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운
텃밭농부
텃밭농사는 즐거운 일이다. 생명을 길러내는 일만큼 즐거움이 큰 일이 어디 있겠는가. 바짝 말라있는 씨앗에서 움이 트는 것을 지켜보면 경이로움에 빠진다. 씨앗은 죽은 것처럼 보이는데, 따뜻한 봄날에 흙을 만나면 벌나비가 꽃을 만나 흥겨워하듯 몸을 부풀린다.
씨앗은 작고 가볍기도 하다. 상추 씨앗은 살랑 부는 바람에도 흩어져 어디에 떨어졌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며칠 후 보면 파릇한 싹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내 손으로 뿌린 씨앗에서 저런 일이 벌어졌다니! 생명을 키워냈다는 은근한 기쁨이 좋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내가 직접 참여했다는 뿌듯함에 젖게 된다.
씨앗은 힘이 세다. 자기 몸보다 수백 수천 배 넘는 무게와 부피의 흙을 밀치고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는 힘이 있다. 또 씨앗은 수백 수천 배의 씨앗을 인간에게 내어준다. 우리는 그것을 먹어 몸을 유지한다. 이보다 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고마움을 느낄 수 있으니 텃밭농사는 즐겁다. 
내가 키운 작물은 볼품없으나 맛있다
내가 지은 농작물은 맛이 다르다. 고유의 맛이 들어 있다. 배추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어릴 적 먹었던 배추 뿌리의 맵싸함이 담겨 있다. 사서 먹는 배추에서는 그 맛을 느낄 수 없다. 시금치와 상추도 그렇다. 달달함과 쌉쌀함이 더 하다. 내가 키운 작물의 식감은 거의 질기다. 비료를 쓰지 않아 나타나는 결과인데, 오래 씹게 만든다.
못난이들이 많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 그렇다. 반듯하지도 않고, 길쭉하지도 않고, 통통하지도 않다. 크지도 않다. 벌레에 물려 아문 흔적이 칙칙하다. 어디 내어놓으면 어찌 농사를 그렇게 지었느냐는 핀잔을 듣기에 맞춤이다. 이 또한 화학비료를 주지 않은 결과다. 그러나 이 점은 반성해야 한다. 작물이 가진 특성을 드러내도록 손길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학비료는 과성장을 하기에 쓰지 않지만, 작물이 원하는 영양소를 제때에 넣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으니 못난이를 낸 것이다. 작물에게 미안한 일이다.   
농사짓는 즐거움이 여럿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쓰레기로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밭으로 가져가 거름으로 쓴다. 밭에 그냥 뿌리면 안 된다. 부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음식물 쓰레기에는 영양소가 그대로 들어있으니 벌레가 낀다. 벌레는 이 음식물 쓰레기를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알을 낳는다. 밭에 벌레가 들끓게 된다. 특히 고자리파리는 애벌레  시기에 뿌리를 갉아먹으며, 병원성 바이러스를 옮기는 숙주가 된다. 그러니 밭에 그냥 버리는 쓰레기는 독이 된다.
음식물 쓰레기를 비료로 만드는 방법은 여럿 있겠지만, 나는 액비로 만든다. 방법은 간단하다. 100리터쯤 크기의 통에 음식물 쓰레기를 붇고 물을 채운다. 물의 양은 음식물 쓰레기를 살짝 덮을 정도면 된다. 1주일에 두 번 정도 음식물 쓰레기를 넣고 물을 보충해준다. 통이 가득 차면 뚜껑을 덮어 벌레와 빗물이 들어가지 않게 한다. 6개월 정도 그대로 두면 액비가 된다. 이 액비를 밭에 뿌릴 때는 200배 정도의 물에 희석한다.
다른 방법도 있는데, 음식물 쓰레기와 밭에서 나오는 풀을 섞어 쌓아두는 것이다. 가끔 물을 뿌려주어 촉촉함을 유지해준다. 비가 들어가지 않도록 덮어둔 후 6개월쯤 지나면 놀라운 변화를 보게 된다. 음식물 쓰레기와 풀이 완전히 분해되어 검은색을 띈 작은 알갱이가 된다. 한 줌 집어 냄새를 맡아보면 향긋한 흙냄새가 난다. 잘 부숙되었다는 증거다. 밭에 골고루 뿌려준다.
오래 전 시골에선 모두 이렇게 했다. 그때는 음식물 쓰레기라는 말조차 없었다. 먹다 남은 음식을 그냥 버리지 않았으니 쓰레기일 리가 없다. 오줌과 똥도 그냥 버리지 않았다. 아궁이에서 나오는 재와 섞어 거름으로 만들었다. 어느 집이건 변소 옆에는 둥그런 두엄더미가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가 뭐예요?
