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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도의 책임을 묻다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달라이라마, “윤회를 보라 그것이 사성제의 시작이다”


허물 없는 말과 글로 정법에 의지하는 중생이여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비유를 보리니.
금으로 만든 그릇과 같고
만개한 연꽃과 같고
주린 배를 채우는 음식과 같고
기쁜 소식을 듣는 것과 같고
보석 상자를 연 것과 같으니
이 법으로 최고의 환희심이 일어나리라.
『대승장엄경론』을 열며



러시아 불자와 달라이라마의 법연이 13년을 맞았다. 5대 달라이라마부터 유래를 찾는 러시아 첫 티베트불교와 인연으로 러시아는 현 14대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6)와 함께 라트비아 리가를 비롯하여 인도 델리 다람살라 등 다양한 지역에서 불교의 심오한 법을 논해왔다. 모스크바 세이프티베트재단(SAFE TIBET TRUST, 툴꾸 린포체)에서 주관한 이번 법회는 11월 4~5일 양일간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 인도 다람살라 관저에서 진행된 달라이라마의 법문은 미륵보살의 대승장엄경론을 주제로, 논전의 깊이와 핵심 가르침을 이해하고 보살도를 행하는 서원을 세우는 시간이 되었다.


반야부의 경을 요약한 현관장엄론과 대승장엄경론은 미륵보살의 대표 저서입니다. 저는 7세부터 두 논서를 독송하고 암기해 왔습니다. 지금의 티베트불교는 과거와 달리 보편적인 신앙으로 인정을 받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단순히 라마춤이나 탄트릭 방식의 밀교로 오해하던 과거의 오해가, 오늘에 이르러 논리적인 불교로 부처님의 삼전 법륜을 모두 통섭하는 뛰어난 불교로 새롭게 정의되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불교는 미신이 대부분이라고 치부하던 이들에게도 인명학 등 티베트불교의 논리 사상을 통해 불교라는 종교적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되고 해결책을 제안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붓다의 사상과 티베트불교만의 인명학이 인류와 세상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 불교도가 명심해야 할 책임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수행에는 단계적인 순서가 있고 그 차제를 따라야 합니다. 가장 먼저, 삼보님 전에 귀의하고 참회와 발심을 일으키고서야 비로소 정식으로 수행에 입문하게 되니 그 단계를 일컬어 자량도라고 합니다. 대승장엄경론은 인도에서 먼저 번역된 경과 논서입니다. 저는 스승님 쿠눌라마 뗀진겐체 린포체로부터 미륵보살의 모든 저서를 배웠습니다.
법은 심오하고 어렵습니다. 그 때문에 오롯이 참구 하여 배우고 익힐 때야 비로소 환희심과 법열에 오르게 됩니다. 이 모든 가르침을 근간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궁극의 공성을 깨닫기 위함입니다. 무지한 이는 이 법안에서 우왕좌왕 하며 단지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오직 법의 가치를 아는 이만이 마침내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불자 여러분. 수시로 사성제를 깊이 헤아려 보십시오. 네 가지 고귀한 진리를 통해 근원적인 고통을 정의해 봅시다. 내가 처한 고통의 원인을 찾아 그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 바로 수행의 도이자 삶의 방향입니다. 살아온 삶을 반성하고 나를 살펴 괴로움의 원인인 업과 번뇌를 제어하는 힘을 키워가야 합니다.
악업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바로 탐내고 성내며 어리석음입니다. 때문에 이를 세 가지 독에 비유합니다. 인간의 의식 그 본연을 살펴 청명한 상태를 누리도록 경험과 의식을 가지런히 다듬어 가는 것이 바로 수행의 차제입니다.
인간의 습관, 그 첫 단추는 어디일까요? 인간의 역사는 과거 수백만 년을 거슬러 올라 가지만 우리는 바로 지금 당장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지금 이 시각부터 내가 어떻게 의식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번뇌를 자량으로 증장시킬 수 있습니다. 거친 의식에 휘둘리지 않고 미세한 의식으로 점차 변화하도록 하는 일상을 살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일상의 균형을 만들어야 합니다.
꾸준히 배우고 사유하십시오. 그리고 깨달으십시오. 고통을 제거하는 멸제로 향하는 습관을 물들이십시오. 삶 속에서 스스로가 마음이 유연하도록 하십시오. 지금 이 순간에도 수행자는 사려 깊이 헤아립니다. 번뇌란 일시적이며 본래부터 생 하고 멸함이 없음을 알아 평정심을 유지합니다.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고통 그 자체를 명확히 통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