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1.
금년 초부터 말까지 ‘꼭 읽어야 할 『화엄경』’이라는 큰 주제를 걸고 매월 독자님들과 지면에서 만났다. “꼭 읽어야 할”이라고 한정어를 붙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경을 읽어야 하겠다는 말이다. 책이란 읽으라고 있으니 읽는 것이 당연한 일이만, 사실 불자들은 불경을 잘 안 읽는다. 수행의 한 과정으로, 정해진 경을 생활 속에서 자주 읽고, 그것을 마음에 담아 실현하는 그런 ‘읽기’ 말이다.
절에서 하는 정기적인 법회를 보아도 경을 읽고 그것을 짧게나마 해설해주는 법회는 거의 없다. 어디 근천도 없는 ‘생활법문’이라는 이름하에 설법자의 형편에 따라 주제와 내용이 들쑥날쑥하다. 정해진 기준이나 근거도 없이 말이다. 청중이 아무리 불교에 대한 지식이 없다고 해도 그래도 되는지 정녕 모르겠다. 경은 읽어야 한다. 예배의 대상도 아니고, 보관하고 있다고
그 속에서 영험이 나오는 신기한 물건도 아니다. 읽어내 그 내용대로 형편껏 실천해야 한다.
둘째는 많은 경들이 불교에 있지만, 불교신도가 되었으면 『화엄경』은 읽어보고 죽어야 겠다는 말이다. 요즘 절 풍속은 염라대왕들 좋아하니, 염라대왕이 생전에 『화엄경』 읽은 사람은 면죄해준다는 소문 좀 냈으면 좋겠다. 궁금해서라도 한 번은 『화엄경』을 읽어봐야 하는 것이 아니가?
2.
책 ‘읽기’에는 요령이 있다. 한 실례로 본인이 궁금한 점이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구입한다. 아무 책이나 사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건강에 관심이 있어서 건강 관련 책을, 주식에 관심이 있어서 주식 관련 책을, 세상 사람들의 문학적 트랜드에 관심 있어서 금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책을, 그렇게 관심 때문에 책을 사고, 그리고 읽는 것이다.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책을 샀으면,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읽는
것이 제일 좋다. 그런데 더 관심 있고 우선적으로 궁금한 부분이 있지 않겠는가? 이럴 경우에는 그것을 찾아서 골라 읽어야 한다. 먼저 <색인> 또는
<찾아보기>를 활용해, 그 부분을 찾아 읽는 것이다. 또는 <서문>이나 <해제> 또는 <후기>를 읽어 전체의 규모를 엿볼 수도 있다.
불교 경전의 경우도 역시 그렇다. 불교 신행 생활에 있어 ‘관심’이 우선이다. 그런데 우리의 불교 생활의 관심은 온통 수능시험을 비롯한 각종 시험기도, 100일 소원성취 발원기도, 사업 번창 산신기도, 조상천도 지장기도, 맨 이런 것이 중심이다. 그래도 본인이 직접 하는 것이면 좀 낳다. 남이 대신 해도 된다면 적극 권할 일이지만, 불경에서 그렇게 가르치는 곳을 난 본적이 없다. 개인들의 실천과 노력, 또 공동체의 실천과 노력으로, 자신과 나아가 자신이 사는 세상이 장엄된다는 이야기가 온통이다.
잘 산다는 것은, 기본은 의식주가 구족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두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의식주의 구족은 한도 끝도 없다. 어느 정도에서 만족해야지 한도 끝도 없는 욕망만 추구하다가는, 편안하게 머물 날이 없다.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한다. 그 가치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적인 기성의 가치도 있지만, 자신만이 개척해 만들어가는 가치도 있다. 기성의 가치는 검증이 되어서 안전이 보증 되고, 새로운 가치는 개척으로 인한 남다른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산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하고도 복잡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화된 틀에 맞추어서는 그 삶의 맛을 보기 어렵다. 의식주를 어느 정도 갖추기 위해 노력도 해가면서, 동시에 자신이 해 보고 싶은 제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것에 필요한 필수적 요소가 ‘관심’이다.
저마다 사람들의 ‘관심’의 다양성이 공존하고 인정될 때에 세상은 더욱 풍요롭다. 꽃의 종류가 다양하고 수목의 종류와 그리고 바위와 흙, 그리고 물의 모양과 많고 적음, 이런 다양성이 조화를 이룰 때 그 산(山)이 명산이다.
『화엄경』의 제목은 풀어보면 ‘온갖 꽃으로 장엄된 말씀 모음집’이다. 세상사는 다양한 생명체들의 다양한 생각을 인간적인 모습으로 글로 표현한 책이다. 얼마나 많은 ‘가치’와 다양한 ‘관심’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를 알게 한다.
『화엄경』을 읽으면 그런 가치와 관심 있는 삶을 맛보게 된다.
3.