지금도 그렇게 하는 농부들이 있다. 전남 곡성에서 농사를 지으며 토종씨앗을 모으고 보급하는 운동을 하는 변현단이라는 분은 똥오줌을 퇴비로 만들어 쓴다. 그이의 집에는 손님들이 자주 찾아 분뇨량이 꽤 많다. 변소에 갖다놓은 통에 똥이 가득 차면 밭 한 귀퉁이로 옮겨 왕겨와 섞는다. 한 무더기쯤 쌓이면 불을 붙여 훈탄으로 만든다. 훈탄은 왕겨숯인데, 불을 붙인 후 거적대기로 덮어 산소 공급을 줄이면 숯이 된다. 훈탄은 거름 중 으뜸으로 치는데 여기에 똥까지 섞여있으니 한 발 더 나아간 거름이다.
연말이다. 한 장 남은 달력이 가볍다. 왠지 쓸쓸한 기분에 휩싸인다. 짧은 낮과 긴 밤의 어둠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기온이 차가워 밭에 자주 가지 못한다는 사실도 아쉽다. 올 한해를 돌아보니, 집 밖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 밭이다. 일주일에 두 번은 밭에 갔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밭에서의 생활에 대해 결산 아닌 결산을 해보고 싶다. 우선 내게 즐거운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해준 밭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온갖 작물의 뿌리를 받아주었고, 내게 결실을 내어주었다. 나의 발걸음을 기꺼이 허락했으니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겠는가.
농사에 있어 나는 여전히 초보에 머물러 있다. 46그루를 심었던 고추는 장마가 지난 후 작파했다. 긴 장마에 과습한 것이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고추는 건조한 기후의 남아메리카 고산 지역이 원산지이니 심기 전에 두둑을 높이고 물이 잘 빠지도록 밭을 만들었어야 했다. 고온다습한 장마철이 있는 우리나라의 기후 조건에서 고추를 키우는 것은 부지런함과 세심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고추의 생태 조건을 알기만 하면 무엇 하나. 행하지 않았으니 중도작파는 예정된 결과이다.
모름지기 농사란 씨앗과 밭과 물과 햇빛과 바람이 하는 일이 구할이다. 나머지는 사람의 일이다. 작물의 생태를 잘 알아 좋아하는 것을 북돋고 싫어하는 것을 제어하는 일이 농사짓는 사람의 몫이다. 작황이 좋지 않았다면 반드시 원인이 있다. 작황이 좋은 것이 반드시 잘 짓는 농사는 아니지만, 좋고 나쁜 결과의 원인을 얼핏 알고는 있지만 거들지 않았으니 6년째 밭에 나가면서도 초보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벌레를 물리치되 종자는 남겨주십시오
배추도 폭망했는데, 벌레를 물리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농사에서 벌레는 무서운 존재다. 올해 내 배추에는 좁은가슴잎벌레가 기승을 부렸다. 까만 윤기가 나는 이 벌레는 크기가 고작 2~3mm인데, 먹성이 대단하다. 배추 하나에 대여섯 마리가 있는데, 잎을 그물로 만들어버린다. 광합성을 하지 못하니 자라지 못한다. 기온이 떨어지면 이 벌레는 땅 속으로 들어가 더 이상 피해를 끼치지 않는데, 이때는 배추도 자라지 않는다. 결국 결구가 되지 못한다. 이 벌레를 만만히 보았던 탓이다. 이 벌레는 화학농약을 치거나 손으로 잡아 쫓아내는 방법 밖에 없다. 두 차례 손으로 잡긴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내가 벌레에 진 것이다.
농촌에서는 벌레 때문에 애를 태웠다. 그래서 여름이 오기 전 즈음에 충제(蟲祭)를 지내기도 했다. 요즘도 이 풍속을 이어가는 농촌마을이 있다. 전남 진도 지역의 여러 마을에서 지내는 충제가 널리 알려졌는데, 한 마을의 축문이 눈길을 끄는데, 축문 중 이런 구절이 있다. ‘剿絶滅後遺種(초절멸후유종)’. 벌레를 없애달라고 기원하면서도 벌레의 종자는 남겨달라는 것이다. 미물의 생명조차 귀하게 여기는 생명존중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벌레 한 종도 생태계를 이루는 그물의 접점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에게서도 이런 정신을 만날 수 있다. “만선을 바라지만 씨고기는 남겨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생명을 키워 인간의 생명을 뒷받침하는 농부들의 이런 마음이 종교만큼 거룩하다. 텃밭농사를 하면서 이런 마음을 알 수 있게 되니 나는 두둑한 복을 누리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