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23년

      2023년 01월호
      2023년 02월호
      2023년 03월호
      2023년 04월호
      2023년 05월호
      2023년 06월호
      2023년 07월호
      2023년 08월호
      2023년 09월호

2022년

      2022년 01월호
      2022년 02월호
      2022년 03월호
      2022년 04월호
      2022년 05월호
      2022년 06월호
      2022년 07월호
      2022년 08월호
      2022년 09월호
      2022년 10월호
      2022년 11월호
      2022년 12월호

2021년

      2021년 01월호
      2021년 02월호
      2021년 03월호
      2021년 04월호
      2021년 05월호
      2021년 06월호
      2021년 07월호
      2021년 08월호
      2021년 09월호
      2021년 10월호
      2021년 11월호
      2021년 12월호

2020년

      2020년 01월호
      2020년 02월호
      2020년 03월호
      2020년 04월호
      2020년 05월호
      2020년 06월호
      2020년 07월호
      2020년 08월호
      2020년 09월호
      2020년 10월호
      2020년 11월호
      2020년 12월호

2019년

      2019년 01월호
      2019년 02월호
      2019년 03월호
      2019년 04월호
      2019년 05월호
      2019년 06월호
      2019년 07월호
      2019년 08월호
      2019년 09월호
      2019년 10월호
      2019년 11월호
      2019년 12월호

2018년

      2018년 01월호
      2018년 02월호
      2018년 03월호
      2018년 04월호
      2018년 05월호
      2018년 06월호
      2018년 07월호
      2018년 08월호
      2018년 09월호
      2018년 10월호
      2018년 11월호
      2018년 12월호

2017년

      2017년 01월호
      2017년 02월호
      2017년 03월호
      2017년 04월호
      2017년 05월호
      2017년 06월호
      2017년 07월호
      2017년 08월호
      2017년 09월호
      2017년 10월호
      2017년 11월호
      2017년 12월호

2016년

      2016년 01월호
      2016년 02월호
      2016년 03월호
      2016년 04월호
      2016년 05월호
      2016년 06월호
      2016년 07월호
      2016년 08월호
      2016년 09월호
      2016년 10월호
      2016년 11월호
      2016년 12월호

2015년

      2015년 01월호
      2015년 02월호
      2015년 03월호
      2015년 04월호
      2015년 05월호
      2015년 06월호
      2015년 07월호
      2015년 08월호
      2015년 09월호
      2015년 10월호
      2015년 11월호
      2015년 12월호

2014년

      2014년 01월호
      2014년 02월호
      2014년 03월호
      2014년 04월호
      2014년 05월호
      2014년 06월호
      2014년 07월호
      2014년 08월호
      2014년 09월호
      2014년 10월호
      2014년 11월호
      2014년 12월호

2013년

      2013년 01월호
      2013년 02월호
      2013년 03월호
      2013년 04월호
      2013년 05월호
      2013년 06월호
      2013년 07월호
      2013년 08월호
      2013년 09월호
      2013년 10월호
      2013년 11월호
      2013년 12월호

2012년

      2012년 01월호
      2012년 02월호
      2012년 03월호
      2012년 04월호
      2012년 05월호
      2012년 06월호
      2012년 07월호
      2012년 08월호
      2012년 09월호
      2012년 10월호
      2012년 11월호
      2012년 12월호

2011년

      2011년 01월호
      2011년 02월호
      2011년 03월호
      2011년 04월호
      2011년 05월호
      2011년 06월호
      2011년 07월호
      2011년 08월호
      2011년 09월호
      2011년 10월호
      2011년 11월호
      2011년 12월호

2010년

      2010년 01월호
      2010년 02월호
      2010년 03월호
      2010년 04월호
      2010년 05월호
      2010년 06월호
      2010년 07월호
      2010년 08월호
      2010년 09월호
      2010년 10월호
      2010년 11월호
      2010년 12월호

2009년

      2009년 01월호
      2009년 02월호
      2009년 03월호
      2009년 04월호
      2009년 05월호
      2009년 06월호
      2009년 07월호
      2009년 08월호
      2009년 09월호
      2009년 10월호
      2009년 11월호
      2009년 12월호

