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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니

정성운
텃밭농부


두 차례나 닥친 장마


올해는 고추 작황이 영 신통치 않다. 비 그친 짬을 봐서 밭에 나갔더니 고춧잎이 시들시들하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줄기 중간이 갈색으로 변했다. 역병이다. 60그루 중 20그루에 병이 들었다. 회생 불능이다. 두 차례나 닥친 장마에 견뎌내지 못했던 것이다. 탄저병이 아닌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탄저병은 온 밭으로 옮기는데, 이 병은 전염성이 높지 않다. 경북 영양에서 오래도록 보존해온 토종 칠성초를 심고 기대가 컸는데, 올해의 김장용 고춧가루를 자급하지 못할 것 같다.
기상청은 8월 초에 비를 뿌린 정체전선을 2차 장마라고 알렸다. 장마는 농사에 가장 나쁜 기상조건이며, 이를 이겨내는 것이 농부의 일이다. 고추만이 문제가 아니다. 토마토는 대부분 터지고 말았다. 오이는 아예 열리지 않았는데, 긴 장마에 수정을 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이게 끝이라면 좋으련만 태풍이 올라와 휩쓸 텐데 이를 어쩌나. 더위가 한풀 꺾여 한숨 돌리려나 했더니 그게 아니다. 서리태에 지주를 세워 넘어지지 않도록 단도리를 해야 한다. 사람의 힘으로 자연 현상을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피해를 줄이기라도 해야 한다. 고추 줄도 한 번 더 매줘야 한다. 몸을 더 움직일 수밖에 없다.
농사를 짓는 것이 즐거움이지만 때때로 천형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무슨 못된 짓을 했기에 땅에 엎드려 이리 뻘뻘 땀을 쏟아내나. 잠자리에 누워 ‘아이고, 아이고’ 혼잣말을 해대는 것인가. 병든 고추를 뽑아내는 것이 못된 짓 하는 것 같다. 잘 살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든다. 손쓸 방법을 몰라 안절부절하는 내 모습이 안쓰럽다. 이래서 농부의 한숨은 땅이 꺼질 듯이 깊고, 주름은 이마를 파고들어가는 게 아닐는지.
쌀이 우리 식탁에 밥으로 오르기까지 70명의 손길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쌀뿐이겠는가.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든 농작물이 그렇다. 작은 텃밭을 일구면서 변화된 것 중의 하나가 있는데, 장을 보다가 비싸다는 말을 쉬이 꺼내지 못하는 일이다. 스스로 입단속을 하게 되었다. 밥 한 숟가락에는 필시 뜨겁고 짠 땀방울과 뼛골이 한 움큼은 배어 있다.


폭식 탐식 대식 과식과 낭비의 사태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는 주린 배를 움켜쥐어야 했다. 일제의 식민 지배와 한국전쟁의 뒤끝은 기아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 같은 것이었다. 분단된 남북이 체제 우월 경쟁을 벌이던 중 북한은 ‘이 밥에 고깃국’이란 구호로 주민들을 달랬다. 배를 채우는 일이 무엇보다 급한 일이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의 하나다.
역사 이래 지금처럼 배부른 시대가 있었을까. 지금은 먹거리가 넘쳐나는 시대다. 이런 상황을 한 세대 전에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다. 배고픔은 이제 역사책이나 다큐멘터리 영상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장면이 되었다. 『미래를 여는 한국인사』에서 저자 박세길은 신문기사를 인용해 배고픈 시절을 불러온다.