불경 독서에, 처음은 짧은 경전 읽기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것으로 『반야심경』이 으뜸이다. 불교의 중요한 개념과 용어들이 등장한다. 정확하게 용어를 정리해서 외워두어야 한다. 기도해서 복 받겠다 생각한 사람들이라면 교회를 좀 더 다니다가 절에 오는 것이 좋겠다. 실은 저곳도 그렇겠지만 이곳은 더욱 기도만으로 되는 곳은 아니다. 자기 성찰과 자신 변화와 자기 실천이다. 그것도 자신 속에 있는 ‘내면의 힘’으로 말이다. 필자는 ‘내면의 힘’이란 용어를 본원력本願力을 염두에 두고 풀어 쓴 것이다. 우연한 인연으로 일시적 사태에 원인 둔 실천이 아닌, 불생불멸하는 원력, 즉 영원한 숙제, 『반야심경』의 표현대로라면, 반야바라밀에 의거한 원력이 끝내 우리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게 한다.
『반야심경』이 좀 읽혀지면, 다음에는 『금강경』 읽는 것이 좋다. 그런데 반드시 ‘방법’에 따라야 한다. 그 ‘방법’이란 많지만, 긴 세월 넓은 지역에서 활용되었던 ‘보편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것 중의 하나가 선적禪的으로 읽는 것도 있다. 이 점에 착안한 선지식이 저 월정사 조실이셨던 방한암 선사이다. 선사께서는 『금강경』을 주석한 대표적인 인물인 육조 혜능의 해석을 기준으로, 거기에 종경 선사와 야부 선사의 선적인 계송을 가려 뽑아 『금강경삼가해』라는 책을 출판했다. 아주 좋은 책이다.
또 다른 좋은 방법으로 『금강경』을 소개한 책이 있다. 그것은 인도의 세친 스님과 중국의 규봉 스님이 애용하는 방법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곳 봉선사 조실 월운 강백께서 번역 출판했다. 바로 『금강경강화』인데 초판은
1977년, 재판이 2004년 동문선에서 나왔다. 이 책의 특징은 『금강경』에 등장하는 수보리의 질문과 부처님의 답변을 모두 27겹으로 재구성한 데에 있다. 모든 중생에게, 최선을 다해서, 항상, 그리고 아상 등 티 없이, 바라밀
수행을 하라 권하신 부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수보리의 마음에는 하염없는 궁금증이 여울진다. 이 궁금증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질문이 모두 27개의 겹으로 얽히고 섥힌다. 그런 실타래를 풀어가는 ‘방법’으로 『금강경』을 해설한 것이다. 명저이다.
4.
그러면 『화엄경』은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문답들이 어떻게 서로 얽히고 풀리는지에 주목해서 읽는 것이 좋다. 본 잡지 9월호에서 소개했듯이, 『화엄경』 읽기에 사용된 옛 스승들의 열 가지 대표적 ‘방법’이 있다. 청량 징관 국사께는 기왕에 전래되는 『화엄경』 읽기에 사용되는 해석 조직 10종류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①본부삼분과本部三分科, ②문답상속과問答相屬科,
③이문종의과以文從義科, ④전후섭첩과前後攝疊科, ⑤전후구쇄과前後鉤鎖科,
⑥수품장분과隨品長分科, ⑦수기본회과隨其本會科, ⑧본말대위과本末大位科,
⑨본말편수과本末.收科, ⑩주반무진과主伴無盡科.
이상에서 <②문답상속과問答相屬科>를 여러분께 강력하게 권한다. 이런 읽기 ‘방법’은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 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화엄경』 ‘읽기’의 표준이 되어있다. 이 ‘방법’에서는 『화엄경』 전체를 크게 4대목으로 구별한다. 앞에서부터 첫째는 수행을 성취하신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 그리고 그 부처님이 머무는 세계 등을 설하는 단락이다. 둘째는 부처님도 결국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는 존재이신데, 그 수행에 관련한 다양한 이론을 소개하는 단락이다. 셋째는 앞에서 소개한 다양한 이론을 직접 실천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단락이다. 넷째는 실천하여 체험하는 양상을 선재동자를 등장시켜 설명하는 단락이다.
첫째 단락에서는 40종, 둘째 단락에서 40종, 셋째 단락에서 200종, 넷째 단락에서 30종이 등장한다. 이 중에서 첫째 단락의 40종 질문 중에서 ‘10해海’ 관련 질문이 『화엄경』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다. ‘10해(海)’란,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 세계의 모습은 어떠한가? 여래의 명호는 어떠한가? 여래께서 하신 설법은 어떠한가? 중생들이란 어떠한가? 부처님의 신통변화는 어떠한가? 부처님의 나이는 어떠한가? 부처님의 경지는 어떠한가? 바라밀 수행은 어떠한가? 해탈이란 어떠한가?
이렇게 큰 대대한 4위位의 문답 사이에도 소소한 문답들이 계속된다. 『화엄경』 읽기에 처음 도전하는 분들은 4위의 대과大科에 의한 질문과 대답이, 어떻게 서로 포섭 소속되는지를 가지 쳐서 읽는 게 좋다. ‘상속相續’이 아닌, 한문 뜻대로 <문답상속問答相屬科>이다. 그런 책이 바로 월운 스님께서 『화엄경』의 본문을 추려서 한 권으로 번역 하신 『화엄경 초역』이다. 필자는 큰스님의 번역에 한문 원문을 삽입해 회편하고, 또 부록으로 촘촘한 해제를 달았다. 우리스님 92회 생신인 2020년 12월 26일(음력 11월 12사) 봉선사에서 헌정할 예정이다. 책이 필요하신 분들께 그날에 한해 그 자리에서 무료 보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