2008년

      2008년 01월호
      2008년 02월호
      2008년 03월호
      2008년 04월호
      2008년 05월호
      2008년 06월호
      2008년 07월호
      2008년 08월호

2007년

      2007년 09월호
      2007년 10월호
      2007년 11월호
      2007년 12월호
인간불교의 청사진(6)

성운星雲 스님
대만 불광산사 개산조


<지난호에 이어서>


5. 사회관社會觀 : 군아지도群我之道


인간은 공동체 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가정, 학교, 사회 어디에 몸담고 있든 무리와의 접촉을 피할 수 없다. 현대인들에게 처세의 중요한 고리가 되는 것이 인간관계이다. 무리 가운데에서 인간관계가 조화롭지 못하면 수많은 번뇌와 괴로움이 생겨난다.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고, ‘자신’을 어떻게 수행하고 다듬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자타自他를 지나치게 분별하고 차별하는 데서 분쟁이 생겨난다.
사실 나와 타인의 관계는 인연에 의해 맺어지고 지속된다. 선한 인연은 선한 과보를 얻고, 악한 인연은 악한 업보를 불러온다. 이런 인간관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함께해도 결과가 없고, 도리어 타인이 나보다 지위가 높거나 더 많이 가진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래서 늘 비교하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빼앗으려 한다. 결국 다른 사람을 이겨야지만 적성이 풀린다. 사람에게 비교하는 마음과 자타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마음이 생기면 아무리 친한 가족이나 사랑하는 부부라도 다툼을 뿌리칠 수가 없다.
불교 승단僧團 자체가 본래 하나의 ‘사회’이다. ‘승가僧伽’의 뜻은 ‘화합중和合衆’이다. ‘화합중’이란 ‘교단생활을 하는 화합한 대중’이란 의미이다. 부처님은 홀로 수행하는 것을 중시하셨지만, 또한 승단을 세우심으로써 불교 역시 ‘무리와 나(群我)’의 관계를 중시함을 드러내셨다.
불가佛家에서는 “총림은 무사無事를 융성함으로 삼는다”고 한다. 서로 화목하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삼귀의문三歸依文」에는 “스님께 귀의합니다. 원하옵건대 중생과 더불어 대중을 통리統理하며 일체 경계에 걸림이 없게 하소서”라는 글귀가 있다. 여기서 ‘대중을 통리하고(統理大衆)’란 말은 ‘인화人和’ 두 글자로 집약된다.
승단에서는 평소 『육화경六和敬』(불교에서 교단의 화합을 위하여 설정한 여섯 가지 계율)에 의거해 인사人事의 화합을 긴밀히 유지하고 있다. 즉 몸으로 화합함이니 같이 살라(예법에 맞게 행동하라), 입으로 화합함이니 다투지 말라(말을 조심하라), 계로 화합함이니 함께 기뻐하라(선한 마음으로 교류하라), 계로 화합함이니 함께 존중하라(제도를 평등하게 하라), 이익으로 화합함이니 균등하게 나누라(경제적으로 균등하게 하라) 등이다. 이를 일러 ‘육화승단六和僧團’이라 말한다.
『아미타경阿彌陀經』에서는 서방극락정토는 “훌륭하신 보살들이 모두 함께 모이는 곳”이라 말한다. 이렇기 때문에 화목하다. 화목이 곧 정토이다. 온 가족이 서로 화목하면 온 가족이 항상 즐겁고, 온 마을이 화목하면 온 마을이 평안하다. 이밖에도 공리公理에 깊이 심취한 해공제일 解空第一 수보리須菩提가 증득한 ‘무쟁삼매無諍三昧’, 계율학 측면을 칠멸쟁법七滅諍法이 모두 승단의 화합을 도모하는 규범이다.
불교는 사람을 근본으로 하는 종교이다. 무릇 인간의 삶에 나타나는 각종 문제는 불법 안에서 모두 원만하게 해결할 방법이 있다. 타인과의 시시비비에 대해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는 4가지 처리 방법을 열거하고 있다. “타인을 비방하지 않고, 또 옳고 그름을 보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의 몸으로 짓는 행을 돌아보고, 바르고 그릇됨을 자세히 살핀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명성을 얻기를 바란다. 그러나 지나치게 높은 명성을 탐해 남을 비방하고 남의 장·단점을 떠들어대면 악연을 맺기 쉽고, 후덕함을 잃어버려 오히려 악명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육바라밀다경六波羅蜜多經』에서는 좋은 명성을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다음을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타인의 잘못을 말하지 말고, 자신의 덕을 입에 올리지 말라. 지혜로 나와 남의 구별 없이 두루 비추면 큰 명칭名稱을 얻으리라”이다.
『출요경出曜經』에서는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려 하면 원한은 끝내 그치지 않으리라”고 하였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원한은 끝나지 않는다. 원한을 덕으로 갚아야 모든 원한의 근본부터 끝낼 수 있다.
데바닷타(提婆達多)는 늘 부처님과 맞서고 여러 차례 부처님께 해코지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데바닷타는 의원조차 손을 쓸 수 없는 병에 걸렸지만, 부처님은 직접 그를 찾아가 무한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부처님의 의로운 행동은 『육바라밀다경』에서 말하는 ‘남의 악행 생각 말고, 항상 선한 일 생각하며, 지혜로써 분별을 멀리하면 사람 가운데 으뜸이 된다’에 해당된다.