“모든 학교에서 점심을 굶는 아동수가 50퍼센트를 넘고 있다. 길고 긴 하루를 낮에는 학교에서 주는 빵 한 조각으로, 저녁은 물오른 겨릅대 껍질로 때우는 소녀의 얼굴빛은 누렇게 떠 있다. 소녀는 빵 한 조각을 속옷에 밀어 넣고 주위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경향신문, 1964년 5월 19일)


기사에서 언급한 겨릅대라는 단어조차 낯설다. 겨릅대는 껍질을 벗긴 삼나무 줄기인데, 삼나무 속껍질을 먹었다. 그 시절엔 소나무 속껍질도 먹었다. 먼 얘기가 되었지만, 50대 이상의 세대에겐 배고픔의 생채기가 새겨져 있다.
떨어진 밥 한 톨도 주워 입에 넣었던 시절이 오랜 과거가 아니었다. 계곡물에 떠내려간 배추 한 닢을 줍기 위해 노스님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달렸다는 얘기도 생생한데, TV채널을 돌리다보면 열에 둘 셋은 ‘먹방’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는데, 가히 지금이 그렇다. 폭식, 탐식, 대식, 과식과 낭비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래도 괜찮은 것인가?
음식은 허기를 달래주는 것 이상이다. 지수화풍의 조화로운 작용과 인간의 노고가 있은 후에야 먹거리가 주어졌다. 먹는 것에 대한 불교의 태도는 무겁다. 오관게에서는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라고 했다. 식도락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부처 될 몸을 보전하는 행위다. 동학의 2대 교주 해월海月 최시형 선생은 이식천식以食天食이라고 했다. ‘하늘(음식)이 하늘(음식)을 먹고 산다‘ 즉,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을 하늘인 사람이 하늘인 곡식을 먹는다는 것과 같다는 가르침이다. 그러니 거룩한 일이다. 한편으로는 먹고사는 일 앞에선 거짓조차 꺼리지 않으니 이보다 남루한 일이 있겠냐마는 이조차 생명을 거두는 일이니 거룩함 속에 깃든다.
왕조시대에 임금은 가뭄을 비롯한 천재나 전란과 같은 인재가 발생했을 때 감선減膳함으로써 백성의 아픔을 함께 나누었으며, 하늘에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 반찬 가짓수를 줄여 밥상을 받거나, 밥상을 받는 횟수를 줄였다. 감선은 유학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신라의 소지왕이 가뭄이 심하게 들자 감선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학이 지배적인 사상이 되기 이전에도 행해졌다. 조선시대에는 모두 341회의 감선이 시행되었으며, 조보에 그 사실이 실려 신분이 낮은 백성에까지 비교적 두루 인지되었다. 감선이 이루어지면 진상도 그에 맞춰 중단되는 경우가 많았다.[함규진, 조선 역대 왕들의 감선과 그 정치적 함의]


이 음식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음식 앞에서 겸허한 태도를 떠올리는 것은 불교와 천도교 등 종교의 가르침과 역사 속에서 행해졌던 감선과 같은 의례의 의미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마냥 엄숙할 필요는 없다. 음식을 먹으면 만족감을 느낀다. 좋은 사람들과 음식을 먹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브리야 사바랭은 『미식 예찬』에서 먹는 즐거움을 다음과 같이 나열하고 있다.


첫째, 절제 있게 섭취했을 때 피로를 동반하지 않는 유일한 쾌락이기 때문에, 둘째, 연령과 조건을 불문하고 언제나 가능하기 때문에, 셋째,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필연적으로 돌아오며, 하루에 두세 번 불편 없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에, 넷째, 다른 모든 쾌락들과 섞일 수 있으며, 심지어 다른 쾌락의 부재를 달래줄 수 있기 때문에, 다섯째, 먹는 즐거움이 수용하는 인상들은 더욱 지속적인 동시에 더욱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기 때문에, 끝으로, 본능적 의식에서 나오는 정의할 수 없는 특별한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풍요로움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 있을까? 잔칫집에 재 뿌리자는 질문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낙관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 기후위기, 전쟁, 정치적 혼란은 먹거리를 위협한다. 가끔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지금 그런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먹는 것에 대한 겸허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교를 비롯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종교에서는 한결같이 적게, 때에 맞춰, 고마운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불자들은 숟가락을 들기 전에 두 손을 모으고 오관게를 떠올린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는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이만한 겸허함이 어디 있을까.