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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의 의미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偈頌에,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요
삼계개고三界皆苦하니 아당안지我當安之하리라.
하늘 위 하늘 아래 우리 모두는 존귀하도다.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삼계가
모두 고통과 괴로움 속에 있으니
내가 마땅히 편하게 하리라.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폭으로 그린 팔상도八相圖에 보면, 석가여래부처님은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녹야전법상鹿野轉法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전생에 인욕보살忍辱菩薩로 현현하기도 하셨지만, 수없는 세월 속에 억겁천생을 수행자의 길을 걸으며 도솔천兜率天 내원궁內院宮에 호명보살護明菩薩로 계시다 삼계三界 사생육도四生六道 칠취七聚의 사바세계 중생들이 힘들고 어려움을 목격하시고 가비라국 룸비니동산에서 이 땅에 출현하셨습니다. 훗날 석가여래부처님이 되신 구담瞿曇, 고타마(Gautama) 싯다르타(Siddh.rtha) 태자이십니다.
룸비니 동산은 외할머니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지명地名입니다. 그 룸비니 동산을 1982년도에 혼자 순례한 적이 있습니다. 새벽녘에 살포시 잠에서 깨어보니 수백만 평의 숲속에서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글로 표현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감동이 얼마나 컸던지 며칠을 적어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말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러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어 갈무리를 하는 끝맺음을, ‘룸비니 동산은 룸비니 동산은 룸비니 동산이었다.’이었습니다. 그렇게 끝맺음을 하고나니 머리도 맑아지고 가슴도 뻥 뚫린 듯 시원하고 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처럼 룸비니 동산의 대평원은 평화스러운 모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열반경涅槃經』에 이르기를, ‘인생난득人生難得이요 불법난봉佛法難逢이라’ 하였습니다.
부처님 세상 만나기 어렵고, 부처님 법 듣기 어렵고, 두려운 마음 일으키기 어렵고, 좋은 나라에 태어나기 어렵고,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모든 기관이 구족하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달라이라마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무리 몸이 편안해도 정신적으로 편안하지 않으면 행복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없다. 마음이 편안해야 몸도 마음도 편안해진다.’
그러니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육체적으로는 고단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면 고달픈 인생만은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육체적으로는 편안하고, 육체적으로는 넉넉하고, 많은 것을 가지고 살지만 정신은 피폐하여 고달픈 인생을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저는 다음 생에는 티베트로 가서 태어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티베트로 가서 고적한 삶을 살면서 출가자의 길을 걷고자 합니다. 그곳은 척박한 땅일 지라도 행복할 것입니다.
부처님 세상을 만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계 각국, 이 나라 저 나라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달되어 있습니다. 불교를 신행信行하는 곳에는 경전들이 있습니다.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는데, 뜻이 어그러지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걸 보면 2500년이라는 시간을 결코 길게 생각할 일만은 아닙니다. 부처님 세상을 만나기가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단지 올바른 생각으로 흔들림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바른 법을 듣기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른 법속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은 인과를 믿고 윤회를 부정하지 않는 생활이어야 할 것입니다.
인과를 믿고 윤회를 부정하지 않는 사람은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그 이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절대로 함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좋은 나라에 태어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금수강산에 살고 있습니다. 70여년 만에 남북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평화분위기가 조성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나라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이제는 주머니를 풀고 나눌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과를 믿고 윤회를 부정하지 않으며 부처님 법대로 살아가는 불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사람 몸 받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누워 지내는 것 보다는 휠체어라도 타세요. 그리고 바깥세상으로 나오세요. 또 휠체어 타는 것 보다는 지팡이라도 짚고 걸으세요. 뛰어 다니던 젊은 시절만 생각하며 불평만 하지 말고 걸을 수 있을 때 걸으세요. 시속 100킬로로만 운전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골목길이나 자갈길에서는 천천히 다닐 수도 있습니다.
모든 기관이 한결같기는 쉽지 않습니다. 젊음과 건강과 목숨이 한결같지는 않지만 젊음과 건강과 목숨은 그 나이, 그 연배에 맞는 수순을 찾아가면서 세상살이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참 지혜입니다.


“부처님오신날
꽃보라 휘날리는 룸비니 동산
한줄기 찬란한 빛이 우주를 덮고
거룩한 싯다르타 태자 탄생하실 때
천상천하유아독존 큰소리로 온누리에 퍼지네.
사뿐 사뿐한 발자국 마다 내비치는 연잎
태양보다 밝은 등 높이 드옵시고
사생四生의 모든 고난 녹여주신 님
이 세상에 오신 날 사월초파일.”


부처님은 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외갓집 가는 길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29살에 출가 이후 6년 동안 수없는 선지식을 찾아다니면서 고행, 난행, 수행하셨던 것도 길에서 길로 이어져 있습니다.
부다가야 보리수 밑에서 정각을 이루신 것도 길가였고 45년 동안 전법을 펼치신 것도 길에서 길로, 길에서 길로 이어지셨습니다.
그리고 80에 구시나가라 사라쌍수 밑에서 태어나셨던 룸비니동산을 향해 열반에 드신 것도 길가였습니다. 그렇게 종초지말從初至末 부처님은 길에서 길로, 길로 다니면서 평생을 그렇게 사시다가 열반에 드신 것입니다.
부처님은 전법의 길을 걷기 위해서 그렇게 다니셨습니다. 전기도 없던 시절이니 낮에는 법문을 하시고 다음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저녁이 덜 덥기 때문에 밤길을 택해서 이동을 자주 하셨습니다. 부처님이 가시는 길에는 밀납으로 불을 밝혀, 가시는 그 길을 밝혔습니다.
그때 아주 가난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생각하기를 ‘저렇게 많은 이들이 부처님 가시는 길에 불을 밝히는 데 참 부럽다. 그런데 나는 어찌하여 이렇게도 가난하여 어떻게 해볼 수가 없구나.’
그렇게 자책하고 있다가 구걸을 해서라도 작은 등불이라도 하나 밝히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구걸하여 작고 초라한 등불을 하나 밝혔는데, 날이 훤히 밝았는데도 꺼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불들은 거의 꺼졌는데 그 작은 잔등에 있던 불은 꺼지지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아무리 끄려고 해도 꺼지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부처님께 고하자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거룩하여라. 참으로 거룩하여라. 많은 복을 짓고 있구나.”


그 모습은 오늘의 연등공양이고 사월초파일 연등불을 밝힘입니다.
부처님오신날 전후로 불교와 인연 맺는 분들이 가장 많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가까이에 있는 분들에게, 그동안 인연이 닿지 않아서 절에 오지 못했던 분들에게, 인연을 맺을 수 있는 불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동쪽에 기운 나무 동쪽으로 쓰러지듯, 불교와 인연을 맺어서 부처님 품안에서 따뜻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함께 동참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