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범
숲해설가

우리나라는 국토의 70%정도가 산으로 이루어진 지형이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은 주변에서 산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산림환경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산과 숲 자체가 삶의 터전이었던 것이다.
원시시대부터 인류는 숲에서 거주하며 채집생활을 통해 먹이를 구하였고 자연소재의 도구와 옷감을 구해 생활하였다, 인류는 진화과정을 통하여 자연에서 먹이를 찾으며 이동하는 생활에서 점차 한곳에서 먹이를 구하는 정착 활동을 시작하였다. 야생식물의 씨앗을 채집하여 정착하거나 야생동물을 방목하여 이용하기도 하였다.
나무는 인간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으로서 자신을 위협하는 적을 방어하거나 사냥하는 도구, 경작을 위한 농기구, 집을 짓는데 필요한 뼈대로 이용하기도 하고 혹독한 기후를 견디기 위한 난방과 먹을거리를 요리할 수 있는 땔감으로도 사용하였다. 나무는 생존수단이자 생활도구였다.
이처럼 나무와 숲은 인류의 진화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인류의 문화 발전에도 뿌리가 되었다. 나무와 숲은 우리의 사고체계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일찍부터 상징의 대상으로 형상화되어 신화나 전설, 그리고 문학과 예술 속에도 뿌리 깊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우리 문화에 나타나는 상징 중에 민중과 가장 가까운 것에는 십장생이 있다. 십장생은 영생을 상징한다. 천신, 일월신, 산신 등의 자연물을 숭배하던 조상들은 도교에서 유래된 신선사상을 융합하여 독특한 십장생을 창조한 것이다.
소나무를 비롯한 해, 산, 물, 돌, 구름, 불로초, 거북, 두루미, 사슴 등 오래 사는 10가지가 그림이나 무늬로 형상화 되어 도자기, 나전공예품, 목공예품 등에 많이 표현됐다.
또 전통의상과 자수품, 산수화나 민화는 물론 사찰이나 궁궐의 벽화나 내부 장식에도 숲과 자연 생물을 표현하였다. 비단벌레는 옥충이라고 불리며 그 아름다운 빛깔 때문에 다양한 장식으로 사용하였다. 신라 금관총에서 비단벌레로 장식한 마구가 발견 되었는데 통일신라시대에는 여성의 의복 치마에 비단벌레를 이용한 장식을 붙이기도 하였다.
신라의 고분 천마총의 천마도의 장니는 자작나무 47겹의 수피에 백마가 구름을 헤치고 힘차게 날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장니란 말의 양옆에 달아 말굽에서 튀어 오르는 진흙을 막아주는 승마 도구이다.
천마총 금관의 곡옥은 풍요와 생명력을 상징하는 생명의 나무에 달린 과일을 뜻하며 원형 장식이나 아래 끝이 뾰족한 심장 모양의 잎 장식은 북방의 한랭한 평원지대에서 자라는 자작나무의 잎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며, 자작나무는 활엽수 중에서도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나무로 그 강인한 생명력으로 인해 귀하게 평가되는 존재로 보호받았을 것이다.
어느 한 민족의 공유한 상징은 민족정서를 대변하는 문학과 예술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건국신화의 신단수이다. 신단수는 하늘과 지상을 연결해 주는 자연조화의 상징이고, 이러한 상징은 민족정서의 밑바닥에 수 천 년 동안 자라잡고 있다.
단군신화에 나타나는 단은 박달나무나 제터를 뜻하며, 특정 나무가 신이 내리는 나무로 신격화되어 신이 하늘에서 인간세상으로 내려오는 통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래서 나무와 숲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뿌리 혹은 근원l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산하에 무성했던 산벚나무, 돌배나무, 자작나무는 팔만대장경의 중요한 재료이다. 이들 나무가 없었다면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판각은 많은 어려움에 봉착했을 것이다. 더불어 옻나무가 없었다면 700여 년 동안이나 썩지 않은 팔만대장경을 지금까지 온전한 상태로 만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전국에서 자라는 닥나무가 없었다면 천년을 두고도 변치 않는 한지를 생산하지 못했을 것이며 세계에 자랑하는 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의 편찬이나 보존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술 역시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숲은 인간에게 친숙한 환경이며 아직도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을 공급하며 목재, 종이, 버섯, 신물질 등을 제공한다.
모든 인류는 숲과 친숙하였으며 민족마다 나무를 신성하게 여겨 나무를 소재로 한 수많은 이야기와 설화가 전해진다.
소나무가 우리 민족에게는 대표적이다. 아기를 출산하면 대문에 금줄을 쳐서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정결을 유지하였고 죽을 때도 임금의 관을 비롯한 최고의 관을 소나무로 만들어 소나무와 함께 생을 마감했다.
많은 정보는 공유되고 상호 연결되어 지구상의 다양한 문화는 하나의 형태로 묶이고 있다. 효율적 기능을 위해 불필요하거나 경쟁력 없는 기능은 점점 사라자고 있다. 기후 변화 등 다양한 외부요인에 견딜 수 있는 체계는 획일화된 기능의 대형 체계보다는 다양한 기능을 가진 소규모 체계일 수 있다.
숲과 우리 전통문화에서 다양한 기능을 찾아내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가치를 정립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의 숲과 전통문화에 내재되어 있는 전통생태 체계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숲은 우리 민족은 물론 모든 인류의 삶의 원천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제한된 자원인 숲을 파과하고 무한 이용하고자 하였다. 인구의 증가는 이를 가속화하였다.
인류의 역사에서 문명이 발달한 곳에는 항상 숲이 있었으며 숲이 파괴된 곳에서는 문명도 멸망하였다.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론 제국과 고대 이집트는 지중해 연안의 온난한 기후지역에 풍부하게 발달한 숲을 이용하여 찬란한 문화를 만들어 냈다.
문명의 발달은 많은 나무를 요구하였으며 숲의 파괴로 인한 다양한 공익기능의 감소는 결국 인간의 생활환경을 파괴하였다. 숲의 계속적인 파괴는 국력을 약하게 만들어 현재 그 시대의 유물만이 그 당시 문명의 존재를 말해 주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 생활에 필요한 연료와 나무를 이용한 가공품 등의 수요 증가로 점점 많은 숲이 파괴되었다, 이로 인하여 숲의 면적은 점점 줄어들고 최근 기후 변화와 환경오염은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는데 그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인류 문화의 원천인 숲의 파괴는 역사가 증명하듯이 문화의 파괴이다. 지금은 숲과 문화의 상관관계를 시급히 자각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