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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출가재일의 참된 의미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오늘은 음력 2월 8일 석가여래 부처님께서 29세에 유성출가逾城出家하신 날입니다. 음력 2월 보름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날입니다. 부처님의 생애를 그려놓은 석가여래팔상성도釋迦如來八相成道를 떠올려 보고자 합니다.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부처님은 전생에 도솔천兜率天 내원궁內院宮에 호명보살로 계셨다고 합니다. 『화엄경華嚴經』에는 도솔천에서 호명보살은 이와 같이 발원 하였습니다.
“내가 중생을 이끌어 완성시키지 아니하면 누가 이끌어 그 중생들을 완성시킬 것인가. 내가 중생들을 조복하지 아니하면 누가 조복할 것인가. 내가 중생들을 교화하지 아니하면 누가 교화할 것인가. 내가 중생들을 깨닫게 하지 아니하면 누가 그 깨달음을 얻게 할 것인가. 내가 중생들을 청정히 하지 아니하면 누가 그들을 청정케 할 것인가. 이것은 내 의무요 내가 응당히 해야 할 일이다.”


싯다르타 태자는 이미 깨달음을 이루신 분이셨습니다. 도솔천에서 인간 세상에 오셨을 때와 출가 후 깨달음이 둘이 아니었음을 술회하시기도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아난존자阿難尊者에게 누가 나와 가까운 가를 묻고, 아난은 가섭迦葉, 사리불舍利弗, 목련目連, 수보리須菩提 등, 전법의 길을 멀리 떠나있는 스님들이 부처님과 더 가깝다고 하자.


“그러하니라. 아란다야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함께해도 나를 믿고 의지하고 따르지 아니하면 천리 밖에 있는 이나 천만년 후대인일지라도 나를 믿고 의지하며 따르는 이가 나와 더 가까이 있는 이니라.”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도 지척이요, 마음이 천리면 지척도 천리’라는 대중가요 노랫말처럼 그대로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고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들이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른다면 그가 바로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를 따르는 이요, 그가 바로 귀명歸命하는 불자佛子들인 것입니다.
훗날 부처님께서는 출가하여 고행자의 길을 이렇게 술회하셨습니다.


“과거에 어떤 수행자도 이런 고행은 한 적이 없었고 미래의 어떤 수행자도 이런 고행은 하지 못할 것이다. 나의 머리를 만지면 파뿌리 뽑히듯 하였고, 얼굴을 쓰다듬으면 덜 익은 오이를 쥐어뜯어서 그늘에 말려 놓은 것 같았다.”


그렇게 6년간 각고刻苦의 고행을 하셨던 지역은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하셨던 영축산靈鷲山도 있고, 사리불舍利弗과 목련존자木連尊者가 부처님 제자가 되기 위하여 왔던 가야산伽耶山도 거기 있으며, 소치는 소녀로부터 유미죽을 얻어 잡수셨던 니련선하尼連禪河에 있는 산을 전정각산前正覺山이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시기 전에 계셨던 산이라는 뜻입니다.
전정각산에서 함께 고행하던 아약 교진여 등 다섯 명은 강가에서 수자타로부터 유미죽을 얻어 잡수시는 모습을 보고 타락했다며 전정각산을 떠나 바라나시에 있는 녹야원 사슴동산으로 가 버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유미죽으로 기력을 회복하신 후 다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목숨을 걸고 수행하십니다. 부처님은 마왕파순魔王波旬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깨달음을 이루신 후 제일 먼저 찾아간 이들이 바로 타락했다며 떠나버렸던 교진여 등 다섯 고행자들이 있는 녹야원鹿野苑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처음으로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사제四諦 팔정도八正道, 십이연기법十二緣起法을 설하신 후 45년간 전법의 길에 계시다가 음력 2월 15일 구시나가라 사라쌍수 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려고 하자 제자들이 부처님께 묻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무슨 연고로 2월 달에 열반하시려 하시나이까.”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2월은 봄이다. 봄에는 만물이 자라나고 꽃이 피고 설산의 강물이 불어나고 온갖 동물들이 새끼를 낳는 때이므로 중생들이 생각하기를 2월은 항상하다는 생각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법은 무상하고 여래만이 항상 변하지 않음을 보이기 위해서 2월 달에 열반에 드신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날, 출가하신 날, 성도하신 날이 초파일인데 열반에 드시는 날은 보름인지를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선남자여, 보름날은 달이 일그러짐도 자라남도 없는 날이다. 그런 뜻으로 둥근 달이 떴을 적에는 열한 가지 상서로운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한 가지인가. 무명의 어둠을 깨트리고, 정도와 사도를 연설하고 나고 죽음을 벗어나며, 열반의 평탄함을 보여 중생들로 하여금 탐진치貪瞋癡의 뜨거움을 여의게 하고, 외도의 광명을 깨트리며, 번뇌의 도둑을 파괴하고, 색수상행식色受相行識 오온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주며, 중생이 선근을 심는 마음을 내게 하고, 중생들 욕락의 마음을 덮어주며, 중생들이 대열반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고, 정각을 이루게 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의 즐거움을 가지게 하는 것이니라.”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산가귀감禪家龜鑑』에도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출가해서 수행자가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편하고 한가함을 구해서도 아니요,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기 위해서도 아니요, 명예나 재산을 구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오로지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며 번뇌의 속박을 끊으려는 것이다.”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고통 받고 있는 중생들을 건지기 위해서 출가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개시오입開示悟入이라, 열어 보여서 깨달음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출가하셨다는 것입니다. 편안하고 한가함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요, 명예나 재산을 구하기 위해서도 아니라는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의 지혜를 잇고 고통 받고 있는 중생들을 건지기 위해서 출가를 하신 날, 출가재일에 월하 노스님께서 설하셨던 지공誌公 화상和尙의 시송詩頌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헛되고 거짓된 말은 오래가지 못한다.
선열에 환희 법열 한 진수성찬도
오히려 거기에 취하지 않거늘
뉘라서 다시 무명의 술을 마시고자 하는가.
가히 버릴 것도 없고 지킬 것도 없기에
거침없이 거닐면서 막히는 곳 없다하네.
비록 고금의 일을 모두 안다할지라도
여전히 어리석음에 빠져 밖을 달릴 뿐이네.


‘여전히 어리석음에 빠져서 경계가 밖으로만 몰아칠 뿐’임을 이번 출가에서 열반까지 경건주간으로 정해서 우리도 부처님같이 마음속에 새겼으면 하는 염원念願을 서로에게 전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