니라, 킬링(killing) 법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킬링은 죽인다는 뜻이다. 내가 아는 것, 알고 있다는 믿는 그것, 내가 지금 애지중지하며 붙잡고 있는 것을 없애는 것이다. 그것이 완전히 멈춰지고 사라질 때 비로소 진짜 나, 진짜 가야 할 길이 보인다. 마치 어두운 밤 내가 들고 있는 등불을 껐을 때 달빛이 환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사람은 ‘지 생겨먹은 대로만 살아도 문제없다’라고 말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제가 힐링보다 킬링을 주로 하게 되는 이유에는 ‘선禪’이라는 공부 방식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선은 ‘의심’의 수행입니다. 눈앞의 감각 대상과 경험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하는 것이며, 거리를 두는 것이고 속지 않는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


진리는 찾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
일상에서 진리는 어떻게 펼쳐지는가
저자는 진리를 찾기 위해 불교 수행자의 길을 택했다. 여느 사람들이 과학자나, 소설가, 건축가를 선택하는 것처럼 저자에겐 자연스러운 이끌림이었다. 경전과 어록 공부, 참선, 묵언 수행 그리고 2년 동안의 세계 일주 만행…, 많은 좌절과 갈등 속에서 바깥이 아닌 자신을 향한 수많은 질문과 대답을 거치며 온몸으로 불교적 진리를 체득했다. 그 진리의 끝은 ‘나’에 머물지 않고 ‘전체’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에고(ego)와 아상, 무상과 무아, 공, 불성, 참나…, 머리로만 알고 있는 이런 교리가 일상에서 어떻게 펼쳐져야 하는지, 저자는 선원 생활, 출가 전의 일, 만난 사람들, 책, 영화, 게임 등 자신의 모든 경험을 이용하여 들려준다. 저자가 평소 자주 하는 말처럼 ‘전체’의 삶을 위해 자신을 ‘써먹는’ 것이다.
〈왜 문제를 극복하려고만 하는가〉에서 지도하던 행자가 절집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절을 나가겠다고 했을 때, 저자는 딱 보름만 참아보라고 한다. 보름 동안, 시간은 흐르고 상황은 변하고 문제도 변하고 그 문제를 대하는 행자의 마음도 변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보름 뒤, 절을 뛰쳐나가고 싶을 만큼 심각했던 관계의 문제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가 되었고, 행자는 다시 수행에 전념했다. 무상無常, 즉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저자는 삶으로, 경험으로 상기시켜 준 것이다. 하루키의 소설 ‘세계의 끝’을 예로 든 〈벽을 넘는 용기〉에서는 벽과 숲으로 대비되는 안전한 삶과 불확실한 삶을 통해 우리가 만든 견고한 아상我相을 설명한다. 동료 스님을 죽이고 싶었을 만큼 들끓었던 분노를 ‘인내’로써 이겨내며 인생은 오직 견뎌야 하는 것임을, 그렇게 잘 무사히 지나가면 진정한 자유를 느낄 때가 온다며 응원한다.
저자의 솔직한 고백과 엄격한 문체로 다양하게 변주되는 이 이야기들의 끝은 무엇일까. 바로 작고 좁은 이기적인 ‘나’에게서 벗어나 온 우주, 전체로서의 ‘큰 나’, ‘참나’로서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본질적인 삶을 마주하며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당신’이라는 ‘판때기’
놀이로서의 삶을 권유하다
자신의 삶은 지금까지 보드판 위에서의 인생이라는 것이다. 서퍼의 삶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사실 자기만의 판때기 위에서 살아간다. 흔히 인생을 고해苦海에 비유한다. 그리고 파도는 인생의 크고 작은 다양한 고통이라고 한다. 저자는 파도를 바라보며 분석하고 이런저런 의미를 넣어 규정하지 않겠다고, 곧장 바다로 뛰어들겠다고 한다. ‘원제’라는 판때기가 있고 말과 글, 생각이라는 기술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판때기는 어떠한가. 우리가 직면하는 것은 매 순간일 뿐, 나에게 닥치는 상황마다 그때그때 ‘잘’ 보고, ‘잘’ 판단하고, ‘잘’ 대응하면 되는 것이다. 그 ‘잘’에 대한 리듬의 감感을 늘이는 데 이 책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의 마지막 당부이다.


절집에서 큰스님들이 종종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건 경전에 나오는 말이고…, 그거 말고 니 얘기를 해봐, 니 얘기.”
저는 매일 매일이 정면승부입니다.
오늘도 눈 똑바로 뜨고 여지없이 정면승부를 합니다.
- 본문 중에서


선방 수좌 원제 스님의 킬링 법문
1. 꼭 근사한 삶의 의미가 있어야 할까 : ‘나’는 삶이라는 드라마를 무언가 그럴듯한 의미로 채우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채워진 것은 다른 형태로 변하거나 또 다른 좋은 것들로 채우려고 합니다. 이런 욕망의 악순환을 멈출 때 삶은 온전하게 펼쳐집니다.
2. 무엇이든 의심하기 : 지금 나의 생각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는 마십시오. ‘나’라는 존재, 생각 자체를 의심해 보아야만 합니다. 제대로 의심하게 된다면, 열린 만큼 경험하게 되어있고, 깨어난 만큼 만나게 되어있습니다.
3. 자신이 의지하는 등불을 꺼라 : 등잔불을 끄면 본래 있던 달빛이 환하게 드러납니다. 등잔불처럼 내가 믿고 따르며 소중히 여기는 어떤 가치와 믿음은 무엇인가. 그것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전체로서의 삶이 드러납니다.
4. 판단 중지 : ‘내가 모른다고, 혹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틀렸다거나 그런 것은 없다고 하지 마십시오. 단지 내가 모를 뿐입니다. 내가 모르는 것은 내가 모르는 것으로 남겨두면 될 일이지, 상대방이 틀렸다고,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하면 공부할 기회를 놓칩니다.
5. 자신의 상처를 이용하지 마라 : ‘과거의 상처 때문에 지금 내 모습이 이래….’ 과거의 고통과 상처를 이용해 현재를 피하지 마십시오. 고통과 상처를 보내는 연습을 하십시오. 힘들지만 천천히 잘 보내는 연습을 하면 어느 순간 본래 있던 자유가 곧장 눈앞으로 찾아들 것입니다.
6. 문제는 없다. 상황이 있을 뿐 : 우리 삶에 고정된 문제는 없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만이 있을 뿐. 상황은 그때그때 ‘잘’ 보고, ‘잘’ 판단하고, ‘잘’ 대응하면 됩니다. 이 ‘잘’을 미리 정해놓지는 마십시오.
7. ‘나’는 이겨서 바꿔야 할 대상이 아니다 : ‘나’란 것도 알고 보면,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상황입니다. 변화하는 상황에 어떻게든 대응해나가는 것, 솔직하게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바로 ‘참을 인忍’입니다.
8. 행복만을 선택하지 마라 :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것들만 고르려는 선택을 멈추십시오. 나에게 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허용해 주십시오. 그러면 기쁨도 우울도, 어두운 생각도, 분노도, 그 모든 게 이미 다 진리로서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9. 진정한 용기란 나를 놓아버리는 용기이다 : 나를 지키는 용기가 아니라 나를 놓아버리는 용기입니다. 아는 것도, 의지할 것도, 붙잡을 것도 없을 때 도리어 진정한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