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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산의 원만한 대중생활(20)

성운대사 지음
조은자 옮김



자원봉사자 관리


불광산이 50년 동안 성장해 올 수 있었고 홍법 사업이 전 세계로 퍼질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저는 수많은 인연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가운데 가장 감사해야 하는 곳이 바로 의공(義工, 자원봉사자)입니다. 특히 50년 전에는 ‘의공義工’이란 단어가 없었지만, 불광산을 창건한 뒤 일부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와 도와주었기에 저는 그들을 ‘의공’이라 존칭해 불렀습니다.
‘의공’이란 명칭이 발표된 뒤, 불광산 본산과 각 말사는 많은 신도가 각종 사무와 법무에 참여해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현재 불광산의 의공은 전 세계에 대략 잡아도 만 명이 넘을 것이며, 본산에 등록된 수만 해도 3천 명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단의 인원수와 비교해도 엄청 많은 숫자입니다. 그러므로 의공을 관리하고 돌보는 방면에서 그들과 협조할 수 있는 이른바 ‘의공을 위한 의공’인 사람은 반드시 강건하고 유능해야 합니다. 이런 인재는 얻기 쉽지 않습니다.
과거의 승단은 대중을 중요시 여겼지만, 일반인의 성격은 자기 한 몸만을 생각하고 자신만 잘 관리하지 타인과의 행동에 참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불교는 조직적인 것을 중시하지 않고, 인사도 인연을 따라 온다면 오라하고, 간다면 가라했습니다. 이른바 “사찰은 강철같이 머물러 있으나, 승려는 물 흐르듯 흘러간다”고 하듯이 인사관리를 크게 중시하지 않았지만, 오늘날 이처럼 방대한 의공을 어떻게 운영해야 합당할까요?
어느 때는 의공을 청해 불광산에 오신 손님에게 차를 따르는 봉사를 시키지만, 한꺼번에 많은 손님이 찾아오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또는 의공에게 손님 접대를 맡기면서 관람객을 이끌고 참관을 도와주며 설명해 주라 하지만, 한꺼번에 많은 신도가 불광산에 오지는 않습니다. 불광산 50년 동안 의공 관리에 제가 바빠 챙기지 못해 부당한 처사가 있을 수도 있고, 세심하지 못했던 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교수께서 발심하여 의공을 하러 오셨는데, 불광산의 담당 관리자가 적합하지 못한 곳에 업무 분배를 해서, 그에게 화장실 청소와 마당 청소를 시켰습니다. 장군이 퇴역한 뒤 의공을 하러 왔는데, 그에게 꽃에 물주고 셔틀버스를 운전하라고 시켰습니다. 사실 “사람은 그 재능을 최대한 활용하고, 물건은 그 쓰임을 최대한 활용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는 해내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원래 부처님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오신 수많은 의공들께서는 일의 내용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제가 타이베이 도량에 있을 때, 신도들이 방문하거나 채식식사 예약 단체손님이 있었습니다. 50~100명의 단체손님이 오면 항상 20~30명의 의공이 접대하며 차 나르기·물 따르기·테이블 플레이팅 등을 도와주었습니다. 의공을 맡은 장엄하면서도 시원시원한 수많은 여성 불자님들은 대부분 회장님과 사장님의 부인들입니다. 그들은 집에 가면 그들 대신 밥하고, 차 따라주고, 물 따라주는 등 시중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부인들께서 타인을 위해 사찰에서 의공을 하며 봉사의 환희도 느끼고 일의 희열도 느끼겠지만, 그래도 개인의 장기와 신분에 맞게 적절한 의공을 하도록 분류해야 마땅합니다.
예를 들면 포교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 문화와 글쓰기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 단강사가 되어 선강할 수 있는 사람, 각종 법좌회法座會와 좌담회를 주재할 수 있는 사람, 각종 사회교육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공이라 해서 반드시 차를 다루고 물을 따르는 것만 하는 것은 아니며, 승단 내의 각 업무의 필요에 맞춰 그들에게 지도자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불광산의 의공 단체는 과거 50년 동안 매우 느슨하여 부처님의 광명에 의지하고, 불법의 신앙이란 인연에 의지해 대중을 결속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의공에게도 종류를 나누고 등급을 나누어야 하며 업무의 단계도 구분 지어야 합니다. 의공은 직업이 아닙니다. 누구는 일주일에 반나절 또는 하루를 올 수 있고, 누구는 일주일·이틀·삼일을 올 수도 있는 것처럼 시간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그밖에 업무의 필요성 면에서 본산의 업무와도 조화롭게 운영해야 하며, 필요할 때는 전원이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도 있어야 하고, 필요 없을 때는 불광산에서 독서 연구하며 자신의 신심과 덕성을 증진하여야 합니다. 노동을 하는 것만이 의공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열독閱讀 수행이나 선정 법당에서 자신의 내면과 역량을 채우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의공의 관리에 대해 제 개인적인 이상이 약간 있습니다. 애당초 부처님께서 의공의 조사가 되십니다. 관세음보살께서 고난에서 구해주시고, 도처에 인연 따라 나투시며 중생을 독려하시는 것 역시 위대한 의공 활동입니다. 심지어 지장보살께서 또한 지옥에 가서 고난의 형벌을 받고 있는 수많은 이를 구제해 주시는 것 역시 자비의 봉사입니다.
앞으로 50년 동안 의공의 관리에 대해 저는 불광산이 의공에게 특별히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찰에 대한 그들의 공헌에 감사해야 하고, 그들에 대한 합리적인 보살핌도 있어야 의공이 정상적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