세간에 사는 우리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위대하기를 바란다. 승부욕이 있어 다툼도 끊이지 않는다. 이는 『법구경法句經』에서 말한 “이기면 원한을 품는 이가 생기고, 지면 자신이 비굴해진다. 이기고 진다는 승부욕을 버리면 다툼이 없어 절로 편안하다”와 일맥상통한다. 상대의 출중한 점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마음씀씀이를 가지면 삿된 기운은 상서롭고 평온하게 바뀔 수 있다.
보통 사람은 타인의 빈곤을 생각지도 않고, 항상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걸 소유하길 바란다. 항상 즐거움만을 추구하고 힘들고 괴로운 일은 비껴가길 바라며 타인의 고통은 생각지도 않는다. 공功을 탐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병폐이자 분쟁의 원인이다. “설령 무서운 사람이 도리에 맞지 않게 비방을 일삼더라도, 지혜로운 이는 진실한 말로 참아 넘겨 능히 제거한다(『제법집요경諸法集要經』)”라는 말처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잘못과 단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면 자타가 다툼 없이 화목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상부상조의 정신을 항상 부르짖는다. 이웃 간에는 서로 도와가며 친족처럼 두터운 정을 나누고, 독거노인에게는 직접 찾아가 말동무도 해주며 관심과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 불교의 『대보적경大寶積經』에서도 “재가보살在家菩薩이 촌락에 있거나 성읍이나 군현郡縣에 있으면서 사람이 많이 있는 가운데에 머무르면 그 머무는 곳에서 대중을 위하여 법을 설한다. 믿지 않는 중생은 믿도록 권하여 인도하고, 효도를 하지 않는 중생은…… 효도하길 권한다. 견문이 적은 이는 건문을 넓히도록 권하고, 인색한 자는 보시하기를 권하며, 계율을 어긴 자에게는 정진하기를 권하고, 생각이 산란한 자에게는 선정 닦기를 권하며, 지혜가 없는 자에게는 지혜 쌓기를 권할 것이요, 가난한 자에게는 재물을 주고, 병든 자에게는 약을 베풀며, 보호할 이가 없는 자에게는 보호자가 되어주고, 돌아갈 데가 없는 자에게는 돌아갈 데가 되어주며, 의지처가 없는 자에게는 의지처가 되어준다”라고 했다.
단체 안에서도 능력 있는 사람은 조직의 화합을 위해 대부분 애를 쓰지만, 능력 없는 사람은 도리어 분쟁을 일으키기 쉽다. 사람 사이에서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받아들여 존중하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조화롭고 화목할 수 있다.
『화엄경華嚴經』에는 “사섭법四攝法을 설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조화롭게 이어나가기 위한 가장 좋은 법문은 사섭법의 실천이다. 사섭법이란 기꺼이 베풀어주는 보시布施,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을 하는 애어愛語, 남에게 이익이 되게 하는 이행利行, 남의 일도 내 일처럼 여기는 동사同事이다. 보시는 금전이든 재물이든, 또는 힘이나 말이든 타인에게 기쁨을 주고 서로에게 유익하면 된다.
타인을 칭찬하고 타인에게 유익한 일을 하며, 너와 내가 동등한 지위임을 보여주는 것이 함께 일하며 서로 잘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에게 항상 널리 선한 인연을 맺으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신의를 저버리지 말라는 의미이다. 또한 타인에게 편리함을 많이 베풀라는 것은 타인에게 편의를 베푸는 것이 곧 나에게 베푸는 것이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기꺼운 마음으로 그가 나와 교류하기 때문이다.
자타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한몸이자 인연으로 얽힌 존재이다. 사람은 그저 세간의 반쪽에 해당된다. 그나마 삼분의 일일 수도 있다. 이 세상에는 ‘나’ 외에도 ‘너’가 있고, ‘너’ 외에도 ‘그’가 있다. ‘너’와 ‘나’, 그리고 ‘그’를 제외하고도 이 세상에는 우리와 늘 마주하는 주변의 온갖 사람들이 있다.
사람 사이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서로 돕는 것 또한 커다란 복이다. 서로 시기하고 비방할 때의 괴로움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사람 사이에서 서로 존중하고 포옹하며 이해하고 돕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한 쪽이 다른 쪽을 이해하지 못하면 타인과 나 사이에는 반드시 문제가 생겨난다.
어쨌든 사람에게 분쟁과 불평등이 생겨나는 것은 ‘너’와 ‘나’ 사이가 조화롭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화목하고 사이좋은 인간관계를 원한다면 ‘너’를 ‘나’로 여기는 길밖에 없다. 너와 나는 둘이 아닌 한몸이다. 서로의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는 것이 군중 속에서 화목하게 지내는 방법이다.


