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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경찰 관문을 넘어야 한다①

 


성운대사 지음
조은자 옮김


경찰도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다
불광산이 개산되고 7, 8년 후 1만 존尊의 불상을 모신 대비전(大悲殿, 또는 만불전萬佛殿)이 이미 축성되었는데, 그때 타이완에서는 이와 같은 불사가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이 소식은 빠르게 번져 장개석 총통까지 참관하고 싶어 할 정도였고, 모두들 불광산에 올라 불전 안의 장엄한 성상을 우러러보기를 희망했습니다. 또한 장경국 선생이 수차례 불광산을 찾은 것도 대비전에 만존불상을 모신 까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루는 수십 명의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불광산을 참관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아마도 우리를 조사하러 왔거나 어떤 목적을 가지고 방문한 줄로 알았습니다. 그들과 가까워지자 한 경찰이 앞으로 나서며 “불광산의 건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네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에서 양저우 억양을 듣고 저는 곧바로 “경찰 선생, 혹시 양저우 사람입니까?󰡓 하고 되물었습니다.
“네, 스님과 동향입니다.”라며 그는 제게 명함 한 장을 건넸습니다. 그는 가오슝현 경찰국의 감찰대장 강진훈美振勛 선생이었습니다.
저는 불광산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인사를 가볍게 나누고 미래의 불광산 건설 조감도와 발전 방향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가오슝에서 감찰대장을 하고 있는 강진훈 선생이 지역적 인연으로 불광산에 커다란 관심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강진훈 선생에게 공양을 드시고 가라 청했고, 마침 공양 시간이라 그들도 남아 공양을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반찬을 몇 가지 더 만들어 그들 십여 명이 함께 공양할 수 있게 준비했습니다. 당시 시골 황량한 들판에 식당은 고사하고 물 마시는 것조차 쉽지 않았는데, 간단하게나마 한 상 가득 공양할 수 있다는 것에 그들 일행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감찰대장은 “저희도 부처님께 보시를 조금 하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저는 “감찰대장님, 보시는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오히려 도움을 청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이 일만 해결된다면 이보다 더 큰 보시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제게 성엄聖嚴 스님이란 친구가 있습니다. 늘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불법을 더 널리 펼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장차 불교에서도 리더가 될 무척 총명한 인재입니다. 그러나 그의 신분증에 부모님의 이름이 없다 보니 미국 대사관에서 그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습니다. 선생께서 그의 신분증에 부모님의 이름 등기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당시는 호적업무가 면사무소에서 경찰국으로 이관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은 그는 자기가 방법을 강구해보겠다고 답했고, 저는 그 자리에서 자료를 넘겨주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신분증에 부모의 이름을 명기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성엄 스님은 나중에 타이완 내정부內政部를 찾아가 몇 차례 이름을 올리려 시도했지만, 담당 공무원은 “스님은 벌써 30세도 넘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부모님 이름을 넣겠다는 것입니까? 부모가 자녀의 이름을 올리는 것이지, 어떻게 자녀가 부모를 위해 호적을 만듭니까?”라고 말했다 합니다.
일이 닥쳐서야 신분증에 새 자료를 임의로 채워 넣는 것은 법률적으로 보면 당연히 위법입니다. 그러나 미국 󰡐이민 조례법󰡑에서는 부모·가족은 매우 중요한 연결고리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부모가 없는 사람이 있는가 이상하게 생각했고, 그처럼 내력이 없는 사람은 절대 통과시켜 주지 않을 것이고, 미국에 들여보내는 것은 더더욱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진훈 감찰대장은 현 전체의 분국장分局長과 책임자들을 전부 경찰서로 소집해 회의를 열었습니다.
󰡒다함께 생각해 봅시다. 법을 위반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이 스님의 신분증에 부모님의 이름을 추가 등기할 수 있는지 말이오.󰡓
여러 사람이 심사숙고를 했고, 법률에도 규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애를 좀 쓰면 고비를 넘길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보기에는 쉬운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무척 힘들게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또한 제가 그들에게 식사 한 끼 대접하고 동향이라는 인연 하나를 더하여 저는 성엄 스님의 신분증에 이때부터 부모님의 이름을 생겨나게 했고, 비자를 받아 미국으로 건너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제가 이 인연을 꺼낸 이유는 성엄 스님의 앞날을 위해 제가 무슨 중요한 일을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강진훈 감찰대장의 도움이 있었기에 성엄 스님의 신분증에 부모님의 함자를 넣을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순조롭게 미국으로 건너가 홍법하며 동초선사 東初禪寺를 건립하였으며, 훗날 일본으로 건너가 박사 과정까지 밟았으니 성엄 스님에 대한 강진훈 선생의 공헌이 적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연을 많이 맺어두면 언젠가는 열매를 맺는 날이 올 것이니 친구를 위한 저의 약간의 마음인 셈입니다. 󰡐관리󰡑 면에서 인연 맺는 것도 중요한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