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⑫ 일상의 재가 수행에서 범망경의 활용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범망경󰡕에는 대승의 보살 운동을 하는 불자가 지켜야 할 도덕률을 열 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10가지란, ①자심慈心, ②비심悲心, ③희심喜心, ④사심捨心, ⑤시심施心, ⑥호어심好語心, ⑦익심益心, ⑧동심同心, ⑨정심定心, ⑩혜심慧心입니다. 이 열 가지 마음가짐을 ‘기르고 키워가야[十長養心]’ 한다고 합니다. 키워간다는 것은, 없는 것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씨앗이 원래 인간이면 누구나 갖추고 있으니, 그 씨앗이 잘 발아해서 크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 종자는 누구나 갖추고 있지만, 긴 삶 속에 쌓아온 토양인 번뇌로 인해 가려지고 굴절되어 다만 현실에 드러날 때는 천차만별이라고 합니다.


2.
이 번호에서는 순서에 따라 ③희심喜心부터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범망경󰡕의 한역漢譯을 보면 해석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어려운 이유는 장문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읽는 이가 보충해서 읽어야 합니다. 보충해서 읽다 보니 읽는 이마다 달리 읽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점이 독자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若佛子야 喜心者는 悅喜無生心時에 種性體相이라 道智空空하여 喜心하니라.”


이상에서 저는 토吐를 붙였는데, 이것은 백용성 스님께 붙인 것을 제가 활용한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용성 스님은 3.1만세 독립운동의 대표였던 분입니다. 삼장역회三藏譯會를 만들어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신 선구자이시기도 합니다. 용성 스님의 토에 따라 우리말로 다시 번역을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불자야, ‘기뻐하는 마음[喜心]’이란, 무생無生의 마음으로 기뻐할 때 (떠오르는 감정인) 일체의 종성種性이요 체상體相이다. 도종지道種智로 관찰하니 모두가 공하고도 공하여, 그러는 가운데 ‘기뻐하는 마음’을 낸다.”


이렇게 번역은 해보았지만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을 모색해야겠지만, 필자의 경우는 이 󰡔범망경󰡕의 내용을 󰡔화엄경󰡕의 입장에서 해석합니다. 여기에서는 경전을 해석하는 연구자들의 입장이 있습니다. 이 점을 간략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전통적으로 󰡔범망경󰡕의 내용 해석에서는 두 계통이 있습니다. 하나는 신라의 원효 스님처럼 ‘화엄의 법성’ 계통에서 대승 경전을 해석하는 갈래가 있습니다. 이런 해석의 방법은 저 멀리 당나라에도 전해서 현수 법장 스님을 비롯한 중국의 화엄학에도 영향을 줍니다. 다른 한 갈래는 신라의 태현 스님이 제시한 방법인데, ‘유식의 법성’ 계통입니다.
필자의 경우는 ‘화엄의 법성’ 계통에서 철학하는 연구자임을 밝혀둡니다. 저는 그런 입장에서 지금까지 연재하고 있습니다. 지금, 󰡔범망경󰡕 본문의 어려운 문제도 저는 󰡔화엄경󰡕을 기준으로 풀어보려는 것입니다. 40권으로 번역된 󰡔화엄경󰡕의 제40권 속에는 소위 「보현행원품」이라는 특별한 내용이 있습니다. 선자동자가 문수보살의 지도에 따라 구법 여행에서 맨 마지막에 만나는 스승이 보현보살이라는 것은 여러분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보현행원품」에서 보현보살은 선재동자에게 대승의 불자가 닦아야 할 수행에 대해 법문을 합니다. 그 내용을 사람들은 ‘보현보살 10대 행원’ 즉, 10가지의 수행과 서원이라 하는데, 그중에서 다섯 번째로 <수희공덕>이 있습니다.
<수희공덕>의 핵심은 남들이 잘한 일에 대해서 나도 그 잘한 일을 훌륭하다고 공감하고, 그러면서 동시 나도 그렇게 훌륭하게 수행해야겠다고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남>과 공감하는 것입니다. <남> 중에서 대표적인 <남>은 부처님들입니다. 대승에서는 부처님이 석가만이 아닙니다. 대승은 다불多佛 사상입니다. 그리고 성문 연각 보살의 승단에 속한 출가 수행자들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 세상에 사는 일체 모든 사람입니다. 저 위로는 부처님에서 그리고 가까이는 우리네 사람들이, 저마다 그들이 발심하여 깨침을 얻고 설법하고 마침내는 열반에 드는 일생의 삶에 대해 공감하고 그런 삶이야말로 거룩한 삶이라고 공감하여 기뻐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한 사람의 이런 일생을 ‘8상 성도’로 요약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일생의 과정에서 행한 일체의 공덕을 공감하며 내 일처럼 기뻐하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이 정도로 이야기를 좁혀놓고 다음 이야기를 진행하기로 하겠습니다. 위의 원문에 나온 첫 귀절을 다시 인용해보겠습니다. “불자야, ‘기뻐하는 마음[喜心]’이란, 무생無生의 마음으로 기뻐할 때 (떠오르는 감정인) 일체의 종성種性이요 체상體相이다.”
내가 남들이 ‘8상으로 성도’하는 모습을 보고 그것에 대해 기뻐하는 것입니다. 기뻐하는 대상의 범위를 너무 넓히면 이 경전의 본문에서 말하려는 참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뻐해야 할 타인의 행위를 이렇게 특정했으면, 다음에는 어떤 마음을 그것을 기뻐하고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발심하는 것인지에 주목하기로 해봅시다. 마음 자세 말입니다. 󰡔범망경󰡕에서는 “무생無生의 마음으로”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생의 마음’이란 무슨 마음인가요? 생·주·이·멸의 운동 변화가 없는 마음을 무생無生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6식인 ‘의식’과 제7식인 ‘말라식’과 제8식인 ‘아뢰야식’이 아닌, ‘진여심’을 말합니다. ‘화엄의 법성’ 철학에서는 ‘아뢰야식’을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으로 판단합니다. ‘아뢰야식’에는 진여적 요소와 생멸적 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이 진여적 요소는 생주이멸이 없는 무생無生이라고 합니다. 이런 진여의 마음으로 부처님을 비롯한 여러 수행자가 8상으로 성도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라고 󰡔범망경󰡕에는 주문하는 것입니다.


