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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불교의 청사진(21)

성운星雲 스님
대만 불광산사 개산조


<지난호에 이어서>
『법구비유경』에는 군왕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다섯 가지 일을 열거하고 있다. “만백성을 다스리되 억울한 일이 없게 하고, 장수와 선비를 육성하되 시기에 맞게 공급하며, 근본 업을 닦아 복덕이 끊이지 않게 하도, 충신의 정직한 충고를 믿되 참소하는 말을 받아들여 정직함을 해치지 않으며, 쾌락을 탐하는 욕심을 억제하여 마음이 방탕하지 않게 한다.”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에서는 “친하건 친하지 않건 평등하게 일체를 보라. 만일 바른 법의 왕이 되면 나라 안에 편당偏黨이 없고, 법왕의 명성이 삼계三界 가운데에 널리 퍼진다”라고 하였다.
불교의 교위와 승려의 행의行儀는 제왕의 정치 이념과 사회 화합을 이루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제왕의 권세는 불교의 포교와 세상인심을 정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진晉나라 시대의 도안道安대사는 “임금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법사를 펼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에서 장차 법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청하는 왕에게 ‘윗사람은 모범을 보이고 아랫사람은 본받으며, 마치 바람이 가는 곳으로 풀도 따라 쏠리듯, 덕으로 백성을 교화’시키는 공덕을 설하셨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세간에 계실 때 빔비사라 왕, 파사닉 왕의 호지護持를 받았기 때문에 불교가 5천축에 전파될 수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든 뒤 아쇼카 왕은 팔만 사천 개의 불사리탑을 세웠고, 스리랑카에 포교사를 파견하여 홍법을 펼쳤다.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해외로 더욱 널리 퍼지게 하였다. 동한 東漢의 명제明帝는 낭중郎中 채음蔡.을 천축에 파견하여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 등 고승을 모셔와 홍법을 펼쳤고, 이로써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었다. 중국불교의 경전번역 사업은 대부분 역대 제왕의 보호 하에 역경원이 설치되어 완성되었다. 예를 들면 후진後秦의 임금 요흥姚興의 보호를 받은 구마라집鳩摩羅什 대사는 서명각西明閣에서 역경에 전념하여 『법화경』, 『중론』 등 74부 384권의 경론은 후세에 전했다. 당 태종의 지지를 받은 현장법사는 『대반야경大般若經』 등 75부 1,335권의 경론을 번역해 법보와 부처님의 가르침이 중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현대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 정치는 불교를 수호할 힘이 있고, 불교 또한 정치를 맑고 투명하게 할 능력이 있다. 불교는 정치의 보호가 필요하다. 정치는 불교를 시기하지 말아야 한다. 본질은 버리고 껍데기만 추구하는 식으로 자선慈善만 강조하지 말고, 인심을 정화하고 사회 풍토를 개선하는 데 더욱 중점을 둬야 한다. 불교는 사회에 대한 관심, 인권의 수호, 대중의 복지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불제자는 정치를 멀리해야 고상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사적으로는 명예와 권세를 탐하지 않아야 하지만, 사회에 대한 관심과 중생에 대한 봉사의 책임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불제자는 홍법이생弘法利生을 위해 정치를 회피하는 소극적인 태도를 갖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 사회 구성원은 누구도 정치를 벗어날 수 없으므로, 불제자가 정치에 개입하지 않더라도 사회와 정치에 관심은 가져야 한다. 이른바 ‘정치를 묻기는 해도 간섭하지 않는다(問政不干治)’란 말이야말로 불제자가 정치에 대해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이다.
