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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이름과 소리일 뿐

한국 불자와 달라이라마, 용수보살의 중론으로 만나다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다람살라, 티베트의 망명정부가 수립된 인도 북부 해발 1500m의 산골 마을. 11월 25~26일 양일간 한국인 불자와 달라이라마(87, 뗀진갸초)의 법회가 열렸다.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온라인을 통한 줌 법회에서 3년 만에 성사된 실제 만남이다. 달라이라마는 최근 한국에서 발생한 이태원 참사를 언급하며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법회 주제는 용수보살의 중론으로, 첫날은 보리심의 발현이 지닌 당위성을 설하였다.


한국은 장구한 불교의 역사를 보유한 나라입니다. 티베트불교는 한국 불교도와 오랜 기간 교류를 해왔지만, 달라이라마 본인은 아직까지 한국에 방문할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은 유감입니다. 한국의 불자님들의 권청으로 오늘과 같은 야단법석에 참여코자 먼 여정이 순례길로 찾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행자에게 법은 등불과 같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길에서 인연 화합의 연기법으로 만나 붓다의 법과 믿음을 통해 저마다의 삶에서 실현하며 인생이라는 이름으로 공존의 방향을 모색하며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붓다는 가르침을 통해 항시 누구를 만나거나 내가 머무는 곳이 어디 거나 선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 수행자의 근본 마음 자세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본인 달라이라마 역시도 그리 문사수학을 하였는바, 모든 종교에 대하여 거부감이 없습니다. 차별 없이 베푸는 삶이 바로 종교의 도리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에는 정치적인 갈등을 넘어 화합의 해답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모든 종교의 근본 가르침을 이해하고자 만나고 혜안을 넓히려 여전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윤회는 본래 실제 하지 않네
그러나 인간의 의식이 실제 한다 착각하네
만물이 실제 하지 않음을 알면 집착할 바가 없네
그것을 사유하여 내면을 다스리면
대상에 대한 연연함이 사라질 것이네


밀교도차제론 가운데
-총카파 대사-


대상을 보는 순간 발생하는 의식의 작용이 있습니다. 아름답고 추함에 대한 느낌 등이 그러합니다. 내면의 감정 이입을 조절하여 그 본성을 파악하게 되면 대상이 지닌 무상의 본래 도리를 깨우치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실제 한다는 착각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 알아차림이 공성을 사유하는 것입니다. 그에 관한 결과는 자비심의 발현입니다. 그 수행에 필요한 것이 지혜와 방편입니다. 그 과정은 자량도 가행도 견도 수도 무학도의 단계로서 수행을 고도화합니다. 윤회는 실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났다 사라지는 부정적인 감정을 조절하고 없앨 수 있습니다.
최근에 한국서 발생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애도를 표합니다. 우리는 사소한 다툼에서조차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운데, 그 얼마나 상심이 크실는지요. 형색과 공성은 다르지 않습니다. 대상이 마치 실제 한다고 보지만 정작 찾아보면 아무것도 찾을 것이 없습니다. 마치 대상에 모든 것이 있다고 여기며 연연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지요.
아침에 일어나 보리심과 공성을 사유합니다. 이러한 지속적인 실천이 저를 점차 변화시켰습니다. 내 마음의 이기심이 줄어들고 항상 상대방을 위해 봉사하고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이를 이롭게 하겠다는 마음을 내도록 하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내면에 일어나는 분별과 망상을 줄이는데 공성을 사유하는 것은 이로운 마음 처방전 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몸도 더불어 건강해집니다. 나를 위해 보리심을 닦으십시오. 타인을 위하고 아끼는 만큼 나의 마음도 따라 평온해집니다.
우리는 매사에 연연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재하지 않음을 깨우쳐야 합니다. 집착으로 인해 발생하는 성냄과 어리석음이 얼마나 무모한지 알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습관으로 나의 의식에 뿌리내리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일체중생을 위하는 삶의 원동력은 보리심뿐입니다. 단지 이생에 그치지 않고 세세생생으로 이어지도록 보리심을 발현하도록 서원하는 지금 이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입보리행론 10장에서 일컫기를, ‘허공계가 존재하고 중생이 존재하는 한 그들과 함께 머물러 중생을 돌보리라.’라는 말씀과 같이, 이생을 걸고 오로지 중생을 위하는 자세로 내 삶을 이끈다면 귀한 사람으로 태어난 나의 삶의 도리를 명확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근간을 굳건히 하여 바로 잡는 불자가 되십시오. 모든 종교 간의 화합을 도모하십시오. 80억 가까이 되는 인류 모두가 고통을 원치 않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알아 더불어 살아가는 방안을 모색해 주십시오. 좀 더 대범한 마음으로 상대를 포용하고 더 감싸는 삶을 살아가 주십시오. 우리가 추구하는 세계의 평화는 바로 이러한 방법으로만 실현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