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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리목連理木

홍성범(숲해설가)



세상에는 손을 잡지 못하는 존재들이 있다. 말이 없어 마음을 설명하지 못하고, 발걸음도 없어서 함께 걷지 못하는 존재들. 그중 하나가 나무다. 그러나 그 나무들이 서로 아무 말 없이도 오랜 세월을 건너 서로의 생을 나누는 장면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연리목連理木이라 부른다. 가지가 이어지면 연리지連理枝, 뿌리까지 엮이면 연리근連理根이라 이름 붙였다.
각각의 삶을 지니고 서 있던 나무가 어느 순간 서로를 향해 기울더니, 마침내 한 줄기처럼 이어져 버린 모습. 서로 닿기 위해 조심스럽게 자라다가 끝내 한 생명처럼 이어진 존재들. 우리는 이런 나무 앞에 서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 사이에서 이루길 바라는 온기와 신뢰가 이미 그들에게는 조용한 기적처럼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리목은 나무가 오랜 세월 서로 기대고 맞부딪히며 조직이 붙고 마침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수분과 영양이 흐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눈에 보이지 않던 미세한 상처와 상처가 지나치게 가까워진 나머지 이어져 버린 결과이다.
사람의 인연은 언젠가 흔들리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는 것과 달리, 연리지는 흔들림에 더 단단해진다는 점에서 신비롭다. 바람이 불어도 비가와도 두 나무는 끝내 한쪽이 다른 쪽을 버리려 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의 무게를 나누어 견디고, 뿌리를 땅속 깊은 곳까지 나란히 내릴 뿐이다.
예부터 중국에서는 연리지의 모습을 가리켜 ‘연리지교連理之交’, 즉 더할 수 없는 절친한 우정을 뜻하는 말로 썼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두 마음이 하나이면 가지도 서로 이어진다.”는 기록이 전한다. 선비들은 자연의 이런 위로에서 인간관계의 이상향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옛사람들은 나무에 마음을 빗대곤 했다. 『시경』에서 “연리지는 가지가 하나가 되는 사랑”이라 했고, 백거이는 「장한가」에서 “살아서는 연리지가 되고, 죽어서는 비익조가 되리라.”고 노래했다.
이 말들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결합의 순간을 자연 속에 찾아왔다. 사랑은 손에 잡히지 않기에 옛사람들은 나무의 손길을 빌렸다.
무수히 많은 서원과 기도가 연리목 앞에서 이루어졌고, 나무는 그 고요한 마음들의 증인이 되었다. 나무가 조용한 이유는 아마 인간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간혹 숲에서 연리목과 연리지, 연리근을 마주한다.
경주 남산의 연리지 소나무는 두 줄기가 어깨를 포개며 수십 년을 버텨 왔다. 신라의 역사가 바람에 스러져 가는 동안에도 두 나무만은 서로를 놓지 않았다.
제주 사려니숲의 연리목은 바람 많고 비 많은 날들을 함께 견디며 마치 깊은 숲길을 손잡고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처럼 보인다.
대관령의 연리지 자작나무는 눈보라 속에서도 서로의 흰 몸을 기대며 살아간다. 멀리서 보면 한 줄기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 다른 두 삶이 만나 이루어낸 고요한 곡선이 보인다.
많은 산과 숲을 다니며 수많은 연리목을 봤지만 나에게 특히 인상적인 경험은 해남 대흥사를 찾았을 때였다. 고즈넉한 산문을 지나 숲길을 걷다 들어선 산사의 마당에서 바라 본 두륜산 능선은 부처님이 누운 모습을 닮아 신비롭게 느껴 그 감응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웅전 근처에 자리한 연리목을 만나게 된다. 500년 된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서로의 굴곡을 부드럽게 받아들이며 이어져 기둥의 결이 마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끌어안고 있는 연리목이며, 심지어 땅속에서 뿌리가 서로 얽혀 하나의 생처럼 뻗어 있는 연리근이다. 뿌리는 세상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어져 있으니 그 모습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인연도 그렇지 않은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이 서로의 근원에서 이어질 때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관계가 된다.
나무들은 서로에게 닿기 위해 일부러 어느 방향으로 자라고, 바람의 방향을 묻지도 않은 채, 비바람을 함께 견딘 끝에 뿌리조차 서로를 향해 자란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까. 나무의 생애가 인간보다 훨씬 길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이어짐은 하루 이틀의 감정이나 우연일 리 없다.
말로 확인할 수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조차 연결되어 있을 때, 비로소 흔들림 없이 이어지는 인연. 대흥사의 연리근은 그 침묵의 가르침을 그대로 품고 있다.
대흥사의 연리근 앞에 서 있으면 세상의 요란함이 가라앉는다. 뿌리의 기척이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듯 두 나무가 주고받았을 세월의 속삭임이 조용히 울려온다.
연리목은 오래전부터 문학 속에서 애틋한 관계의 은유로 등장한다. 죽어서도 서로를 떠나지 못해 나무로 환생해 한 줄기로 이어졌다는 전설도 남아 있다.
당대의 시인들은 사랑과 우정을 연리지로 노래했고, 그 형상을 빌려 마음을 적었다.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보여주는 방식은 때로는 단순하지만 깊다.
바람을 견디기 위해 서로에게 기대고 비를 견디기 위해 뿌리를 더 깊이 내리는 일에서 우리는 배운다.
연리지는 누군가 먼저 상대를 향해 기울어야만 생겨난다. 기울지 않으면 가지가 닿을 수 없고 닿지 않으면 상처도 결합도 일어나지 않는다. 살다 보면 마음이 흔들리고 관계가 불편해질 때가 있다. 그때 조금 더 기울어 보는 작은 용기가 필요하지만 쉽지가 않은 게 인간사다.
연리목이 우리에게 말한다. “먼저 다가가라. 그리고 시간을 견뎌라. 그러면 언젠가 서로를 통해 자라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연리목을 보며 관계의 속도를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잠시의 감정에 휘둘리고 잠시의 오해로 관계를 놓쳐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무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계절마다 상처를 단단하게 덧붙이고 해마다 조금씩 상대에게 더 다가간다.
연리목은 자연이 우리에게 남겨둔 조용한 기적이다. 두 생이 서로에게 기울고, 상처를 나누고, 결국 하나의 결로 살아가는 풍경. 사람들의 인연도 이와 닮았으면 좋겠다.
바람이 불면 서로를 지탱해 주고, 비가 오면 뿌리를 더 깊이 내리며, 끝내는 하나의 숲을 이뤄내는 관계를 소망해 본다.
두 생이 서로에게 기대어 완성한 그 풍경 앞에 서서 우리 삶의 인연들도 조금 더 따뜻해지고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으리라 믿고 싶다.
삶은 결국 혼자 견디는 숲길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러나 나무들은 그런 숲길에서도 서로를 놓지 않는다. 상처가 상처를 잇고, 어둠이 어둠을 감싸며 하나의 생을 만든다.
몸을 가까이 두지 않아도, 말을 하지 않아도, 삶의 어떤 지점에서 두 존재가 서로를 통해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믿음.
연리목은 그 믿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