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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의 결정체

달라이라마
티베트 승왕


올해도 변함없이 아시아 불교도 국가의 연합으로 달라이라마의 다람살라 법회가 9월 4일부터 7일까지 4일간 다람살라 멕그로드간즈 겔룩빠 산하 남걀사원 법당에서 열렸다. 이번 법회서는 빠알리 불교를 전승하는 태국과 미얀마의 불자들의 참여가 돋보였다. 한국인 불자 400여 명을 비롯하여 총 1500여 명의 불자가 참여한 이번 법회는 붓다빨리따의 ‘중론의 주석’을 주제로 이어갔다. 올해로 17년차를 맞은 이번 한국인의 법회 일정 동안에 보청기와 돋보기 의료 봉사가 함께 진행되면서 현지 인도인과 티베트 난민의 복지를 살피는 온정의 손길이 오가기도 했다.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3세)는 법회 일정 중 5일 오전에 진행된 한국인 법회 주관 관련인과의 친견에서, 티베트 장경연구소의 성과를 격려하고 달라이라마방한추진위의 활동을 보고 받았다.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앞둔 것과 관련하여 한국불교의 정법을 수호하는 종단의 리더십의 책임감을 당부하기도 했다.
사람으로서 일생을 값지게 살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달라이라마는 말한다. 종교는 안락한 인생의 잣대가 될 수 없다고. 궁극적으로 마음을 잘 다스려 평온하다면 바깥의 다양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우리가 기쁨 속에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지녀야할 마음가짐은 무엇일까. 달라이라마의 법어에 귀를 기울여 보자.


수행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비의 발로입니다. 해외 법문 당시 프랑스의 한 수도원에서 5년의 은둔의 수행기를 거친 가톨릭의 수행자를 만났을 때를 떠올려 봅니다. 그 신부의 수행담을 듣고 눈을 바라보니 자비심으로 가득해 있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인도 망명지에서 티베트 본토에서 중국 정부 공안에 의해 수년간 고문을 당하고 난민으로 망명한 티베트인 승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투옥하는 생활이 힘들지 않았습니까?” 물었습니다. 승려가 답하기를, “감옥에서 몇 차례의 역경이 있었습니다. 제 마음에서 중국 공안에 대한 자비심을 잃게 될까 두려운 것이 큰 고행이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지금 당신 앞에 놓여 있는 고난과 역경은 무엇입니까?
우리 인간 모두는 안락을 원하고 행복을 구합니다. 마음의 평온을 위한 수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종교입니다. 저는 종교에 대해 이러한 정의를 내리곤 합니다. ‘인간 내면의 사랑과 자비를 실제로 구현하는데 활용되는 도구가 바로 종교이다.’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안과 공포의 감정이 인간 육체의 면역력을 약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는 무척 흥미롭습니다. 출생을 통해 인간이 본능적으로 지닌 사랑과 연민이 실제로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현대 과학자들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어머니의 몸을 빌려 태어나 보살핌으로 성장하는데 그 기반이 되는 것이 바로 사랑과 연민입니다. 반면 유년기에 부모와 떨어져 성장한 아이는 후에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감이나 자부심이 결핍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이 지닌 천성이 사랑과 연민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달라이라마 역시 지구 인류 70억 가운데 하나의 인간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조화롭게 어울려 평안할 수 있는 근간이 바로 사랑과 연민입니다.
저의 첫 중국 방문이 1954년도입니다. 당시에 티장린포체와 함께 마오 주석을 만났습니다. 당시에는 공식 석상의 만남에 상당히 긴장을 했었습니다. 그 이후 인도에 망명하여 전 세계의 리더들을 만나게 되고 공성 수행을 집중 수행하게 되면서 인종 종교 이념의 가치 잣대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만남으로 그 의미를 두게 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연민의 가치를 근저에 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삶을 통해 사랑과 연민을 활성화 시키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달라이라마와 여러분의 사유 체계는 차별이 없습니다. 오감의 사유 방식은 달라이라마의 것과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어제보다 상대를 신뢰할 수 있다면 다음 세대를 위한 세상은 보다 긍정적일 것입니다. 일체 중생이 행복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는 기도하는 마음, 미물일지라도 살아있는 생명체가 더불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지구의 평화로 실현될 수 있도록 의지를 모아야 하겠습니다.
더불어 종교 간의 화합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절대로 불교만이 최고의 가르침이며 최선의 종교라고 설하지 않습니다. 모든 종교는 사랑과 연민을 바탕으로 인간의 공통된 가치를 위하는 이로움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각 종교가 지닌 철학과 사상은 구별이 되지만 그 함의를 면밀히 헤아려 종교를 통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 그리고 추구되어야 하는 가치는 동일하다는 점으로 결론을 유출해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 내면의 사랑과 연민을 증폭시키는 도구로서의 종교가 되기 위하여 각 종교계의 지도자들이 함께 뜻을 모으기를 바라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