19. 국제관國際觀 : 포용지도包容之道
현대 과학기술의 발달로 교통과 통신이 편리해지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졌다. 현대의 전화, 인터넷, 원격조종, 이메일 등등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더욱 가깝게 연결 지어 놓았다. 21세기는 이미 ‘지구촌 시대’가 되었으며, 지구에 사는 모든 인류를 부득이 ‘한 가족’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지구촌에는 수많은 국가와 종족, 문화, 언어가 있지만, 지구촌의 발전을 저해하지는 않는다. 전 세계의 국가, 도시, 농촌은 모두 ‘지역 사회’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지역사회 안에는 수많은 가정과 서로 다른 성씨, 개성, 연령, 성별, 언어, 생활 습관, 종교 등을 가진 많은 사람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지역사회의 화합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한 지역사회에서부터 점차 지구촌 전체로 확대해 나가는 이치는 모두 같다. 사람은 먼저 가족을 사랑하고 그 다음 권속을 사랑한다. 이어 마을, 촌락, 사회, 국가까지 이어지고, 동포와 인류에서 다시 일체의 유정한 중생에게 미친다. 자기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깊이 사랑하고, 소원한 사람일수록 내줄 수 있는 사랑이 더 적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나와 인연이 없어도 자비를 내고, 다른 사람도 내 몸처럼 큰 자비를 낸다’고 말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다. 그러므로 성자와 범부의 구별이 있는 것이다.
일반인의 사랑은 인연이 있고 상相이 있는 자비이다. 특히 친소親疏, 애증愛憎, 인아人我의 구분이 있기 때문에 비교하고 따지고 들며, 그래서 결국 인아의 분쟁이 생긴다.
인간불교의 국제관國除觀은 인아의 경계선을 허물고, ‘동체공생同體共生’의 인식을 바탕으로 서로 감사하고 존중하며, 서로 평등하고 조화로우며, 다함께 번영하고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시간을 항상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로 말하고, 공간은 이쪽 세계(此方), 저쪽세계(他方), 시방(十方)의 무량세계로 말하며, 인간은 태생, 난생, 습생, 화생 등으로 역시 무량우수 無量無數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불교의 국제관에서는 시공의 경계선이 이미 말끔히 사라졌다.
『아미타경』은 “중생은 가지가지의 미묘한 꽃을 꽃바구니에 담아 다른 십만 억 불국토의 부처님께 공양 올린다”고 설하고 있다. 서로 인연을 맺고 서로 칭송하니 인간불교의 국제관이 가득한 곳이다.
『미륵보살상생경彌勒菩薩上生經』과 『미륵보살하생경彌勒菩薩下生經』에서 미륵보살은 지구의 인류와도 왕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천상과 천하는 물론 3계28천, 18층 지옥까지도 중생을 제도한다고 나와 있다.
석가모니의 전생이었던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은 어느 하나의 중생도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불교의 관세음보살은 모든 국토를 주유하며 고통과 어려움에 빠진 중생을 구하신다. 불교는 취약 집단과 낙후된 작은 나라에 대해서는 특히 더 관심을 갖는다.
불교는 식사 때 일체의 중생에게 공양한다. 쌀 한 톨을 얻더라도 항상 시방 대중의 인연에 감사해야 한다. 불교에서는 또한 평등을 주장한다. 부처님은 자식인 라훌라를 보듯 일체의 중생을 바라본다. 또한 일체 생권生權의 수호를 중시하므로 예로부터 불교는 세계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다.
누군가 말했다. 예로부터 수없이 많은 산과 강과 들판을 두루 돌아볼 수 있는 것은 군인, 행상, 탐험가, 그리고 우수행각하거나 가르침을 찾아 스승을 찾아뵈려는 승려뿐이다.
중국과 인도의 불교 교류사에는 많은 승려와 불교신자가 서역 실크로드를 따라 홀로 여행한 예가 나와 있고, 중국과 일본의 불교 교류사에도 많은 사람이 바다에서 표류한 경우도 있다. 대승경전의 “한 생각에 3천의 법계를 갖추었고, 마음에는 큰 허공을 품었다(一念三千 心包太虛)”라는 말은 제불보살이 시방세계를 자유로이 오감을 표현한다.
30년 전 타이완의 관광이 개방된 뒤로 불교신자들로 조직된 관광단체가 세계 각지의 이곳저곳을 두루 여행하고 있다. 중국과 타이완이 화해로 더 가까워진 이후 타이완의 불교신자 또한 명산의 사찰을 찾아 참배코자 중국을 밟는다.
