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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걸음 더 붓다에게 가까이

스승 달라이라마, 백색의 헤루까로 화현 한다.
일체가 공하니 공성의 본연한 상태를 관한다.
연화좌 일륜 제불 성현께 공양을 올린다.
감로수 가득한 붉은 보병을 양 손에 들고
일면이수 금강요기니 감로수 해골 잔을 들었네.
옴 아 훙. 빛을 보라.


달라이라마(뗀진 갸초, 84)는 예년과 변함이 없는 연례행사로 석가모니 붓다의 성도지 보드가야 대탑을 찾았다. 지난해 12월 17일 보드가야에 도착한 달라이라마는 1월 2일까지 머물며, 37보리도 수행법을 시작으로 오늘날 말세에 수행자들이 장애 없이 장수하며 수행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헤루까 관정을 내리는 것으로 한해의 법회를 마무리 했다. 야만따카의 법은 구야삼마자를 통해 인도에 두루 알려져 있지만 완성은 티베트 논사에 의해 체계적으로 적립 되었다. “동기를 바로 세우고 불법승 삼보에게 귀의하는 진실한 마음을 내라.”라고 당부한 달라이라마는, 백색의 헤루까 본존을 관상하여 허공에 헤루까를 모시고 앞에는 적색의 금강불모 요기니를 모셔 법제자를 위했다. 급작스레 달라이라마의 건강상 이유로 12월 29일 법회가 동연 취소되기도 했으나 다음 날 30일 문수보살 관정으로 모든 일정이 원만히 마무리 되었다.


오로지 이타심으로 일체 중생을 구제하는 힘을 구족해야합니다. 법신이 보현하여 화신의 모습으로 나투니 헤루까께서 세상을 헤아리는 자비의 말씀으로 일체 중생을 위하고 있음을 관합니다. 본존이 스승에게 세 가지 색의 빛으로 흡수되어 윤회와 열반의 모든 공덕을 불러 모읍니다. 여덟 꽃잎의 연꽃과 같은 형태에 세 꼭지가 있는 여의주의 형상을 한 또르마를 빚어 우측에는 감로수로 가득 채운 보병과 좌측에는 감로수로 가득 채운 해골 잔으로 장엄하여 이를 중심으로 만다라를 장엄합니다. 본존의 미간의 백색, 목에서 붉은 색, 가슴에서 푸른색의 ‘옴 아 훙’이 뻗어 나와 시방을 비추니 윤회와 열반의 모든 중생의 공덕이 세 꼭지의 여의주 또르마에 흡수됩니다.
붓다의 성도지에서 올해의 마지막 삼일간 백색 헤루까 장수 관정을 올립니다. 이 가피를 통해 이 자리에 모인 우리가 삼보를 예경하고 모든 중생을 위하겠다는 다짐을 하고자 합니다. 중생 각각이 지닌 동기를 바로 세워 정법으로 들어가도록 기원합니다. 허공계가 다 하고 중생계가 다 할 때까지 보리심만을 지향하겠다고 서원합니다. 때문에 보살의 장수를 필요로 합니다.
정작 나를 위하는 마음이 남을 위하는 보리심입니다. 불교 수행자의 원대한 목표는 성불입니다. 인간의 몸을 얻어 불법을 만났으니 용수보살의 보만론과 샨티데바의 입보리행론을 항시 유념하여 사유하고 실천하십시오. 지혜는 깨달음을 지향하고 자비는 중생을 향하십시오. 번뇌장과 실집의 습기이자 왜곡된 관념인 소지장을 끊는 경계가 바로 깨달음입니다. 붓다의 법을 듣고 이해하여 행동하는 보특가라의 마음은 매 순간 거듭하여 갈고 다듬어져야 합니다.
항시 내면의 밝은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바른 선지식을 만나야 합니다. 스승은 실천의 덕목을 일깨워 제자를 올곧게 성숙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붓다와 보살 그리고 스승은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보살피듯이 제자를 지도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과거 제불보살님께서 일깨우신 가르침을 빛으로 여겨 수지하는 기회로 삼아야겠습니다. 부디 대 공덕의 인으로 지금을 삼으십시오. 최상의 보리심을 발하여 모든 중생을 나의 귀빈으로 여겨 행하도록 하십시오. 오직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붓다에 이르도록 하소서.
입보리행론을 보면 제불 여래께서 보리심을 내어 수행을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행이란 결코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승한 단계를 통해 자량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그 궁극의 목적은 일체 중생을 열반에 이르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공성의 본연의 상태를 관하고자 합니다. 이 자리에서 금강승의 서약을 남김없이 모두 지니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백색의 헤루까 본존이 되어 적색의 금강 요기니 불모를 안은 형태를 관하는 바가 그러합니다.
‘성인인 보살은 지혜의 빛으로써 세상을 밝히셨네. 의지할 곳 없는 중생에게 연민심을 일으키셨네. 선한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붓다의 수승한 공덕을 펼치셨네.’ 
실체가 있어 고정된 것은 그 아무것도 없습니다. 때문에 항시 멸제의 도로써 수행을 이어갑니다. 입중론의 제 6장을 보면 그에 대한 깊은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세속과 진여의 색신과 법신의 불이를 양 날개로 삼아 피안에 도달해야 한다고 일깨웁니다. 보살은 연민심이 있어 중생에게 자비심을 냅니다. 때문에 서원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 기반이 바로 공성의 지혜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우리와 같이 발심을 하여 거듭된 수행을 통해 궁극의 붓다를 성취하셨습니다. 역대 선지식의 가피를 구하고자 하니 정수리의 ‘옴’ 목의 ‘아’ 가슴의 ‘훙’을 세깁니다. 제자의 몸에 흡수된 본존과 스승의 빛과 합일 하니 백해로 스민 가피는 발뒤꿈치까지 흘러 합일하여 전신의 허물이 정화됩니다. 제자의 혓바닥으로 다시 한 번 스민 가피는 구업을 정화하니 이것이 바로 공성의 본연에 이르는 비밀스러운 관정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원인과 조건에 의한 발생이니 본래 있는 고정불변하는 그 무엇이 아님을 숙지하십시오. 형태와 소리 그 무엇에도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존재 한다 착각하는 이 세상의 무 자성을 이로 말미암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인도 보드가야에서 가연숙 (보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