4.
무생無生인 진여眞如의 마음으로 남들의 수행을 기뻐하라는 말인데, 참 어렵습니다. 그것이 대체 어떤 심리 상태인지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간단하게 말 저의 수준에 말하겠습니다. ‘한자리 깔고 하는 마음’ 아닌, 순수한 본마음으로 타인의 수행과 수행의 성취를 기뻐하면 나도 그렇게 발심하고 수행하고 회향하겠다는 마음입니다.
바로 그런 마음이 위에서 인용한 원문에서는 종성種性, 체상體相, 도지道智 등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티 없는 마음으로 남의 훌륭함을 기뻐할 수 있는 종자가 본성적으로 우리에게 있다는 믿음입니다. 그런 본마음의 바탕에서 우러나는 현상 그것이 체상體相이고, 그것이 도다운 지혜[道智]라는 것입니다. 그러데, 그런 본마음은 공하다는 것입니다. 공하다고 말하는 것에 또 매일까 염려하여 뒤에 공空 자 하나를 더 붙여, 공공空空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마음을 이렇게 공으로 이해하는 관법을 ‘공관空觀’이라 합니다.
저는 ‘화엄 법성’의 철학에서 이렇게 󰡔범망경󰡕에 나오는 ‘10가지 장양심’ 중에서 희심喜心을 해석합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그다음에 나오는 문장은 좀 쉽게 읽혀질 수 있습니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중생에게 공관空觀을 일으켜 도에 들어가게 하여 악한 사람을 버리고 선지식을 만나게 하여, 나에게 좋은 길을 보여주게 하며, 중생들을 불법의 집에 들어가게 한다. 불법 속에 항상 기쁨을 일으키게 하여 법의 지위에 들어가게 하며, 다시 여러 중생을 바른 믿음에 들어가게 하며, 삿된 사상을 버리고 6도 윤회의 괴로움을 등지게 한다. 그래서 ‘기뻐하는 마음[喜心]’이라 한다.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티 없는 마음으로, 생멸이 없는 본마음으로, 우리 주변에서 대승을 수행하는 이들의 공덕을 기뻐하고, 나아가 그들의 수행을 돕는, 그리하여 나도 닮아가는 삶을 되돌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