나 또한 평생 수많은 단체를 이끌고 인도, 네팔, 미국 등지로 순례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관광여행에 대해 나는 각지의 문화를 다음 10개의 카테고리로 정한 적이 있다.
① 타이완 일주 ②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③ 한국, 일본
④ 미국, 캐나다 ⑤ 호주, 뉴질랜드 ⑥ 유럽
⑦ 러시아 ⑧ 인도 ⑨ 중국
이밖에도 불광산은 자주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고, 단체를 모집해 세계 각국을 방문했다. 심지어 바티간의 교황과 회교의 이슬람사원까지도 방문하는 등 항상 국제사회에 화합의 씨앗이 뿌려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나는 일찍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타이완이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루어 생활은 부유해졌지만 그것은 물질적인 풍요일 뿐이다. 오히려 마음과 정신의 결핍을 가져와 수많은 난상亂象과 병폐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고.
불법은 마음의 정화를 강조한다. 또한 세계가 불평등한 것은 인간에게 내재된 무명과 아집에서 기인하며, 권력과 명예를 탐하는 인류의 욕망에서 생겨난다고 본다. 탐욕에 물든 마음이 생기면 서로 충돌을 일으키고, 결국 끊임없는 다툼을 불러온다. 그러므로 불교는 세상의 어지러움을 근본부터 치료하려면 사람들의 마음부터 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생부터 마음의 평화를 실현하고, 불교의 무아·자비·존중·평화의 가르침을 실천해야만 진정한 세계 평화가 완성된다.
평화는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에도 그리워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래서 유엔은 거듭 평화를 제창해 왔다. 유교에서는 세계대동世界大同을 들어 천하태평과 화목을 기원했다. 손문 선생 역시 ‘천하위공(天下爲公: 천하는 모든 이의 것)’을 초창기 민국의 이상으로 삼았다. 불교에서는 사생구유四生九有, 법계평등法界平等의 “천하는 한집이요, 남과 나는 하나이다(天下一家 人我一如)”라는 사상으로 인간정토를 건설한다.
중국의 전통적인 겸애사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 ‘나의 부모를 공경하듯 다른 노인을 대하고, 나의 아이를 대하듯 다른 아이를 대하라’는 말이다. 불교는 인권의 수호에서 한 걸음 더 나간 ‘생권生權’의 평등까지도 중시한다. ‘중생은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다’, ‘당신은 미래의 부처다’라는 말로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공경한다. 불교는 또한 생존권의 평등을 제창하기에 자연히 국가의 경계를 넘어 천하가 한 가족이 될 수 있고, 동이同異의 다툼이 사라져 너와 내가 하나가 될 수 있다.
『화엄경수소연의초華嚴經隨疏演義秒』에는 “마음과 부처, 중생 셋은 차이가 없다(心佛衆生 三無差別)라는 말이 있다. 서로 존중, 포용, 평등, 무아無我, 자비의 실천이야말로 민족과 국가 간에 꼭 필요한 이념이다. 그러므로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함께 발전해 나가는 한가족이라는 스스로의 기대에 발맞춰 ‘중생과 부처가 평등하고, 성자와 범부가 평등하며, 본질과 현상이 평등하고, 타인과 내가 평등하다’는 사상을 제창해야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인아人我의 경계선을 없애고 지역과 나라의 경계를 타파하여 ‘공간으로는 시방세계에 두루 충만하고, 시간으로는 삼세에 마친다’라는 거시적 국제관을 저마다 가져야 한다. 또한 ‘천하는 한 가족이다’라는 마음에서 출발하여, 사람이 저마다 가슴에 법계를 품고 함께 생활하는 한 가족으로 자연을 보호하고 자원을 아낄 줄 알아야 한다.
‘타인과 내가 다르지 않다(人我一如)’라는 신념을 가지고 스스로 깨우친 뒤, 나아가 타인까지 깨우쳐 주어 자아의 생명을 승화시켜야 한다. 자신을 위해 신앙을, 중생을 위해 선한 인연을, 사회를 위해 자비를, 세계를 위해 광명을 남겨야 다함께 세계의 평화를 발전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