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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양심이 과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달라이라마, 유럽 평화 운동가들과 대화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유럽에서 발한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과 중동에서 발한 하마스 이스라엘 분쟁 이후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을 일컬어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통칭하게 되었다. 지정학적 영향으로 인해 유럽이 처한 경제 위기는 실로 심각하다. 장기간 고물가 저성장의 상황에서 재정 부담은 확대되고 있다. 난민 유입 또한 증가하고 있으며, 에너지 가격 역시 상승하고 있다. 대외정책 또한 다국 면에서 차질을 빚고 있는 정황에서 투자심리까지 위축되는 등 유럽 경제가 직면한 어려움은 비관적이다.
유럽의 평화 운동가들이 티베트 망명정부가 수립된 다람살라를 찾은 것은 지난 11월 8일이다. 단체의 리더인 프랑스 출신의 소피아 스트릴레버(Sofia Stril-Rever)는 현재 인류가 처한 상황이야말로 국제 정세의 변곡점의 시기임을 자명한다며, 그러한 때에 14대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8)를 다시 만날 수 있음에 무한한 기쁨의 심정이라는 벅찬 감동의 인사를 전했다.
그녀는 인류애를 실현하는 바에 대한 보편적인 정의 구현의 기반이야말로 달라이라마의 행적에 담긴 메시지를 통해 근간이 되었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내년 4월 5일로 앞둔 국제연합(UN)이 승인한 ‘양심의 날’을 기념하는 데 달라이라마와 관련한 활동가들의 관심을 모아 달라는 부탁을 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달라이라마와의 만남은 차별이 없이, 모든 사람의 기본적 자유와 인권을 확립하기 위해 방향성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마련되었습니다.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는 UN의 주요 기본권 중 하나입니다. 지난 세계 양심이 날에서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세계 양심의 날은, 자신과 타인의 행동에 대해 윤리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우리의 양심에 대한 날입니다.
세계 양심의 날은, 평화 증진이라는 유네스코의 설립 취지이자 존재 이유와 직결됩니다.
많은 것이 불확실한 요즘, 이 메시지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양심의 보편성에 의문이 생겨 자신의 판단을 무시하거나, 그 판단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억압될 때, 평화는 약화되고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계인권선언이 모든 인간은 양심을 부여 받았고, 그 양심에 따라 행동할 자유가 있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문화와 유산의 다양성을 통해서 사람들 간의 상호이해를 증진하고, 우리 모두가 양심적이고 가치로운 존재라고 인식하면서 이해를 증진하고, 생각과 정보의 보급과 교육을 지원함으로써 유네스코는 개개인의 도덕성을 보장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유네스코의 사명은 유네스코 헌장에 ‘지적 도덕적 연대’라고 언급된 인류의 집단적 양심을 촉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교육, 문화, 정보, 과학을 지원하면서 이루고자 하는 근본적인 목표입니다.
물론 다양성 존중에 기반하여 모든 형태의 인종주의와 차별에 맞서고 포용을 보편적으로 증진하는 사업들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사업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한 인류의 일원임을 깨우치도록 합니다.
또한 유네스코의 노력은 자연 세계와 우리의 관계 재고의 시급성에 대한 이해, 즉 환경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유네스코는 2025년까지 모든 회원국에서 환경교육을 학교 커리큘럼의 주요 요소로 만들고자 합니다.
이것이 바로 개인과 세계의 관계에 대해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능력, 즉 후설의 ‘양심’의 정신입니다.
마찬가지로 유네스코의 인공지능윤리 권고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때 양심과 각성을 갖출 필요성을 강조하며 “양심 없는 과학은 영혼의 파멸에 불과하다.”라는 라블레의 경고와 함께 합니다.
그러므로 자와할랄 네루가 말한 ‘세계공동체의 양심’ 역할을 유네스코가 수행하고 있다고 오늘, 세계 양심의 날에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선한 양심과 사랑이 어떻게 세계의 지속적인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까요?
단체장 스트릴레버가 성하에게 질문하자 달라이라마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는 탄생과 함께 어머니의 사랑을 받습니다. 어린이로서 우리는 다른 아이들이 어디서 왔는지, 그 사람이나 가족이 무엇을 믿는지 분별하거나 상관하지 않습니다. 주저 없이 함께 어울려 놀지요. 이 시절의 심성이 지닌 개방성은 우리 즉,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입니다.
집단 교육의 사회화를 통해 성인으로서 우리 중 너무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우리와 그들의 양극화된 관점으로 구분 짓습니다. 상대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왜곡된 방식은 이차적인 정치적 또는 종교적 차이에 따라 곳곳에서 다양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우리 사이의 평화에 이바지하기를 원한다면, 근본적으로 인간으로서 우리는 모두 동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방법론으로 논의의 서문을 열어야 합니다. 인간이 지닌 예외 없는 공통의 경험이 무엇인지를 사유의 근거로 삼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태어나고 결국 모두가 예외 없는 죽음을 겪는다는 점입니다.
국적이나 신앙의 차이를 고집하며 그에 얽매이는 것은 서로를 죽이는 핑계가 될 뿐입니다. 지금의 상황이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우리 80억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공통된 인간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더불어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을 나와 다름이 없는 또 하나의 사랑받을 인간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울 때 나와 우리가 하나의 인간 가족에 속해 있음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