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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고자 하는 마음의 비결, 출리심 보리심 지혜

9월 30일 남걀사원 내 딱첸촐링에서 법문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9)의 가을 법문은 인도 다람살라를 찾은 대만 불교도 1천 300여 명과 함께 그 시작을 알렸다. 9월 30일 남걀사원 내 딱첸촐링은 남인도에서 휴가를 위해 북인도를 찾은 여행자와 데붕 간덴 세라사원에서 수학하는 학인들의 참여로 7천여 명의 사부대중이 자리를 함께했다. 간덴트뤼파께서 상단에서 성하를 정중히 맞이하며 만다라 공양을 올렸고, 중국어로 반야심경을 봉독하는 것으로 법회가 시작되었다.


“현상에서 공성을 본다면 붓다와 만나리라”


사부대중 사이를 가로질러 사자좌에 오르는 내내 제 쫑카파 대사의 믹체마 기도가 들려왔습니다. 겔룩빠의 종조 쫑카파 대사께서 난 곳과 가까운 곳에서 태어난 저는 영적으로나 철학적으로 큰 교감을 나누며 성장해 왔다고 자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동시에 붓다의 가르침은 어느 특정한 장소에 국한되어 있는 것 또한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제 린포체의 가르침은 세계 곳곳에 전도 되었고, 본인 달라이라마는 그 가르침의 본연이 왜곡되지 않고 바르게 이해하여 실천되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정치적 변곡점이었던 1959년. 티베트 설산 왕국을 떠난 이후로 지금까지 저의 중요한 서원 중 하나는 린포체의 전집 18권을 모두 섭렵하여 논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법석에서는 그 가운데 수행도의 세 가지 원칙을 다루고자 합니다. 법문을 통해 제 린포체를 향한 저의 존경심을 여러분도 함께 느끼길 바라며, 큰 스승님과의 긴밀한 철학적 영적 교감 또한 나누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스승과의 영적 교감이란 지금 현재 나의 수행에 박차를 가하는 힘과 같습니다.
티베트와 티베트 민족의 정체성은 붓다의 가르침 즉, 불법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나란다 승원에서 전래된 불법의 요체는 여러 선지식과 논사의 수행을 통해 오롯이 전수됐습니다. 때문에 불·법·승 삼보 가운데 법보에 관심을 지닌 많은 분이 티베트의 불교전통을 연구하고 조사해 왔습니다.


고귀한 연꽃을 지닌 당신에게 귀의 합니다.
당신의 법어는 금강석과 같이 영광스러우니,
숭고한 통찰력과 감로와 같은 지혜는 꿀과 다름이 없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은 보배로운 보석으로 장엄될 만큼 숭고합니다.


석가모니 붓다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이 북쪽으로 전도될 것이라 예견하셨습니다. 네 가지의 고귀한 진리를 초전법륜으로 보인 후, 붓다의 가르침은 인도 북쪽과 티베트 전역을 거쳐 몽골 그리고 한국까지 도달했습니다. 티베트인이 본토를 떠나 난민의 신분으로 세계 곳곳의 망명지에 정착한 이후에도 그들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티베트 불교의 지혜 덕분입니다. 불교적인 윤리와 자연과 교감하는 집중력 그리고 지혜라고 하는 세 가지 고차원적인 수행론을 통해 전통을 유지하고 전승할 수 있었습니다. 이 수행법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기에 오늘날 전 세계의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지식인 역시 티베트 불교와 티베트 민족성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이 모두가 가능해지도록 하는 데는 세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숭고한 포기, 다시 말해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결의, 그리고 깨어 있고자 하는 마음과 올바른 견해입니다.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결의는 직접적인 깨달음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다른 두 가지 원칙에 의해 강화되는 것입니다.
8세기 티송대첸 왕에 의해 인도의 나란다 승원에서 모셔 온 승원장 샨타락시타는 티베트의 삼예 승원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재확립했습니다. 논쟁으로서 연구하고 명상했으며, 세 가지 고차원의 수행과 세 가지 경로의 원칙을 실천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결의를 개발하고자 정진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생이나 윤회와 같은 순환적 존재, 더 나아가 내세의 즐거움과 매력에 더 이상 유혹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모든 수행이 온전히 진행되는 데는 보리심이라고 하는 각성된 마음과 공성의 논리에 대한 올바른 관점이 수행자 스스로 확립되어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시점부터 나 자신의 뇌는 각성하여 있어야 합니다. 마음의 작용은 공성에 기반을 두고 사유 되어야 합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작용을 이해하고 현상이 어떻게 의존하여 발생하는가를 직관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습을 들이다 보면 괴로움이라는 것은 먹구름과 같은 무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수행도의 원리는 우리의 내면에서 통합되어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내면적 경험의 일부로 인식의 근저에 자리해야 합니다. 항시 순결무구한 자유로움으로 내면을 정화해야 하며 윤회로 빠져들 수 있는 쾌락으로부터 초연해야 합니다. 이생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끌림을 분별하여 취할 수 있다면 미래의 나는 자유를 실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고 행복의 원인을 알기를 바랍니다.
모든 존재가 고통과 고통의 원인에서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모든 존재가 타인의 행복을 함께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모든 존재가 탐욕과 증오에서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