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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하는 마음이 곧 행복한 삶입니다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배려하는 마음이 곧 행복한 삶입니다.


불교에서는 보시布施와 공양供養과 시주施主에 대해서 많이 강조합니다.
나눠보면 재물을 베푸는 물질보시와 근심걱정과 두려움을 덜어주는 무외시無畏施, 법을 베풀어 주는 법보시法布施입니다. 그 중에 법공양은 『화엄경華嚴經』에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 공양,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공양, 중생들을 거두어주는 공양, 중생들의 고통을 대신해 공양, 선근을 닦는 공양, 보살의 할 일을 버리지 않는 공양, 보리심을 여의지 않는 공양”이라 합니다.
법공양은 흔히 경전을 간행하여 유포하는 것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경전에 의하면 법공양이 가장 으뜸인 것은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고,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중생들을 거두어 주고, 중생의 고통과 아픔을 대신하여주고, 선근을 바탕으로 보리장양菩提長養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보살의 할 일을 버리지 않는 것, 보리심을 여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번뇌 망상은 저절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심三毒心이 없으면 근심과 걱정, 고통과 괴로움은 저절로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조정래 작가는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불행을 느끼지 않을 때가 바로 행복한 때라고 대답합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불행한 때보다 행복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탐욕은 늘 저 먼 데를 보고 있어서 바로 눈앞에 있는 행복을 못 보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불행하지 않을 때가 바로 행복한 때입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나의 마음이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을 때가 행복할 때입니다. 어둡지 않을 때가 밝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네 잎 클로버를 행운이라고 합니다. 야외에 나가서 클로버를 보게 되면 네 잎의 클로버를 찾으려고 합니다. 네 잎 클로버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지천에 널려있는 세 잎의 클로버는 관심이 없고 굳이 네 잎 클로버만 찾으려고 애를 쓰는 것일까요? 세 잎 클로버의 상징은 행복이라 합니다. 그리고 들판에 널려있는데, 행운만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 것일까요?
주위에 많이 있는 세 잎 클로버는 신경 쓰지도 않으면서 네 잎 클로버만 찾으려는 몸짓을 보면서 우리 인간의 심리상태가 참 묘하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생각하는 견해에 따라서 우리들은 가까이 있는 행복은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살아가기가 일쑤입니다. 법보시와 법공양도 마찬가지입니다.
북인도 히말라야에서 초겔 스님이 업무 차 구룡사를 방문하였습니다.
초겔은 라닥크병원에서 소중하고 값진 보살행을 하고 있는 스님입니다.
해발고도 3,500~4,000m에 있는 라닥크는 겨울에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오지입니다. 스님은 그곳에서 유럽 쪽 여러 나라와 인연을 맺으며 심장재단을 설립하고 큰 병원을 운영하며 어렵고 힘든 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달라이라마존자님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라닥크 레이에 다녀가시는데, 그때마다 병원에 환자들을 살펴보시며 근무자들을 격려하시고 가실 때마다 세계인들이 모아준 성금을 병원에 전달하신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구룡사는 스님의 약왕보살 행원에 깊은 인연을 맺고 물질적인 보시에도 동참을 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의 홍석현 회장이 쓴 글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에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습니다.
저는 어떤 인연을 만나서 어떤 꽃으로 피어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되는 걸 많이 보았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그런 인연 속에서 자신의 향기를 피워 올릴 줄 알게 된 사람들입니다.”


며칠 전 총무원장스님은 홍석현 회장과 점심공양을 하시면서 나누시는 대화중에 잊혀지지 않는 말씀들이 있었습니다.


“소통이 잘 되는 사람하고  나누는 대화는 대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소통되지 않는 사람과 나누는 것이 대화라고 생각 합니다, 진보니 보수니, 좌니 우니 하는 사람들은 성
격도 다르고 사상과 이념도 다른 것들을 서로 소통하고자 나누는 것을 대화 라 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무척 공감하였습니다.
부처님과 가섭존자는 말없이 주고받은 대화를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 합니다.
가족이나 도반들도 서로 통하는 이들은 말이 필요 없다고들 합니다만, 우리는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만 대화하려 들지 말고 얽매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공부로, 관심과 배려로 어울리며 서로 미움은 줄여가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모든 이들을 따뜻하게 대해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진정한 만남은 대화의 나눔이 소중한 인연으로 만나는 이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나아가서는 대화가 끊어진 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따뜻함을 주며 미소를 지었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모두에게 자비로움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만큼 비극적이고 슬픈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살아갔으면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고 근심걱정이나 고통과 괴로움은 싫어합니다. 
싫어하는 그 마음이 중생심衆生心입니다. 보살은 어느 곳에 있어도 보리심을 잃지 않고 환희법열의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한 삶이 보살행원입니다.
싫어하는 마음,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는 마음이 중생심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희생해야 남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남을 도울 때 가장 덕을 보는 것은 자기 자신임을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남을 돕게 되면 내 내면에서부터 기쁨과 환희심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행복을 얻는 것도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다른 이에게 베풀어 본 사람들은 그것을 압니다.”
-달라이라마-


누군가 나에게 따뜻하게 베풀어 주는 걸 보면서 좋은 생각이 들었다면 나도 다른 이에게 따뜻함을 베풀면 그 역시도 기쁜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받는 것은 기쁨의 씨앗이고, 주는 것은 열매와 같은 보람이요 즐거움입니다.
행복한 삶으로 가는 최선의 길은 남을 돕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합니다.
어렵고 힘든 이에게 물질적으로만 안겨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대해주고 온화한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전합니다.


“수행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의 완성이다
그것은 죽음의 가치를 진정한 삶의 가치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이다.”


수행은 그 어디에도 치우치거나 얽매이거나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염불할 때는 염불하고, 기도할 때에는 기도하고, 절할 때는 절하고, 참선할 때는 참선하고, 일할 때에는 일하고, 봉사할 때는 봉사하자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일들은 변별력으로 판단하게 하는 것을 수행이라고 합니다.
변별력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보리심이 있어야 합니다. 지혜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보리심과 지혜 로 움 으로 흐트러짐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제 산 것처럼 오늘을 살려 고 하지 말고, 오늘 산 것처럼 내일로 이어가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제보다는 오늘을 더 열심히, 오늘 보다는 내일을 더 열심히 건강하게 노력하는 힘찬 모습이 신심이요 생명력 있는 보살입니다.
신심과 생명력을 잃어버리지 않는 불자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