6. 충효관忠孝觀 : 입신지도立身之道


옛말에 ‘충신은 효자 가문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신하라면 반드시 부모에게도 효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 도리를 깨우친 사람이어야만 국가에 충성할 수 있다. 충효는 제가濟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근본이다. 「청년수칙靑年守則」 제1조가 “충용忠勇은 애국의 근본이다”이며, 제2조는 “효순孝順은 제가齊家의 근본이다”이다.
수천 년을 이어져 온 중국의 역사와 문화는 백성이 충과 효를 다하도록 이끄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어느 집안에서 충신이나 효자가 한 사람 나왔다 하면 마을 전체가 비할 수 없는 영광으로 여겼다. 반대로 역적으로 불효자는 모든 사람의 멸시와 질타를 받고 사회에서 제대로 된 사람 노릇하기도 힘들었다.
과거에 일반 사람들은 불교를, 출가해서 은둔하거나 속세를 벗어나는 종교라고 생각해 충효의 본분에 충실할 수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불교는 유교와 마찬가지로 인륜과 도덕을 무척 중시하며, 충효의 실천에 더더욱 중점을 둔다.
『정명경관중석초淨名經關中釋抄』에서는 “충은 임금을 사랑하는 것이고, 효는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석씨요람釋氏要覽』에서는 “나라엔 군왕이 있어 일체를 보호하고 편안케 한다. 이런 까닭에 사람의 왕은 일체 중생을 안락하게 하는 근본이 된다. 집에 있으나 출가를 하나 정성된 마음과 도덕적 도리를 잘 살피면 모두가 바른 국가에 의지하여 바르게 지탱하고 교화를 텨 세간에 널리 퍼진다. 만약 군왕의 힘이 없으면 공행功行을 이루지 못하고 법이 없어져 많지 않으니, 하물며 능히 이롭게 하고 제도함이랴!”라고 하였다.
『심지관경心地觀經』에서는 세간에 네 가지 큰 은혜가 있으니, 마땅히 아침저녁으로 회향하고 복을 기원해야 한다고 했다. 네 가지 큰 은혜란 “첫째 부모의 은혜, 둘째 중생의 은혜, 셋째 국왕의 은혜, 넷째 삼보의 은혜”이다. 이 가운데 국왕의 은혜란 국가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